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15. 짝퉁 인디언의 생짜 일기 by 셔먼 알렉시 - 꿈과 희망을 찾아나가는 14살 소년의 유쾌한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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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나 친구가 있어 좋은 점은 내가 슬프고 우울해 있을 때 나를 위로해주고, 내게 힘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주변 사람이 모두 다 우울해한다면 어떨까? 가족, 친구, 친척, 나아가 자기가 살고 있는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좌절과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고, 희망이나 꿈이라고는 찾으려야 찾을 수도 없는 그런 곳에 내가 살고 있다면 말이다. 태어난 환경을 탓하며 나도 그 안에서 헛된 삶을 보내게 될까, 아니면 과감히 그곳을 박차고 나올 수 있을까?

이 책의 주인공은 인디언 보호 구역에 살고 있는 14살 인디언 소년 아놀드(동네에서는 ‘주니어'라고 불리지만)다. 어릴 때 큰 병을 앓았던 아놀드는 항상 모두에게 놀림받고 괴롭힘을 당했다. 아빠는 (그리고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인디언들은) 알코올 중독자였고, 동네의 모든 인디언들이 다 가난했으며, 좌절감과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살고 있었다. 아놀드가 공부는 잘 했지만, 인디언 주제에 공부를 잘해봤자,라고 아놀드는(그리고 그 동네의 모든 인디언들은) 생각했다. 왜냐하면 가족, 친구, 친척, 그리고 아놀드가 살고 있는 인디언 보호구역의 어느 누구도 대학에 간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놀드는 알을 깨고 밖으로 나오기로 결심한다. 22마일(약 35.4km) 떨어져 있는, 인디언 보호구역 바깥에 있는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기로 한 것이다. 적어도 그곳은 학생들이 공부를 잘하면 어느 대학을 갈 수 있을지 같이 고민해주는 그런 고등학교였으니까.

멀리 떨어진 학교를 다니기 위해서는 아빠가 차로 데려다줘야 한다. 그곳까지 스쿨버스가 다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코올 중독인 아빠가 술에 취해 있거나, 차에 기름이 없거나, 기름 넣을 돈이 없거나, 기름 넣을 돈으로 아빠가 술을 먹고 뻗어 있으면 학교까지 그 먼 길을 걸어가야 하는데, 괜찮을까?
전학 간 고등학교는 학생과 선생님이 모두 다 백인이고, 자기 말고 유일한 인디언이라고는 학교의 마스코트 그림뿐이지만, 그래도 괜찮을까?
혼자서 백인이 되려 한다고, 마을의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혀서 마을 사람들과 친구들이 그를 괴롭히고 미워하지만 그래도 괜찮을까?

아마도 괜찮을 거다. 왜냐하면 아놀드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희망을 발견하니까. 자신의 미래에 ‘대학’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생전 처음 “넌 할 수 있어!”라는 말을 듣게 되니까. 그리고 자신이 진짜로 ‘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니까 말이다.

새롭고 낯선 세상에서 꿈과 희망을 찾아가는 이 여정은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저자가 “스포카네 인디언 보호구역”에 살았던 인디언이었다.

((스스로를 ‘짝퉁 인디언(part-time Indian)’이라고 한 것은 마을에서 사람들이 자기를 ‘백인이 되려고 애쓰는 배신자’, ‘사과(피부는 인디언처럼 빨갛지만 속은 하얀 백인)’라고 부르기 때문에 마치 자기가 진짜 인디언이 아니라 가짜 인디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라고 한다.))


출처: 교보문고

이 책은 현실은 막막하고, 미래는 암울하지만 여기에 굴하지 않고 꿈과 희망을 찾아나가는 14살 소년의 이야기를 유쾌하고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중간중간에 섞여 있는 (극 중 주인공이 그렸다고 되어 있는) 그림과 만화들도 읽는 맛을 더해준다. 더구나 14살 소년의 1인칭 시점 소설이라 청소년들도 흥미롭게 잘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자칫 암울하고 우울해질 수 있는 이야기도 낄낄거릴 정도로 재미있게 위트로 담아낸 저자의 글솜씨가 탁월하다.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책을 찾는다면 바로 이 책을 강추하고 싶다.

일기를 쓰듯 아니, 마치 눈 앞에 있는 친구에게 말하듯 글이 쓰여 있기 때문에 영어도 쉬운 편이다. 영어 독해 실력이 중급 이상인 분들이라면 영어로 읽는 것도 조심스레 권하고 싶다.


나를 깨우는 책 속 몇 마디

1))
도무지 공부에는 관심도 없는 인디언 보호구역의 학생들과 선생님들. 주인공인 아놀드는 이 모든 상황이 지겹기만 하다. 자기 분에 못 이겨 그는 그만 선생님한테 책을 던지게 되고,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자기를 무섭게 혼낼 줄 알았던 선생님이 의외의 말을 꺼낸다.

