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파란색, 나뭇잎은 녹색, 사과는 빨간색이라고 생각한다면 경기도 오산! 이같은 정의는 고전주의적 색 체계다. 분명 예술의 역사에서 오랜 기간동안 사과는 빨간색이어야만 했다. 마침내 사과에서 빨간색을 해방시켜 준 것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인상주의다. 이들에 따르면 사과는 파란색이다 - 의 정의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여기까지 온 과정을 과거부터 휘리릭 살펴보자.
다비드 - 마라의 죽음
고전주의
바로 르네상스부터 쭉 연결된 대표적 고전주의 그림의 형식이다. 형태는 뚜렷하며, 사물간의 공간감도 확실하다.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게 할 회화적요소는 아무것도 없으며, 대충 어떤 사람이 편지같은 걸 쓰다가 죽었구나..라고 바로 읽을 수 있다.
실제로 이 그림의 내용은 프랑스 대혁명의 지도자인 '마라'의 피살을 다루고 있다. 이 그림은 르네상스의 다빈치가 가지고 있던 예술의 모토이다. 회화의 목적은 가시적인 세계를 인식하는 것이며 현실에 충실한 모방론에 따라 그려졌다. 다만 그 현실에 약간의 작위적인 아름다움을 덧붙여 완성된 '형상+아름다움' 의 결과물이다.
실제로 마라가 저렇게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마치 순교자의 표정으로, 한쪽팔을 떨궈줌으로써 인체비례의 아름다움을 주면서 죽음을 맞이했던 센스를 가지고 있진 않았을 거란 얘기다. 실제 장면을 모티브로 화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덧붙여 그린 그림이다. 오랜기간 이어져 온 대표적 고전주의 그림이다.
쿠르베 - 돌을 깨는 사람들
사실주의
지금 이 그림을 보면.. 이게 뭐? 라고 할수도 있었지만 고전주의 화풍에 길들여진 그 당시에 이 그림은 충격적 사건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훌륭한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은 암묵적인 규정같은게 존재했다. 바로 아주 중요한 인물, 격조있는 인물이나 역사적, 종교적 사건, 영광스런 과거를 <마라의죽음>처럼 정형화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켜 나타내여야만 한다.
그런데 저 그림은 어떤가? 바로 지극히 평범한 노동자의 '돌을 깨는' 장면이 아닌가!? 어떠한 이상화된 아름다움도, 중요한 인물도 없다. "나에게 천사를 보여주면 천사를 그리겠다."라고 말했듯이, 쿠르베는 이태까지의 그림들에 넌저리가 났다. 그에겐 중요한 건 바로 '현재'였다.
자기 주변의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사실적인 것들만이 그에겐 중요했다. 이로써 그림 속 소재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모네 - 해돋이
인상주의
인상주의자들은 사실주의자들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온다. 역시 주변의 일상을 소재로 삼는다. 다만, 인상주의자들은 그림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 형식조차 바꿔버린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눈에 '보여지는 대로' 그리는 것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그림에 표현되는 사물에는 '고유색'이란 것이 존재했다. 예컨대 나뭇잎은 무슨색인가? .. 고전주의자들은 자신있게 '녹색!' 이라고 대답한다면 인상주의자들이 봤을때는 어차피 나뭇잎의 색이란 빛에 반사되어 망막에 맺히는 색이다. 그래 낮에는 나뭇잎의 색이 녹색이라 치자.. 그럼 해질녘에는 나뭇잎이 주황색으로 변하고, 빛이 없는 새벽에는 나뭇잎이 검은색으로 변하는데, 어느 색이 진짜 나뭇잎의 색인가?
이렇게 그들은 모든 사물의 색을 '빛'에 의해 자극되는 색으로 그렸다. 빛에 의한 어떤 순간의 색들을 그들은 즉흥적으로 나타내었다. 그들이 관심있었던 건 빛에 의한 대상의 '색채자극' 이었음으로 '빛'을 받는다는 점에선 모든 사물이 평등하다. 때문에 그들은 주변의 모든것을 그렸다. 그들은 순간의 인상을 빠르게 캐치해야만 했다.
나 역시 이런 경험의 그림을 그린 적이 있다.
나의 군시절 당시 색연필로 그린 그림
군에 있었을때 잠시 파견갔던 포항에서..그린 그림이다. 난 이 그림을 하루에 완성할 수가 없었다. 왜냐!? 이렇게 해질녘 바다에 비추는 이 색깔.. 약간 푸르스름한 빛이 남아 있으면서도 붉은 주황빛이 서서히 잠식하는 이 순간, 태양밑에 보랏빛 기운이 어슴프레 남아있는 바로 이 순간. 이 순간의 색깔은 나에게 10분이라는 시간밖에 주지 않았다.
10분이 지나면 바다색깔은 온통 붉어져버리고 태양은 바다밑으로 꺼져버린다. 때문에 나는 4~5일동안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나와서 이 색깔을 기다렸다가 재빠르게 그릴 수밖에 없었다. 재수 없어서 구름이 잔뜩 낀 날엔 아예 못그린 적도 있었다. 과거 인상파들이 야외에서 느꼈을만한 기분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thelump
[초간단 미술사] 지난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