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눈부신 순간에
스스로 목을 꺾는
동백꽃을 보라
지상의 어떤 꽃도
그의 아름다움 속에다
저토록 분명한 순간의 소멸을
함께 꽃피우지는 않았다
모든 언어를 버리고
오직 붉은 감탄사 하나로
허공에 한 획을 긋는
단호한 참수
-문정희 / <동백꽃>중에서
가지에 매달린 채 시든 꽃을 흔히 볼 수 있다. 화려하고 아름답던 시절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탓이리라. 그러나 동백꽃은 이런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꽃으로서 주어진 임무를 다하면 새빨간 꽃잎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통째로 떨어져 버린다. 그 모습을 보고 옛 사람들은 마치 남자에게 농락당하고 버려진 아름다운 여인과 비교했다
-문화와 역사로 만나는우리 나무의 세계1/ 박상진
우리나라 남쪽 지역에는 동백(冬栢)꽃이 있어 겨울철에도 능히 곱고 화려한 붉은 꽃을 피워, 꽃 없는 시절에 홀로 봄빛을 자랑한다. 이 꽃이 겨울철에 피는 까닭에 동백꽃이란 이름이 생겼다. 그 중에는 봄철에 피는 것도 있어 춘백(春栢)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화하만필(花下漫筆)/문일평
동백꽃이 꽃들의 세계에서 대세를 따르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봄부터 여름까지 만개한 꽃들과는 달리 칼바람불고 낮이 그렇게 짧은 겨울부터 다시 봄이 시작되는 때까지 만개의 릴레이를 이어가는 그 마음을 보면 더욱 귀중하게 생각되어진다. 마치 어둠속에서 빛을 밝혀주는 촛불과 같다고 할까? 아니나 다를까? 동백나무는 추운 곳에서 견디어야 했기에 잎이 두껍고 살이 많으며 늘 푸르고 기름기가 많아서 등유로 쓸수 있다고 한다. 여러모로 보살과 같은 심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절터에 동백꽃이 그렇게 유명한가 보다. (고창 선운사, 강진 백련사, 광양 옥룡사터 등) 그리고 동백의 백은 측백나무 백(栢)이다. 측백나무의 잎처럼 푸르기 때문일 것이다.
스님들이 동백꽃을 닮고 싶어서였을까? 우리가 보통 꽃들이 만개하고 지는 과정을 바라 볼때에는 늙어간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세월의 덧없음을 짧은 시간동안에 보게되어 안스럽다. 꽃잎이 바람에 휘날려 문드러지듯 흐드러지는 벚꽃, 파리해져 떨어지는 목련, 그러나 선명한 핓빛과 꽃송이를 온전히 그대로 간직한 체 댕강 그리고 후두둑하고 떨어지는 동백꽃을 바라보면 확연한 대비가 된다. 스님들 수행의 깊이를 평가하는 좌탈입망(坐脫立亡:않거나 선 자세로 죽음을 맞이함)과 같다고나 할까? 죽음앞에서 흐트러짐이 없는 의연함이랄까? @ruka0105 님이 일본 후쿠오카성곽 아래에서 포착한 하얀동백의 참수를 보노라면 잘려나간 머리에 흰피가 흘러나왔다는 이차돈이 생각난다.
모든 언어를 버리고
오직 붉은 감탄사 하나로
허공에 한 획을 긋는
단호한 참수
동백꽃의 10가지 덕/산다백운시(山茶百韻詩)
- 고우면서 요염하지 않다
- 300~400년이 지나도 금방 심은 듯하다
- 가지가 16미터나 올라가 어른이 손을 벌려 맞잡을 만큼 크다
- 나무껍질이 푸르고 윤기 나서 차나무가 탐낼 정도로 기운이 넘친다
- 나뭇가지가 특출해서 마치 치켜올린 용꼬리같다
- 쟁반 같은 뿌리를 비롯한 나무의 모습은 여러 짐승이 지내기에 적합하다
- 풍만한 잎은 깊어 마치 천막 같다
- 성품은 서리와 눈을 견딘 수 있어 사계절 동안 늘 푸르다
- 꽃이 피면 2~3개월을 난다
- 물을 넣고 병에 길러도 10여일 동안 색이 변하지 않는다
나는 동백꽃의 덕을 배우고 싶다.
동백꽃의 또다른 이름 [명산다(名山茶), 다화(茶花), 만타라수(曼陀羅樹), 천다수(川茶樹), 내동(耐冬), 양다(洋茶), 수춘(藪春), 학명 Camellia japonica Linnaeus]
동백꽃1 | 동백꽃2 by @ruka0105
[색인] 스티미안 자연사(自然史) 박물관 (2018년 1월부터 4월 중순까지)
ps. 동백꽃이 너무 좋아서 한꼭지 더 추가 하였습니다.
[21세기 時景] 중년 남자 송창식 선운사(禪雲寺)의 상징을 노래하다/부제: [동백2(冬栢)] 스티미안 자연사(自然史)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