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단편 - 춤추는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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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생각들




 작년 봄, 아무도 없는 도자기 실습실 안을 잠시 거닐고 있었다. 도자기과에 편입한 미쉘양이 학과사무실에서 수강신청을 하는 동안 실습실 문을 살짝 밀고 들어가 버렸던 것이다.

 그곳은 바닥에 흙이 눈처럼 쌓여있고, 작업대와 의자, 수도꼭지 할 것 없이 모든 사물에 바스러진 흙이 더덕더덕 묻어있는 공간이었다. 학기가 시작되지 않았으므로 선반은 완성된 작품 하나 없이 비어있었다.
 내 시선은 선반과 바닥을 훑다가 열려 있는 스티로폼 박스 하나를 발견하고 말았는데, 그 안에는 도자기 파편들이 하나의 오브제처럼 굳어있었다. 형체가 반쯤 남아 있었는데 그걸 빚던 주인이 변덕을 부려 한순간에 뭉개버린 것이었다. 그것이 '그만둔 생각'으로 느껴졌다. 흙이 뭉쳐졌다가 다시 바스러지는 것을 상상해보고 잠시 전율을 느꼈다. 세상의 입자들은 이 과정을 얼마나 되풀이했을까?


 그 순간 생각들이 나에게 달려왔다. 그 공간에서 피어나고, 또 버려지고, 완성되었을 누군가의 생각들이. 그것들은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일어나는 모든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생각들이 동시에 춤추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입자처럼 느껴졌다. 난 사실 나에게 주어진 생에서 어떤 것을 완성하고 싶은 게 아니라, 피어나는 내 생각들을 다양하게 경험하고 싶었다. 나라는 한 입자가 다른 입자를 맛보는 것이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았다. 한 미대생이 도자기를 빚는 과정처럼, 나는 생각을 구현해보고 싫증이 나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폐기하고 또 다른 재미있는 것을 만들어보고 싶다. 길고 긴 생에서 행복을 하나의 완성된 결정체로 본다면 얼마나 따분한 일인가.


 방금 미쉘양이 보낸 사진을 받았다. 물레 차는 것이 어렵다던 그녀는 어느덧 졸업반이 되었다. 가마에서 초벌 되어 나온 수반과 접시와 잔들이 제법 모양을 갖추고 있다. 이렇게 그녀의 생각이 응고가 되어 아름다운 결정체가 되었지만 유약을 칠하고 재벌 되는 과정에서 몇 개는 살아남고 또 몇 개는 버려질 것이다. 지금 당신이 빚고 있는 생각처럼. 당신은 지금 무슨 생각을 응결시키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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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단편들


누군가의 기억 속에 저장되는 것
꽃이 기다린다
파란 우연
산책자
어젯밤 꿈이 나에게 말해준 것
도착을 더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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