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두번째 글이네요! 저번 첫 글을 쓰면서 느낀건...
경험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도 생각보다 어렵구나 였습니다.
글을 쓰면서 경험만 서술하자니, 글의 요지가 사라지고...
그렇다고 의견을 많이 넣자니 실제 경험의 정수가 사라지는 느낌이랄까요?
앞으로 써가면서 그런부분은 조율하고 퇴고해보는게 맞는거겠죠?
저번 글에 댓글과 보팅 주신 많은 분들 감사드립니다!
이번 글의 주제는 칭화대 4년 무사 졸업기입니다.
(두편으로 나눠서 쓸계획입니다^^)
한국의 서울랜드,에버랜드,롯데월드를 합친것보다 큰 크기,
대륙의 대학이라는 말이 어울릴정도로 유명한 학교죠...
그중에서도 특히 저희학교 이공계열은 6년 내에 '졸업'만 해도 성공이라는
말이 있을정도로 졸업이 힘든데요.. 그 좌충우돌기를 그려봤습니다!
어쩌면 이렇다할 임팩트는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칭화대 4년 무사 졸업기 - 1 : 졸업을 설계하자!
출처: 구글
엄청난 우여곡절 끝에 중국유학을 시작한지 3년이 되가는 시점
운이 좋게도 합격한 대학.... 의욕적이게 등교를 시작했다.
1.저 신입생인데요?
대학교 1학년 첫학기, 꿈에 부풀어 들어간 학교 첫 수업은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고작 1학점짜리, 한주에 한번와서 들으면 되는
가벼운 수업, 수업이름도 "전문소질교육" 4년간 함께할.. 아니
함께 했으면 좋겠을 친구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전공 수업의 첫 과제...
"QQ 채팅 프로그램을 만들어오세요~ 물론 특수기능도 하나씩!"
(QQ는 한국의 버디버디, 네이트온 처럼 한시대를 풍미하고
여전히 국민 채팅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은 프로그램이다)
???? 동기들끼리 쳐다보며, 강의실 번호를 확인했지만
우리가 들어야하는 그 예의 1학년 첫수업이 맞았다.
그렇게 멘붕을 당한 채 대학 첫 수업을 마쳤다...
다시 생각하기도 싫기에 간단하게 결론만 말하자면
-해냈다. 시간이 없어 채팅창 투명도 조절기능만을 추가한 채...
(갓 구글 만만세)
-사라졌다. 같은반 중국학생들 15명 가량이 2학년 때 전과를 해버렸다.
여담으로, 우리과는 IT계열인데 컴퓨터를 만져보지도 못한 애들이 10명 정도 있었다.
그 이유는 일단 학교이름을 보고 나는 몇만명중에 1등이니깐 여길가야지!
하고 상경한 애들이었다. 그 아이들은 당연 모두 1학년을 마치고 사라졌다.
-늘었다. C언어는 초등학교때 정보올림피아드 금상을 받은 경력이 있어서
어느정도 하였으나, java는 존재자체만 알았던 나를 1달만에 c언어처럼
능숙하게 다룰 수 있을정도의 실력으로 올려놓았다.
마지막 주쯤 조교가 하는말 "아! 이 수업은 FAIL 없는거 알지??"
웃음기가 가득찬 상태로 말하는건 누가봐도 일부러 그랬다는
반증이지않을까?
하지만 이 수업을 통해 한가지는 깨달았다... "불가능은 없다"
그리고.. 이게 우리학과 전통 신입생 환영식이구나...
2.어차피 할거... 미리 하자!(feat. 김동성 분노의질주)
그렇게 한학기가 사라지고... 1학년 수업들은 c언어를 어릴 때 해놓아서 그런지
미적분 같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하는(?) 그런 수업을 제외하고는
전부 상위권에 들었었다. (알다시피 1학년 1학기는 바빴다..)
그렇게 1학기가 끝나고 어느정도 4년 계획은 세워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학과 사무실을 찾아가 4년치 커리큘럼을 달라고 하였다.
전체적인 내용을 요약해보면
-4년간 이수학점은 120학점
-다른 이공계열과 다르게 교양수업이 하나도 없다.
