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전쟁의 폭력과 광기, 인간의 잔인함을 낱낱이 드러내는 소설이다. 전쟁은 우리의 인간성을 짓밟고, 우리에게 도저히 할 수 없는 선택을 강요한다.
이야기의 배경은 1947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이다. 남부 출신으로 작가가 꿈인 22살 청년 스팅고는 회사에서 해고된 후 브루클린의 한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 같은 아파트에는 아름다운 폴란드 여인 소피와 다방면에(특히 문학과 음악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유태인 네이썬이 살고 있다. 이 책은 이들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상처를 다루고 있다.
처음에 읽을 땐 세 주인공의 우정과 사랑만을 다루는 책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읽다 보니 나치 수용소도 나오고, 아우슈비츠도 나오고, 한 인간(소피)의 처절한 선택과 그 선택을 강요한 시대/역사/우리 인간의 민낯도 드러났다. 한 때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말이 유행했었는데, 이 책을 보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전쟁이야말로, 미친 짓이다.
도대체 아름다운 여인 소피는 어떤 과거를 숨기고 있는 걸까. 스팅고는 그녀에게 점점 빠져들지만 그녀에게는 자신이 도저히 감내해낼 수 없는 엄청난 과거의 그림자가 배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알고 보니 그녀는 나치 수용소에 감금됐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그녀는 어떤 일을 겪었던 걸까. 그녀의 존재를 뿌리째 뒤흔드는, 강요받았던 ‘소피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출처: 교보문고
읽기 전에는 이런 어두운 내용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책 분위기가 계속 어둡기만 한 것도 아니다. 처음 앞부분 스팅고를 묘사한 부분에서는 실실거리면서 읽었으니까.
영어는 어려운 편이었다. 모르는 단어가 많아서 단어를 찾느라 문장 진행이 많이 더뎠다. 영어로 읽는 건 영어 독해 상급자에게만 권하고 싶다.
1982년에 같은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영화 평도 상당히 좋다. 이 영화로 주인공 소피 역할을 맡았던 메릴 스트립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LA 비평가 협회 여우주연상, 뉴욕 비평가협회 여우주연상, 전미 비평가 협회 여우주연상 등을 휩쓸었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젊은 시절 메릴 스트립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를 깨우는 책 속 몇 마디
1))
“Such a language!” she groaned, and in mock pain clutched her brow. “Too many words. I mean just the words for velocite. I mean ‘fast.’ ‘Rapid.’ ‘Quick.’ All the same thing! A scandal!”
“‘Swift,’” I added.
“How about ‘speedy’?” Nathan said.
“‘Hasty,’” I went on.
“And ‘fleet,’” Nathan said, “though that’s a bit fancy.”
“‘Snappy’!” I said.
“Stop it!” Sophie said, laughing. “Too much! Too many words, this English. In French is so simple, you just say ‘vite.’” (p 71)“뭐 이런 언어가 다 있어!” 소피는 이마를 부여잡으며 고뇌하는 시늉을 했다. “뭔 놈의 단어가 이리도 많은지. 빠르다는 말만 해도 그래. Fast, rapid, quick. 모두 다 같은 말이잖아. 정말 말도 안 돼!”
“swift도 있어.” 내가 덧붙였다.
“speedy는 어떻고?” 네이썬이 말했다.
“hasty도 있지.” 내가 거들었다.
“fleet도 빼먹으면 안 되지. 조금 고상하긴 하지만.” 네이썬이 말했다.
“snappy도 있고.” 내가 말했다.
“그만!” 소피가 웃으며 말했다. “너무 많아! 영어는 단어가 정말 많아. 불어는 참 간단하거든. 그냥 vite라고만 하면 돼.”
(폴란드인인 소피가 영어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장면)
흔히들 우리말의 위대함에 대해서 말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게 단어의 풍부함이다. 예를 들어, 영어로는 red 하나만 말할 수 있지만 우리말에서는 “빨갛다, 뻘겋다, 발갛다, 붉다, 불그스름하다, 새빨갛다, 시뻘겋다, 불그죽죽하다, 발그레하다, 발그스름하다.”등 다양한 어휘로 색깔을 표현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폴란드 여인인 소피가 같은 논리를 영어에 들이대고 있다. 프랑스어에 비해서 영어는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말의 풍부함을 영어로 온전히 표현하기 힘들다고 푸념하듯이, 어떤 이들은 영어단어의 풍부함을 불어로 온전히 옮기기 힘들다고 생각할까?
2))
“People acted very different in the camp, some in a cowardly and selfish way, some bravely and beautifully – there was no rule. No. But such a terrible place was this Auschwitz, Stingo, terrible beyond all belief, that you really could not say that this person should have done a certain thing in a fine or noble fashion, as in the other world. If he or she done a noble thing, then you could admire them like any place else, but the Nazis were murderers and when they were not murdering they turned people into sick animals, so if what the people done was not so noble, or even was like animals, then you have to understand it, hating it maybe but pitying it at the same time, because you knew how easy it was for you to act like an animal too.” (p. 311)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행동했어. 겁쟁이가 되는 사람도 있었고, 때론 용감하고 아름답게 행동하는 사람도 있었지.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은 방식으로 변하지는 않았어. 하지만, 스팅고, 아우슈비츠는 정말로 끔찍한 곳이야. 뭐라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끔찍스러운 그런 곳이야. 그곳은 “품위 있게, 우아하게, 인간답게” 행동할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세상 다른 곳에서는 그럴 수 있지만, 그곳에서는 아니야. 만일 누군가가 정말로 고귀한 행동을 한다면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그건 찬사를 받을 일이지. 하지만 나치는 살인마들이야. 살인을 저지르지 않을 때는 우리를 인간이 아닌 동물로 만들어 버렸지. 그러니 그곳에서 누군가가 그다지 훌륭하지 못한 일을 저질렀다면, 심지어 비인간적인 일을 저질렀다면 그걸 이해해줘야만 해. 증오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줘.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어느 누구라도 너무나 쉽게 동물이 될 수 있거든.
(소피가 아우슈비츠 감옥에 대해서 스팅고에게 말해주는 장면. 그곳에서 자신이 끔찍한 강요에 의해 비인간적인 선택을 했었다는 복선.)
3))
Auschwitz itself remains inexplicable. The most profound statement yet made about Auschwitz was not a statement at all, but a response.
The query: “At Auschwitz, tell me, where was God?”
And the answer: “Where was man?” (p. 560)아우슈비츠는 여전히 설명이 불가한 곳이다. 아우슈비츠에 대해 언급된 말들 중에 가장 심오한 말은 진술이 아니라 대답이다.
질문: 말해주세요, 아우슈비츠에서 신은 어디에 있었나요?
거기에 대한 대답: 사람은 어디에 있었는가?
한국어판 제목: 소피의 선택
영어 원서 제목: Sophie's Choice
저자: 윌리엄 스타이런 (William Styron)
특이사항: 메릴 스트립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영화 제목도 <Sophie’s Choice (소피의 선택)>이다.
Disclaimer) 본문에 실린 인용은 제가 직접 번역한 것으로, 한국에 출간된 번역본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는 책을 영어 원서로 읽고 있기 때문에 한국 출간본에서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책을 소개하기 위해 전반부의 줄거리만 일부 제공될 뿐 본 독후감에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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