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레사 동굴 수행터, 이냐시오의 탁발그릇
500년이 훨씬도 넘은 유명한 스페인 수행자의 탁발그릇이다. 이분은 가톨릭 영적전통의 베스트셀러인 ‘영신수련’을 만레사 동굴에서 완성하였다고 한다.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동굴 만레사 수행터도 관심을 끌었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이 밥그릇에 친근감이 일어났다. 올리브 나무를 깎아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나무인데 이렇게 오래도록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을까? 꼭 그 동굴 수행터에 가서 수행자의 손때가 묻어있던 이 탁발그릇을 확인해보고 싶다.
예수회를 설립한 스페인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1491~1556년)는 귀족이었다. 그리고 젊을 때는 방탕하였다고 한다. 기사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전투에 참가했다가 부상을 입고 포로가 되어 감옥생활을 하다 풀려나 요양을 하면서 성경과 성인전을 읽고 회심하였다고 한다. 예수의 가르침대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삶의 방식으로 자발적 가난을 선택했고 기도와 관상을 통한 탁월한 신비가가 되었다고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입니다. -마태오 5:3, 루가 6:20
나는 성경의 권위적 표현의 문체를 극도로 싫어한다. 이것은 타종교도 마찬가지이다. 예를들면 불교경전도,
예수는 30대에 삶을 마감한 젊은이었다. 그 시대의 팔로워들에게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고 “-해라!”의 어투를 남발했다면 아마도 대중은 “이런 왕싸가지! 너나 잘하세요. 머리에 피도 안마른 놈이!”라고 돌을 던졌을 것이다.
가톨릭만이 아니다. 부처도 마찬가지,
ps. 30세에 사랑했고 결혼하려고 했던 그녀와 종교적인 이유로 한참 방황했던 시절에 인상적으로 읽었던 서적이 있다.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
배낭영성
만레사(500년 된 수행자의 밥그릇)에 삽입된 글 중 일부를 남겨둡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물질적 가난함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의 기반이 되는 정신적 가난함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나’에게 ‘최우선 순위’를 두는 그러한 마음가짐은 없는 것이다. 겸손함이다.
겸손함이란 것은 비굴한 것이 아니다. 기쁨도 슬픔도 고난도 행복도 묵묵히 받아들이고 현재의 삶에 만족하여 현존하는 ‘동요됨이 없는 마음不動心’이다. 그리고 거기에 ‘자비심慈悲心, 慈는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悲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다.이 실려서 모든 사람에게 감화를 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먼저 조복하게 되어있다. 나에게 권위를 달라고 때를 쓰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이러한 분들의 삶때문에 우리들의 사회가 브레이크 없는 무질서한 방종의 길로 치닫는 것을 제어해주는 것이 아닐까도 생각된다. 내가 좋아하는 영어로 된 격언이 있다. 지금까지 스페인의 속담인줄 알았다.
A way to hell is paved with good-will.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ps. 혹시나 해서 구글로 검색해보았더니 이 격언의 기원은 프랑스의 유명한 수도사로부터 유래되었다고 한다.
The saying is thought to have originated with Saint Bernard of Clairvaux who wrote (c. 1150), "L'enfer est plein de bonnes volontés ou désirs" (hell is full of good wishes or desires). An earlier saying occurs in Virgil's Aeneid: "facilis descensus Averno (the descent to hell is easy)" Wikipedia
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Good Intentions (feat. Craig Owens)
500년이 흘러 스페인과 비슷한 민족적 정서(다혈질이고 역동적임)의 한반도에 무소유의 삶을 몸소 실천하다가 맑고 향기롭게 떠나가신 한 분의 스님이 계셨다. 이냐시오 성인의 소박한 밥그릇을 보면서 그 스님께서 앉아서 책도 읽고 글도 쓰시면서 마음이 가난한 행복함을 즐기셨던 바로 그 의자를 찾게 되었다.
하루동안 2종류의 의자를 보았습니다.
하나는 갤러리에서 전시중인 세계적이 건축가인 피에르 잔느레의 의자였고 다른 하나는 낮은 돌담 옆 법정스님의 의자였습니다.
잔느레의 의자는 사람 그 자체가 연상됩니다.
얼마나 사람을 살피고 연구했을지 의자 하나만 봐도 느껴집니다.
스님의 의자는 나무 토막토막을 뚝딱뚝딱 이어 만드셨더군요. 까맣게 닳아빠진 투박한 의자 하나가 공간을 순식간에 종교로 바꾸어 놓습니다.
"의자"로 인해 벅차오름을 느낍니다.
Naver 어느 블로그에서
동티가 난다라는 표현이 있다. 한 사람의 익숙한 손을 탄 물건에는 그 사람의 정신적 습성이 녹아들어 영적인 힘을 발휘한다고 한다. 그러한 물건을 바라보게 되면 그 물건을 썼던 사람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꼭 신비적인 감정이 필요하지않다. 우리가 항상 편하게 그리고 익숙하게 사용하는 물건은 어느새 나의 수족과 같아져서 길이든다. 한 사람의 역사가 그 물건에 베어들어 그 사람이 떠나가고 난 뒤 그 물건을 보게 되면 떠나간 사람에 대한 강한 기억의 체취를 남긴다.
나도 그러한 물건을 하나쯤은 남기고 떠나가고 싶다. 그리고 그 물건이 누군가에 의해서 계속 길들여졌으면 좋겠다. 이냐시오 성인이나 법정스님의 물건처럼 전시되어 박제되어 그대로 보존되거나 버려짐이 없이,
여행기
스페인 여행前記
프롤로그
수도원 문화의 성격
Fabada Asturiana 스페인의 순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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