“You’re the smartest kid in the school. And I don’t want you to fail. I don’t want you to fade away. You deserve better.”

“I didn’t feel smart.”

“I want you to say it,” Mr. P said.

“Say what?”

“I want you to say that you deserve better.”

I couldn’t say it. It wasn’t true. I mean, I wanted to have it better, but I didn’t deserve it. I was the kid who threw books at teachers.

“You are a good kid. You deserve the world.”

Wow. I wanted to cry. No teacher had ever said anything so nice, so incredibly nice to me.

“Thank you,” I said.

“You’re welcome,” he said. “Now say it.”

“I can’t.” And then I did cry. Tears rolled down my cheeks. I felt so weak.

“I’m sorry,” I said.

"넌 이 학교에서 제일 똑똑한 애야. 난 네가 실패하길 원하지 않는단다. 네가 그렇게 사라지길 바라지 않아. 넌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어."

"전 별로 똑똑한 거 같지 않은데요."

"이 말 따라 해 보렴." P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뭘 따라 해요?"

"네가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말을 따라 해 봐."

나는 말할 수 없었다. 그건 사실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니까, 나도 더 나은 대우를 받고 싶긴 했지만, 내게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건 아니었다. 난 선생님한테 책이나 집어던지는 아이였으니까.

"넌 착한 애야. 넌 이 세상을 다 가질 자격이 있단다."

와우. 난 울고 싶었다. 어떤 선생님도 나한테 이렇게 좋은 말을, 이렇게 안 믿길 정도로 좋은 말을 해준 적이 없었다.

"고맙습니다." 내가 말했다.

"천만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자, 이제 따라 말해봐."

"전 못해요." 그러고 나서 난 울었다. 눈물이 내 뺨을 타고 흘렀다. 난 너무 나약하게 느껴졌다.

"죄송해요." 내가 말했다.

"I deserve better(난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말을 차마 스스로 하지 못해서 눈물을 흘리고 마는 아놀드. 우리는 모두 P선생님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You deserve better라고 말해주는 그런 선생님. 이 선생님과의 대화 끝에 아놀드는 나중에 백인 학교로 전학을 가기로 마음 먹는다. 더 나은 대우를 스스로에게 해주기 위해.

2))
인디언 보호구역에 살 때는 농구를 잘 못했던 아놀드. 어릴 때 병을 앓았기 때문에 그는 몸집도 작았고, 그보다 농구를 잘하는 친구들은 훨씬 더 많았다. 그런데, 새로 전학 간 학교에서 아놀드는 농구팀의 주전으로 우뚝 서게 된다. 농구팀 코치와 동료들이 모두 그가 잘 할 거라고 기대해줬기 때문이다.

Overnight, I became a good player.

I suppose it had something to do with confidence. I mean, I’d always been the lowest Indian on the reservation totem pole – I wasn’t expected to be good so I wasn’t. But in Reardan, my coach and the other players wanted me to be good. They needed me to be good. They expected me to be good. And so I became good.

I wanted to live up to expectations.

I guess that’s what it comes down to.

The power of expectations.

And as they expected more of me, I expected more of myself, and it just grew and grew until I was scoring twelve points a game.(p.180)

하룻밤 사이에 난 잘하는 선수가 됐어.

아마도 자신감과 상관이 있는 것 같아. 그러니까 내 말은, 인디언 보호구역에 살 때 난 항상 뭘 하든 제일 못했었으니까. 아무도 내가 잘하기를 기대하지 않았고, 그래서 난 잘하지 못했지. 하지만 이곳 리어댄에서는 농구 코치와 팀 동료들이 모두 내가 잘하기를 바라잖아. 모두 내가 잘하기를 희망하고, 내가 잘하기를 기대하지. 그래서 난 잘 하게 된 거야.

그 기대치에 맞추고 싶었으니까.

아마 그게 중요한 것 같아.

기대치가 가지고 있는 힘.

사람들이 내게 더 많은 걸 기대할수록, 나도 스스로에게 더 많은 걸 기대하게 됐고, 그렇게 점점 지내다 보니 난 어느새 한 게임 당 12점을 넣는 농구 선수가 돼있었던 거야.

3))
언제나 패배의식에 젖어 살던 주인공은 새로 전학 간 학교에서 “You can do it."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듣게 된다. 아무도 인디언인 그에게 "You can do it."이라며 응원해주고, 격려해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어학원 광고지에서나 볼 법한 흔해 빠진, 어쩌면 그래서 더욱 무시해버리기 쉬운 말이지만 그 말이 가진 힘은 여전히 크다. 이 말을 들은 주인공은 자신을 믿고 점차 성장해나가게 된다.

