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미술사학자 빙켈만은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 예술이 역사상 짱이야. 예술하려면 무조건 그리스 예술을 따라햇!
역사상 인체에 대한 예술 표현은 그리스인들에 의해 완벽할 정도로 연구되었다. 찬란한 예술의 전성시대를 누렸던 그리스의 바로 다음 시대가 중세다. 그런데 다음 그림을 보자.
생 클레멘트 성당 벽화
중세 시대의 벽화다. 허리는 기형적으로 길고, 올라온 무릎의 위치, 손에 비해 지나치게 작은 발, 굳어있는 표정.. 혹시 그리스와 중세시대 가운데 인류 대 재앙같은 것이라도 일어난 것일까? 여태껏 발전되왔던 예술의 노하우가 다 묻혀버린 것은 아닐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물론 아니다. 그들은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나 이외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
흔히 중세 시대라고 하면 기독교 중심의 암흑 시대라고 한다. 잘 알려져 있듯 그 시대의 모든 문화는 종교에 종속되어 있었다. 하느님은 성경에 뭐라고 말했는가?
나 이외의 우상을 섬기지 말라
자신 이외의 우상을, 어떠한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모든 그리스조각들이 진품이 아니라 그 이후 시대에 제작된 모조품인것도.. 모두 이 때에 행해진 기독교적인 성상파괴운동의 결과이다.
중세의 성상파괴운동
그렇다면, 회화는 이 형상 금지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회화는 아주 다행히도 든든한 '빽'이 있었다..! 막강파워 대교황 그레고리우스가 나서서 회화를 옹호하고 나섰다. 이유인즉,
회화는 글을 모르는 자의 성서이다
기독교적인 신앙의 전파에 있어서 글을 모르는 사람에겐 회화가 책을 역할을 해준다는 것으로써 탈출구를 마련할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제한된 의미로만 허락된 미술은 상당히 제한적인 성격을 띌 수밖에 없었다. 회화는 보았을때 쉽게 읽혀져야 함으로 보았을때 일단 명확하고 단순해야 한다.
성스런 목적과 관계없는 다른 감각적인 요소들은 모두 배제해야만 했으며, 회화는 본질적인 것의 표현에 대하여 집중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런 제한이 오히려 중세미술을 위대하게 만든 조건이 되었다.
혁명적 표현법
중세인들이 그리스 예술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을 순 없었다. 알게모르게,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그리스 예술의 영향이 이미 들어가 있다. 비록 사실주의 묘사는 포기하였으나 중세미술의 회화에 표현된 인물의 옷 주름, 전체적인 비례와 조화, 공간구성의 기하학적인 법칙들은 그리스의 비례론에 영향을 받았다.
다만 감각적인 표현을 포기했던 중세인들에게는 근원적인 것을 표현하는 그들만의 기하학적인 제작법칙(canon)이 존재했다. 맨 위의 그림<생 클레멘트 성당벽화>도 보면 이 법칙으로 제작되었다.
가령 인물얼굴의 눈,코,입은 세계의 동심원을 중심으로 만들어졌고 인물 뒤의 커다란 타원은 두 개의 교차하는 원의 교집합이고, 그 중심에 인물의 배꼽이 위치해있다. 모든사 물의 표현은 이런 기하학적인 단순함에서 비롯, 제작되었다.
그렇다면 색은? 가시적인 세계의 사실적인 모방을 포기한 그들에게는 색도 모방의 관념에서 자유로웠다. 중세미술가들의 과제는 '초월적인 빛'의 표현이었다. 물론 이 빛은 인간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빛이다. 미술가들은 스테인드글라스의 화려한 색이나 금, 은 등의 재료를 최대로 이용해서 이 보이지 않는 '빛'을 표현했다.
예술의 독창성에 관하여
흔히 예술이란 자신만의 독창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중세미술가들이 이런 창의적인 것으로부터 핍박을 받았다고 생각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중세인들은 구속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았었을 수도 있다. 과거의 것으로도, 기존의 것으로도 얼마든지 자신들의 표현의 목적을 이룰수 있었는데 구태여 새로운것이 필요했었을까 하는 얘기다.
곰브리치는 간단한 예를 든다. 결혼식에서 신랑신부가 자신들을 위한 축하 연주를 굳이 새로운 작곡을 원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훌륭하게 결혼식에서 연주되길 원할 뿐이다. 그렇지만 어차피 미술가들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비록 제작 법칙을 기준으로 그렸지만 그들의 그림에서는 미술가들의 개성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적는 <성 마태오>의 똑같은 주제의 각기 다른 화가의 그림이다. 두 그림 모두 흰 옷을 입었고, 탁자위의 책에다가 왼손에는 잉크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글을 쓰고 있다. 아마 이게 이 그림의 제작법칙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다르다. 무엇이 다른가? 바로 느낌이다. 그린 사람의 해석이 각각 그림속에 녹아들어있다. 왼쪽의 화가는 성마태오를 침착한 성인처럼 정적이게 묘사했다면 오른쪽의 화가는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적는 격렬한 순간의 느낌이다.
이집트 인들은 그들이 '알았던' 것을, 그리스 인들은 그들이 '본' 것을, 중세 인들은 그들이 '느낀' 것을 표현했다.
중세 미술의 의의
중세미술은 더이상 예술적인 암흑기가 아니었다. 그들은 최초로 보이는 세계의 모방이라는 예술의 한계에서 벗어나보이지 않는 것들을 그리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화가들은 그림 안의 사물의 장식적인 구성(composition)에 집중할수 있었다. 중세인들은 형태와 색채의 유희를 그 자체로 즐겼다.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하는 것.. 놀랍게도 현대 회화의 원리와 맞닿아 있다. 실제로도 중세미술에선 이미 추상회화, 텍스트를 이용한 예술, 다시점으로 그린 큐비즘, 추현실주의, 표현주의 등 현대예술이 시도했던 많은 것들이 이미 중세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이 시대의 미술가들이 사물을 본대로 그리려는 야심을 버리게 되면서 그들 눈앞에 전개된 가능성이 얼마나 큰 것이었나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참고문헌_
진중권 <미학오딧세이>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thelump
[초간단 미술사] 지난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