-대신 매년 핫한 IT 이슈에 따라 약간씩 커리큘럼이 달라진다
-3학년 부터 본인이 원하는 분야쪽으로 커리큘럼을 만들 수 있다
이걸 본 내 결론은 빠르고 단순했다.
어차피 대학 4년동안 배워야 할 수업들... 일찍 들어버리자...
일종의 김동성 선수가 보여줬던 빨리가기 작전!
그렇게 1학년 2학기, 기본 커리큘럼은 18점 가량..
내가 수강신청한 과목 40점 가까이..
선행 과목이 없는 수업 중 2학기에 열리는 수업은 다 들어버린거다.
전략 역시 단순했다.
1.당시 12개 동아리를 가입해, 최종적으로 5개를 활발히 활동 중었는데
그런 동아리를 꼭 필요한 만큼으로 줄였다.(절대 안 나가진 않는다)
2.용돈벌이를 하던 과외를 그만뒀다. 학원 강의만 다녔다.
3.꼭 나가야 되는 수업과 숙제로 대체 가능한 수업 분류
*난 대학 4년 내내 예능과 드라마, '온라인'게임을 거의 보지도 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전략을 짜고 2학기를 맞이했다.
참고로 우리학교는 세가지 룰이 있다.
(오피셜과 뇌피셜의 종합, 약간의 변수도 있다.)
-세과목 이상 FAIL : 휴학 불가
-15학점 이상 FAIL : 경고
-25학점 이상 FAIL : 퇴학
이런 상황이기에 내 선택에 대한 주변 반응은 당연했다.
이거는 자살행위라고, 다음학기부터 못보겠다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대학공부는 학점을 조금씩 갉아먹어서 없애는
게임처럼 보였고, 해봤자 얼마나 어렵겠냐며 게임을 시작 했다.
결과는 다행히 성공적이었다!
-오직 2개과목 FAIL. 대학물리와 전기회로..(참고로 기본 커리큘럼이었다)
-즉, 나머진 올 패스!
보통 졸업까지 최소 2개 이상의 FAIL 과목을 들고다니는 거에 비하면
엄청난 성과였다. 만일 이때 이런 쇼부를 치지 않았다면 엄청난 압박 아래서
대학생활을 했을 것 같다.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승부처는 네개의 수업에서 생겼다..
첫째, FAIL이 뜬 두개의 수업 대학물리와 전기회로
전혀 공부해야된다는 동기부여도 재미도 없었다.
하지만 1학년 2학기 정규 커리큘럼... 내 인생의 수업을 피하진 않겠다!
라는 자신감과 함께 당당하게 FAIL이 되었다.(이로써 3과목 FAIL 군대 못감)
물론 시간 할애를 적게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두번째로, 복변함수와 확률...
전통적으로 이공계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수업들이었다.
이 수업들은 이공계 학생모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다양한 학년의 학생들이 보인다.
실제 이 수업이 있는날 과모임을 하는 과도 있었다.
이런 두 과목을 PASS할 수 있었던 과정도 꽤나 스펙타클하다.
3.수업에서 인생을 배우다.
첫번째, 교수님도 사람이고 정이든다.
복변함수는 간단하다면 간단했고 복잡하다면 복잡했는데
학기가 시작되고 책 전체를 3주간 훑어본 나는 교수님에게 달려갔다.
지금 미적분 공부와 복변함수를 같이 하고 있어서 복변함수가 어렵다.
그리고 내가 이루고자하는 꿈의 방향과 이 수업이 맞지 않는데 필수이다.
라는 당돌한, 어떻게 보면 버릇없는 말을 했다.
하지만 교수님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럼 숙제만 열심히 하고 모르는거 있을 때
언제든 와~ 라는 애매하지만 긍정적인 대답을 듣었다.
그렇게 1학기동안 밤새 일을 하고 회식이 있더라도 빠지지 않고 수업에 가서
자리를 지키고 숙제를 빠짐없이 냈다.
그리고 기말고사가 끝난 다음날, 교수님을 찾아갔고, 합격점에서 2점이
모자라단 얘기를 들었다.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 하고 가려는.. 연기를 하는데...