“You can do it.”

“I can do it.”

Do you understand how amazing it is to hear that from an adult? Do you know how amazing it is to hear that from anybody? It’s one of the simplest sentence in the world, just four words, but they’re the four hugest words in the world when they’re put together.

You can do it.

I can do it.

Let’s do it. (p.189)

“넌 할 수 있어.”

“난 할 수 있어.”

이 말을 어른한테 듣는다는 게 얼마나 굉장한 일인지 알아? 이 말을 다른 사람이 내게 해준다는 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아냐고. 이건 세계에서 가장 단순한 문장 중 하나야. 그저 4개 단어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하지만 그 4개 단어가 합쳐졌을 때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단어가 되는 거지.

넌 할 수 있어.

난 할 수 있어.

우리 같이 하자.

4))
주인공 아놀드가 새로 전학 간 학교 리어댄과 아놀드가 예전에 다녔던 인디언 보호구역의 웰피닛 학교와의 농구 경기가 열리던 날. 늘 자기를 놀리고 비웃던 예전 학교 친구들 앞에서 아놀드는 자신의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상대팀에서 아놀드를 마크하기 위해 나온 선수는 아놀드의 예전 절친 라우디였다. 아놀드보다 키도 더 크고, 농구도 더 잘하는. 한때 절친이었지만, 백인 학교로 전학 간 아놀드를 죽도록 미워하는 그런 친구. 아놀드는 이 경기를 이기고 싶었다. 그리고, 농구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라우디의 마크를 뚫고 슛을 성공시킨다. 이건 그냥 슛이 아니었다. 모두가 안 될 거라고 생각했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슛을 주인공이 성공시켰기 때문이다. (아마도 앞에서 언급된 것처럼 자신을 믿어주는 코치와 팀 동료들 덕분일 것이다.) 그 단 하나의 슛이 경기의 흐름을 바꿔 놓았고, 마침내 승리까지 할 수 있게 된다.

Yep, all of that fuss and the score was only 3 to 0.

But, trust me, the game was over.

It only took, like, ten seconds to happen. But the game was already over. Really. It can happen that way. One play can determine the course of a game. One play can change your momentum forever.

We beat Wellpinit by forty points. (p.194)

그래, 그 난리를 쳤는데 점수는 겨우 3대 0이었던 거지.

하지만, 정말로 경기는 거기서 끝났어.

그 모든 일이 일어나는데, 아마 한 10초밖에 안 걸렸을 거야. 하지만 게임은 벌써 끝난 거나 다름없었어. 진짜야. 원래 일이란 게 그렇잖아. 하나의 플레이가 경기의 흐름을 결정하기도 하고. 단 하나의 플레이가 경기의 기세를 영원히 바꿔 놓을 수도 있고.

우리는 웰피닛 팀을 40점 차로 이겼어.

이런 결정적 순간이 우리의 삶에도 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주변의 공기를 바꾸고, 나를 어제의 나와 다르게 만들어주는 그 무엇. 내 인생의 흐름을 바꾸어 놓을 한 순간의 용기, 과감한 결단, 찰나의 깨달음.
아놀드가 해냈던 그 하나의 플레이 - one play. 지금 당신의 인생에도 그 one play가 일어나기를. 당신이 그 one play를 기필코 해내기를. 그래서 새로운 당신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한국어판 제목: 짝퉁 인디언의 생짜 일기
영어 원서 제목: Absolutely True Diary of a Part-time Indian
저자: 셔먼 알렉시 (Sherman Alexie)
특이사항: National Book Award 청소년 부문 수상작, Boston Globe-Horn Book Award 수상작,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Disclaimer) 본문에 실린 인용은 제가 직접 번역한 것으로, 한국에 출간된 번역본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는 책을 영어 원서로 읽고 있기 때문에 한국 출간본에서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책을 소개하기 위해 전반부의 줄거리만 일부 제공될 뿐 본 독후감에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덧글) 지금 글을 쓰며 찾아보니 이것도 절판도서네요. 왜 제가 추천하는 책들은 다 절판인 거죠? ㅠ.ㅠ 혹시 기회가 된다면 도서관에서 빌려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독후감] 지난 독후감들 최근 5개 링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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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벌들의 비밀 생활 by 수 몽 키드 - '나'를 찾아가는 여행
12. 러블리 본즈 by 엘리스 세볼드 - 그들이 다시 '가족'이 되기까지
13. 트러블 by 게리 D. 슈미트 - 불행을 껴안고 함께 살아가기
14. 소피의 선택 by 윌리엄 스타이런 - 인간이 견뎌내야 할 전쟁의 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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