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선가 이 책이 좋다는 얘기를 듣고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읽어볼 요량으로 책을 들었다. 하지만 솔직히 책 제목도 그다지 흥미롭진 않았고, 겉표지도 굉장히 우울해 보였다. (나는 영어로 읽었기 때문에 바로 아래에 있는 밝은 그림이 아니라 저 아래쪽에 나오는 우울한 표지의 책을 읽었다) 읽을까 말까 몇 번이나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책을 펼쳤다. 책을 시작하면서도 재미가 없는 것 같으면 가차 없이 던져버리고 다른 책을 시작하려고 했다. 안 그래도 읽을 책은 쌓였으니까. 그런데 책이 말 그대로 와서 안겨 버렸다. 떼어낼 수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
책의 주인공은 중산층에, 유복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중학생 막내아들이다. 자애로운 부모님, 운동을 잘해서 모두에게 인기 만점인 고등학생 큰 형, 활달한 고등학생 누나와 함께 단조롭지만 행복한 일상을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집에 커다란 불행(Trouble)이 찾아온다. 큰 형이 차에 치인 것이다. 병원에 실려가긴 했지만, 형은 의식불명이고 팔도 하나가 절단됐다. 막내아들 헨리는 도대체 왜 자기 집에 이런 불행이 닥친 건지, 이 불행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하다. 영원히 평화로울 것만 같던 일상에 불행이 닥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병상에 누워있던 형은 결국 죽게 되고, 불행의 돌파구를 찾던 헨리는 형과 함께 하기로 계획했던 일을 혼자 해보기로 마음먹는다. 바로 험준한 카타딘 산을 오르는 것이다. 산을 오르는 게 이 모든 불행을 없애주는 것도 아니고, 고통을 줄여주는 것도 아니지만 헨리는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처음 가는 산행길에 절친한 친구 ‘샌본’이 같이 길을 나서 주었다. 헌데,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헨리는 카타딘 산으로 가던 중에 형을 차로 치었던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를 미워해야 할까. 저주해야 할까. 아니면 용서해야 할까. 처음에는 그에 대한 증오로 가득했던 마음이, 그에 대해 알아가면서 점점 혼란스럽게 변해갔다. 형의 비밀, 그 사람의 비밀. 헨리는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잘 극복할 수 있을까.
늘 영웅처럼 생각해왔던 형이 사고를 당한 후, 그 충격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한층 더 자라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주인공의 여정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이 책은 불행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그 불행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를 보여준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불행으로부터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니까. 우리는 결국 불행을 안고 함께 살아가야 하니까.
제목도 Trouble이고, 내용도 여기까지만 보면 좀 우울할 것 같지만 의외로 재미있고, 그다지 어두운 분위기도 아니다.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고 눈물을 떨구게도 하지만, 가끔은 키득거릴 정도로 웃긴 장면도 꽤 나온다. 중학생 아이가 있다면 같이 읽어도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찾아보니 한국에서는 이 책 번역본이 아쉽게도 절판된 것 같다. 정말 좋은 책인데 조금 아쉽다. 번역본을 구하는 게 힘들다면 원서로 읽는 건 어떨까.
이 책은 미국에서 중학생 추천도서다. 즉, 영어로도 미국 중학생들이 읽기에 딱 적당한 난이도라는 뜻이다. 내용도 좋고, 영어도 쉽다. 영어문법에 기본이 잡혀있고 독해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영어로 읽는 것도 권하고 싶다.
이미지 출처: Goodreads
나를 깨우는 책 속 몇 마디
1
Henry Smith’s father told him that if you build your house far enough away from Trouble, then Trouble will never find you. (p. 1)
헨리 스미스의 아빠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불행에서 아주 먼 곳에 집을 짓는다면 불행은 결코 찾아오지 못할 거라고.
우리가 노력하면, 불행에서 먼 곳에 집을 짓는다면 불행은 결코 찾아오지 못할까?
2
There was no need for any words. A heart that has lost knows every other heart that has lost. (p. 197)
아무런 말도 할 필요가 없었다. 상실을 겪어본 마음은 같은 아픔을 겪은 마음을 알아본다.
3
“No storm is forever,” Henry said to her. And he was right. No storm is forever.(p. 205)
“영원히 지속되는 폭풍은 없어.” 헨리가 그녀에게 말했다. 그 말이 맞았다. 영원히 지속되는 폭풍은 없다.
4
What happened was an accident. I know that. Maybe most trouble is an accident and it doesn’t help to blame anyone. When the blaming is all over, you have to start living again. (p. 216 )
그 일은 사고였다. 나도 알고 있다. 어쩌면 세상에 대부분의 불행은 모두 사고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누군가를 비난하는 건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난이 다 끝나고 나면, 다시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5
“Maybe I know why I’m going up,” he said.
Thaddeus Baxter spun the wheel again. “That so?”
“To find out how to live with trouble.” (p. 240 )“내가 왜 산에 가려고 하는지 알 것 같아요.” 그가 말했다.
할아버지가 돌아봤다. “그래?”
“이 불행을 안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아내려고요.”
한국어판 제목: 트러블
영어 원서 제목: Trouble
저자: 게리 D. 슈미트 (Gary D.Schmidt)
특이사항: 뉴베리 아너 상, 프린츠 아너 상에 이름을 올렸다.
Disclaimer) 본문에 실린 인용은 제가 직접 번역한 것으로, 한국에 출간된 번역본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는 책을 영어 원서로 읽고 있기 때문에 한국 출간본에서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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