이 글은 김영하 작가의 단편소설집 <오직 두 사람>을 읽고 쓴 독후감입니다.
This is a bookreview of "Only Two People" written by Kim Young-Ha. This book is a collection of 7 short stories, including the title story. Since this book is written in Korean, and hasn't been translated in English, I'll only write this review in Korean.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달 목걸이
제목만 보고는 달달한 연애소설이라고 오해했던 김영하 작가의 단편 소설집 <오직 두 사람>을 읽었다. 책 속 이야기와는 아무 상관없지만, 읽는 내내 달을 가지고 싶어서 병까지 났다던 공주 이야기가 떠올랐다.
공주는 달이 너무나 가지고 싶었지만, 신하들은 아무도 달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달은 너무 큽니다.
너무 멀리 있어요.
그때 현명한 한 신하가 공주에게 물었다.
"달은 얼마나 큰 가요? 달은 뭘로 만들어져 있죠?"
"그것도 몰라? 달은 내 엄지손톱만 해. 그리고 달은 은으로 만들어져 있지."
신하는 곧 엄지손톱 크기의 동그란 은 목걸이를 만들어 공주에게 건넸다. 공주는 달을 받았다며 기뻐했다.
<오직 두 사람>에는 총 7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 이야기 속 사람들은 모두 크고 작은 시련을 겪게 되고, 돌파구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돌파구만 찾으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는 망상에 젖어서. 그것이 망상인 이유는 그들이 찾던 돌파구가 공주의 달 목걸이 같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간절히 바라던 것이긴 하나, 그것은 진짜가 아니었다. 그것을 손에 넣어도 달은 여전히 밤하늘을 밝히며 손 닿을 수 없는 곳에 떠 있었고, 상황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여기에서 그들의 선택은 두 가지다. 잡을 수 없는 달을 보며 다시 상사병에 빠지거나, 손에 들고 있는 달이 진짜라고 스스로를 속이며 어떻게든 살아가거나.
그들은 잃어버린 아이를 찾고 싶어 했고(아이를 찾습니다), 한 여인에게서 자신의 고향을 찾고 싶어 했으며(인생의 원점), 자신과 엄마를 버린 아버지에 대해 알려고 애썼고(슈트),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이 되길 바랐으며(최은지와 박인수), 닫힌 문이 열리길 원했다(신의 장난).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졌을 때에야 그들은 그것이 자신들이 진정으로 소망했던 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소원은 좀 더 신중하게, 좀 더 구체적으로 빌었어야 했다.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좀 더 진지하게 고민했어야 했다.
출처: 교보문고
"그 이후"를 견뎌내는 사람들
"옥수수와 나"를 빼고는 이야기들이 대부분 어둡고 우울하다. 그 극치는 "아이를 찾습니다"와 "신의 장난"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아이를 찾습니다", "인생의 원점", "신의 장난", "오직 두 사람"은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 쓴 단편들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네 편은 상대적으로 더 어둡고, 더 가라앉아있다. 아무래도 세월호 사건의 충격과 고통, 슬픔이 작가의 무의식에 침전된 게 아닐까 싶다. 저자는 그제야 비로소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저자의 말마따나 이 책에 나오는 단편들은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이야기의 끝부분에서 나는 묘한 희망을 발견했다. 너무 미묘해서, 어쩌면 희망이 아니라고 느낄 수도 있다.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 의도하지 않았는데 무의식 중에 그렇게 쓴 것인지, 나만 혼자 이렇게 느끼는 것인지 그것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장 어두운 이야기라고 여겨지는 "아이를 찾습니다"와 "신의 장난"도 작은 생명과 다시 시작되는 일상(바람직한 일상은 아닐 수도 있으나 어쨌건 일상이 지속되긴 하니까)으로 끝을 맺는다.
"그 이후"를 견뎌내는 사람들의 고통스러움을 함께 느끼고, 그 와중에도 그들이 발견해내는 작은 희망을 함께 응원하는 것. 그것이 이 책이 내게 전하는 메시지였다. 저자의 말을 그대로 빌자면 나도 "팩트 따윈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느낀다."
이야기꾼, 김영하
가장 안타까웠던 이야기는 "오직 두 사람"이다. '사소한 언쟁조차 할 수 없는 모국어로' 살아온 그녀의 삶은 자신이 깨고 나오기만 했다면 충분히 더 나아질 수 있었기에 안쓰럽기 그지없다. 그런 반면 "아이를 찾습니다"는 슬픈 이야기이기는 하나 말미에 약간의 희망이 느껴졌다. 진짜 자신의 달 목걸이를 찾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가슴이 콱 막힐 듯 암담했던 이야기는 "신의 장난"이었다. 결국 모든 건 신의 장난일까.