(사실 나갔다가 다시 들어올 생각이었다.)
"너 유학생이지?"라고 물어봤고 그렇다고 했더니..
그럼 그냥 2점 줄게라는 쿨한 대답과 함께 이공계의 무덤 복변함수 과목을
1학년때 패스하는 기염을 토해내었다.
후일담이지만 이 교수님은 해당학기 수업을 마지막으로 해외로 발령(?)나셨다.
덕분에 이런 꿀팁은 후배들에게 구전으로만 전수를 해줬을 뿐
사용할 수 있는 친구는 없었다. 최고의 행운이었다.
이를 통해 타협하는 법을 배웠고, 능력이 안되거나 여건이 안된다면
다양한 각도에서 문제를 해결해보는 방법을 배웠는데,
여전히 잘 사용 중이다. 실제 군 전역이 다가와 국내에서 취업자리를 알아볼 때
이 비슷한 방법을 사용했었는데, 다음에 한번 포스팅 해봐야겠다.
(참고로 나중에 머신러닝 공부할 때 복변함수를 제대로 공부하게 된건 비밀이다...)
(웬만해서 인생에 필요없는건 없는것 같다)
두번째, 로비는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도 있다.
확률 과목 같은 경우는 교수님이 나태한 편이셨고
그에 따라 반대급부로 조교의 파워가 막강했다.
따라서 타겟을 조교로 골랐고 공략법은 단순했다.
매주 이메일로 어려운 응용문제를 찾아 물어보고 답변할 때까지 질문하는..
모범생의 길이었다. 물론 확률은 아무리 봐도 내가 사용할 곳이 없다는
판단이었기에 답변이 맘에들 정도로 길게 오면 읽지 않고 넘겼다.
그 말은 즉, 답변이 짧으면 집요하게 물어봤다는 뜻이다.
결국 12주차 쯤 조교가 항복하면서 너 이정도 공부했으면 pass는 문제 없다는
보증(?)을 받았고 이후로 너만 믿는다면서 질문량을 줄였고 기말고사를 보았다.
기말고사 당시 아는 형을 도와준다고
어려운 문제 몇개의 답을 그 형에게 쪽지로 보내줬기에
사실상 기말고사 점수는 거의 비슷하게 나올 예정이었다..
하지만 총점에서 로비(?)의 효과가 드러나 버렸다.
63점 vs 48점... 말이 안되는 차이였다. 물어볼 순 없었지만
(참고로 중국 대학은 대학교도 100점 만점제이다)
대부분이 서술형이었던 문제의 특성상 기말고사 채점과 더불어
태도, 숙제 점수도 조교의 마음대로였는데..
나는 조교의 마음을 얻었던 것이다...(?)
이렇게 확률의 '확'자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로 PASS를 했다.
이렇게 다사다난했던 1학년 2학기의 경험은 내 4년간의
대학생활을 뒤바꿔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거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시간의 여유를 생각해보면 이때의 선택이
내 대학 4년을 바꿔놓았다고 단정지어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이 든다.
1편은 여기까지 써보겠습니다. 다른건 다 차지하더라도,
추억으로 회상할 때는 그땐 '그랬'었지로 끝나는 사소한 경험도
다시 복기해보면서 이렇게 써나가다 보니, 사소한 경험은 없다는걸
느끼게 되네요!
참고로 중국 대학교수님들은 천차만별입니다. 위의 방법이 통하시는 분이
계시면 안통하시는 분이 계시고 어떤 교양 과목같은 경우에는 아예 한국사람을
싫어하는 교수님도 계셔서 학기 초에 한국인 있냐고 물어보고
넌 이 수업 불합격이니깐 빨리 수업 빼! 라고 하는..
이런 극단적인 분들도 계시는 반면, 유학생이라면 일단 먼저
다가와서 챙겨주시는 교수님들도 계시고요..
역시나 대학생활도 사회생활의 축소판이 아닐까 싶네요!
2편까지 마치고 더 많은 피드백을 하기 위해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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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제 이벤트는 보팅만하면 되는 이벤트가 대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