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10] 열차 안에서 잠자리 - 창문 아래로 2층 좌석번호 48번이 보입니다.
모스크바행 열차를 예매할 때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역에서 체크인하고 열차표를 받는 방법과 열차표를 인쇄해서 제시하는 방법이지요. 저는 역무원과 마주치는 게 번거로울 것 같아서 표를 인쇄해 갔어요. 그런데 제 열차표를 보더니 차장이 절 들여보내 주지 않고 러시아어로 뭐라고 주저리주저리 말합니다. 러시아어를 못 한다고 하니 러시아어로 더 뭐라고 하고 들여보내 줬는데 대충 눈치로 너는 외국이니까 내가 해준다는 말 같았습니다. 제가 자리를 잡으니 다른 직원이 제 열차표를 가지고 역으로 가서 뭔가 해왔습니다.
그 사이에 차장은 베갯잇과 요를 감쌀 하얀 천 두 장 그리고 수건 한 장을 줬습니다. 탑승한 모두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선반에서 베개를 꺼내서 베갯잇을 씌우고 요를 깔아 천 두 장을 감싸고는 이불을 꺼내 덮고 하나둘 잠들었습니다. 저도 눈치껏 그렇게 했어요. 아무 설명도 없는데 너무 자연스럽게 잠자리를 마련하는 게 이상했지요. 초등학교에서 기차 타는 방법을 가르치거나 공영방송에서 캠페인을 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열차에 탄 사람들이 좌석 번호를 보고 자리를 잘 찾는 것도 신기했어요. 저는 2층 침대가 놓인 칸에 탔습니다. 아래 칸을 예매해서 아래 자리 잡았지만 열차에 표시된 좌석 번호를 가지고는 어디가 1층인지 알기 힘듭니다. 1층과 2층 좌석 번호가 모두 1층에 붙어 있기 때문이에요. 창문을 기준으로 1층 좌석 번호는 진행 방향 뒤쪽으로 붙어있고 2층 좌석번호는 진행 방향 앞쪽과 가운데 아래 붙어있어요. 전 사실 아직도 제가 자리를 잘 찾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예매할 때 실수했어도 제 위 칸에 탄 사람들은 외국 사람인 절 낯설어했기에 자리 바꿔 달란 말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열차가 출발하고 제 위에 아무도 타지 않은 게 살짝 불안했습니다. 제 자리는 분명 위 칸과 아래 칸 둘 중 하나이니 그중 한 자리가 차 있으면 제 자리는 자연스럽게 결정됩니다. 그런데 저는 제 자리를 확신하지 못하고 위 칸이 비어 있으니 혹시 제가 다른 자리에 앉았을 가능성 때문에 신경 쓰고 있던 겁니다. 만약에 아래 칸이 원래 제 자리이지만 누군가 누워 있었으면 전 한두 번 제 자리 아니냐고 해보고 상대가 비키지 않으면 예매를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불편한 위 칸에 눕고 불안해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비어 있다는 건 여지가 있다거나 모르는 게 있다거나 틈이 있다는 말입니다. 알 수 없는 틈이 있다는 건 불안한 일이지요. 담장에 제가 모르는 구멍이 있어서 누군가 오간다고 생각하면 소름 끼칩니다. 그런데 틈이 하나도 없어서 밖에서 아무것도 들어오지 못하는 곳에 있으면 공기도 들어오지 못하기에 곧 질식사하고 맙니다. 사람이 꽉 차서 움직일 틈이 없는 지하철 9호선을 생각해보세요. 빽빽하지 않고 빈 곳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지요?
틈은 윗자리가 빈 것뿐 아니라 다른 측면에서 생각할 수도 있어요. 제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열차 안에서 볼 걸 하나하나 빈틈없이 안다면 굳이 열차를 탈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면 열차를 탈 수도 없지요? 무엇을 하든 미리 완전히 알 수 없으니 적당히 알고 불안하게 뭔가 해보고 실수하면 고쳐나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잡생각을 하다 보니 위에 사람이 탔습니다. 많아 봐야 10대 중반으로 보였어요. 그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능숙하게 침대를 만들고 곧 누웠습니다. 저도 쓸데없는 고민을 끄고 잠들었습니다. 열차에서 하루가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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