유일하게 낄낄거리며 읽었던 이야기는 "옥수수와 나"이다. 아, 정말 사랑스러운 김영하 작가 같으니라고. 대화체도 기가 막히고, 절제된 표현으로 정곡을 찌르는 묘사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 깊이 사색하게 만드는 이야기들도 좋아하지만, 이렇게 유머와 위트가 철철 흘러넘치는 글도 무척 사랑한다. 이런 이야기를 쓰고 싶다. 내 살아생전에, 가능할까?
책 속 단편들은 슬픈 것도 있고, 유쾌한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모두 다 재미있다. 초코님과의 댓글에서도 말한 적이 있지만 김영하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꾼이다. 어느 못된 왕이 그를 잡아가더라도 천 일일동안 재미난 이야기를 풀어내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책이 던지는 메시지를 굳이 잡아내려 애쓰지 않아도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주는 책이다. 아무렴, 김영하 책인데.
나를 깨우는 책 속 몇 마디
1.
“언니, 아빠에게서 그만 벗어나, 누구도 언니에게 그런 책임을 부과하지 않았어. 아빠는 언니가 그런 희생을 바칠 만한 가치가 없는 인간이야.”
…
어떻게 그래? 우린 가족이잖아. (p. 34 오직 두 사람)
2.
그들이 떠난 뒤에 아이가 어질러놓은 방을 치우다가 주저앉아 울었어요. 분하고 서러운데, 그게 뭣 때문인지를 모르겠더라고요. 따지고 보면 다 제 잘못이었죠. 처음부터 단호하게 안 되는 건 안 된다 말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잖아요. 내 잘못이다 생각하니 뭔가 억울했어요. 그런데 정확히 뭐가 어떻게 억울한 건지 막막했고 그게 또 화가 났어요. 그래서 또 울었어요. (p. 38 오직 두 사람)
3.
아빠가 뭘 엄청나게 잘못한 건 없어요. 아빤 그냥 살아오던 대로 살았을 뿐이에요. (p. 41 오직 두 사람)
때론 그냥 살아오던 대로 살아가는 게 잘못이 되는 경우도 있다.
4.
그에게 미라는 카라반의 낙타와도 같은 존재였다. 목표와 희망까지 공유할 필요는 없었다. 말을 못해도 돼. 웃지 않아도 좋아. 그저 살아만 있어다오. 이 사막을 건널 때까지. 그래도 당신이 아니라면 누가 이 끔찍한 모래지옥을 함께 지나가겠는가. (p. 113 아이를 찾습니다)
5
한밤중에 무슨 꿈을 꾸었든 아침에는 전날 밤에 잠든 곳에서 눈을 뜨잖아. (p. 140 인생의 원점)
6.
이봐, 너구리, 내가 등장인물일 뿐이라고? 무슨 소리! 나는 언제나 내 인생이라는 난해하고 음란하고 해체적인 책의 저자였어. 이렇다 할 줄거리도 없고 누구도 출판해주지 않을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하지.
...
내가 종속변수라고? 천만의 말씀, 내가 바로 저자이고 일인칭 시점 화자이고 이야기의 종결자야. (p. 275 옥수수와 나)
7.
주먹이 날아오면 이렇게 잘도 피하면서 왜 영혼을 노리는 인간들에게는 멍하니 당했냐는 거야. (p. 321 최은지와 박인수)
8.
“새끼 때 데려와서 그놈들에겐 제 원룸이 세계의 전부일 거예요.”
“태준씨는 신이겠고요.”
수진의 말에 태준은 고개를 저었다.
“집사죠. 흔히들 말하는. 밥 주고 똥 치워주는.”
“신도 우리의 집사일지 몰라요. 우리를 예뻐하다가도 가끔은 귀찮아하기도 할 거예요. 그러다 어느 날 훌쩍 사라져버리는 거예요. 아니면 우리가 신을 떠나거나. 그럼 고난이 시작되는 거죠. 밥이나 주는 집사인 줄 알았는데 실은 전 존재가 그에게 달려 있었던 거죠.” (p. 378 신의 장난)
9.
인류의 역사는 신의 뜻을 알고 있다고 확신한 이들이 저지른 악행으로 가득차 있다. (p. 403 신의 장난)
제목: 오직 두 사람
저자: 김영하
특이사항: 중단편 7편이 실린 단편소설집
책을 선물해주신 @chocolate1st 님께 깊은 감사인사 전합니다. 덕분에 좋은 책 읽을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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