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미술의 경험 : 아이들이 그려준 내 모습





대학 졸업 후 1년간 아동미술 선생님으로 일했던 경험이 있다. 교육자의 꿈을 가진 적은 한번도 없었다. 지금도 내가 좋은 작가인가-와는 별개로 누군가에게 좋은 선생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동미술은 졸업 후 어떤 막연함, 돈벌이에 대한 열망으로 기회가 닿아 무작정 시작했다.

아이들의 집으로 직접 찾아가는 방문 미술의 방식이었다. 대략 6~10살 사이의 아이들이었다. 만만하게 생각했었다. 크레파스랑 붓 몇 개 쥐어주고 놀면 되겠지- 라는 생각은 수업 첫 날부터 산산조각 날 수밖에 없었다. 요즘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거의 모든 미술 재료를 다 경험한다. 내가 뭔가를 준비해가면 6살 아이이 눈빛에서 "아 시시하게....내가 애도 아니고..." 라는 표정이 그대로 눈에 읽힌다. 그러면 한 시간동안 아이 앞에서 쩔쩔매다가 도망치듯 그 집을 빠져나오곤 했다. 세상에 만만한 건 없었다.

일하면서 성악설을 믿게 되었다. '사람이란 본디 악한 존재구나' 라는 생각을 일주일에 삼천오백번씩 했다. 정말 말을 안 들었고 나를 속상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집(홈그라운드)으로 내가 방문한다는 조건을 무기삼아 아이들의 언행은 더욱 막장으로 치닫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하.....저 녀석..꿀밤 한 대만 시원하게 쥐어박아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라는 생각이, 제발 꿈에서라도 이뤄졌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반면 세상은 9:1의 비율로 천사들도 존재하는구나.. 라는 것도 덩달아 알 수 있었다. 어떤 집의 아이들은 정말 천사 그 자체였다. 어쩌면 이렇게 귀엽고도 사랑스러운 존재가 있을까! 결혼과 육아에 전혀 관심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테지만, 이때만큼은 저런 아이를 낳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이 스쳐가기도 했다. 추운 날, 대문 밖까지 따라나오는 7살 아이의 배웅을 받으며 집에 돌아갈 때는 그냥 함박웃음이 났다.

한 번은 "어디 선생님을 한번 그려줘봐" 라는 부탁을 한 적이 있었다. 지금 이 그림을 보니 미웠던 아이들도 다 좋은 기억으로 바뀔 것 같다. 아이는 미워도, 아이들이 그린 그림은 미웠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 얼굴과 몸통을 분리한 녀석의 장난기 어린 표정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 내일은 아동미술을 하면서 느꼈던 그림에 관한 생각들을 포스팅할 예정이다.




@thelu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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