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살 여행기#9 열차에서 일주일 - 시베리아 횡단 철도 1: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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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9] 두 침대 사이에 있는 탁자

모스크바에 도착할 즈음까지 열차에서 눈에 익지 않던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일층 침대에 사람이 누워서 자고 있는데 이층에 자리 잡은 사람이 툭 내려와서 탁자를 이용하는 모습은 정말 볼 때마다 식겁 놀라곤 했습니다. 열차 진행 방향에 수직으로 평행하게 놓인 두 침대는 가운데 창 아래 탁자 하나가 있습니다. 머리를 복도로 하고 자지 않으니 탁자 쪽에 머리가 놓일 수밖에 없는데 침대는 무척이나 좁아서 한 사람이 똑바로 누워 있으면 다른 사람이 편하게 엉덩이 놓을 자리가 생기지 않지요. 일층에 누워있는 사람이 옆으로 몸을 돌려줘야 좀 편하게 걸쳐 앉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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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0] 2층 사람이 탁자를 사용하는 모습 - 뒤처럼 1층 사람과 같이 앉아있기도 하지만 때론 1층 사람이 누워있는 옆에 앉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층에 탄 사람들은 일층 사람이 옆으로 누워 있던 똑바로 누워 있던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있어도 없는 것처럼 일층 침대를 의자처럼 쓰지요. 실례한다거나 죄송하다는 말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긴 화장실을 사용할 때도 비슷합니다. 제가 화장실에 방금 들어왔는데도 문밖에서 엄청 헛기침을 하거나 노크 세례를 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더 생각해보니 철도 건널목 차단기도 참 배려가 없습니다. 땅에서 차단기가 올라오는데 다 올라오면 직각 삼각형이 튀어나온 형태가 됩니다. 문제는 사선이 철로를 보는 형태여서 도로 쪽으로 벽이 생겨요. 만약 실수라도 하면 차가 박살 나게 되죠.

그래도 제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지 이들 사이에 문제가 없다면 굳이 틀렸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로씨아” 사람들은 마음이 시베리아만큼 넓어서 모르는 사람이 자는데 엉덩이를 얼굴에 들이밀거나 화장실 앞에서 채근을 해도 별 신경 안 쓰일 수 있어요. 실수해서 열차에 탄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보다는 그냥 운전자 혼자 다치는 게 옳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기분이 안 좋을 때 무례한 짓을 하면 칼부림이 나니 서로서로 해 끼치지 않고 잘 살기 위해 여러 예절을 만들기도 하지요? 자신들에게 해가 될 일이 없는데 예절을 만들어서 지키는 건 쓸모없는 짓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본 러시아 사람들이 무례하고 인정 없는 건 아닙니다. 잘 자고 있는데 경찰이 깨워서 순간 겁먹은 적이 있어요. 신분증을 보여 달라는 건가 생각하고 주섬주섬 여권을 꺼내고 있는데 주위 사람들이 러시아 말로 격하게 뭐라고 합니다. 잘 못 알아듣는 눈치이니 더 심각하게 러시아 말로 뭐라고 하다가 끝내 경찰이 답답했는지 침대에 떨어진 휴대폰을 손에 쥐여준 기억이 있습니다. 그 뒤로도 복도 건너편 사람은 러시아어로 끊임없이 뭐라고 했어요. 먹다 남은 음식을 주는 거처럼 쿨하게 음식을 권하기도 하고 열차에서 당황스러운 일을 겪을 때면 나는 알아듣든 말든 러시아어로 말하면서 무심하게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지요.

제 성격 같으면 열차 안이 견딜 수 없으면 진작 뛰쳐나왔을 겁니다. 그런데 시베리아 위에서 뛰쳐나와 봐야 할 수 있는 건 운이 좋아 공항이 있는 역에서 내린 게 아니라면 다시 기차를 타는 방법뿐이에요. 저는 러시아의 정말 작은 부분을 경험한 거니 다른 날 출발한 열차를 타고 다른 사람들을 만났으면 제 여행이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 없습니다. 몇 번을 내리기를 고민하다가 정말 내려서 다른 열차를 탔을지도 몰라요. 대안 없는 상황에서 별일 없을 수 있던 건 괜찮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는 여행 중에 저를 잠시나마 지나친 모든 사람에게 감사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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