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 세라
현대미술을 어려워 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모나리자>를 보고 혼란스러운 사람을 없을 것이다. 왜일까? 예컨대 추상화에서는 그림이 뭔가를 가리키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모나리자는 언젠가 존재했던 실제 인물을 '가리키고' 있는 재현 예술이기 때문이다. 외부 대상을 가리키는 것을 우리는 '기호'라 부른다. 2018년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이런 예술의 방식에 익숙하다.
잭슨폴록
기호의 상실
모더니스트들은 자신의 그림이 '다른 것'임 을 포기한다. 그들의 그림은 더 이상 다른 대상을 가리키지 않는다. 다빈치로 대표되는 고전주의적 성격의 그림은 막을 내린다. 모더니스트의 그림은 외부 대상을 가리키지 않고 오직 '그림 자체'를 위해 존재한다.
과거의 화가들이 캔버스 속에 이미 존재하는 것(모나리자)의 기호를 만들어냈다면, 모더니즘 이후의 화가들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기호를 창조하려 한다. 모방, 재현, 기호으로부터 독립한 그림은 외부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며, 추상화처럼 비로소 그림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기 시작한다.
더욱 더 평면적으로
미국 모더니즘 미술을 부흥시킨 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주장도 이러했다. 그는 이렇게 침 튀겨가며 그림의 '평면성'을 주창했다.
그림이 다른 것을 가리킬 필요는 없다. 이제 제발 모방의 예술에서 벗어나보자! 캔버스는 누가 봐도 평면인데 왜 자꾸 3차원 세계를 따라하려 하냐고. 제발 그만. 캔버스가 평면이면 평면다운게 진정한 그림이다! 그림은 평면! 따라해봐 그림은 평~~면!
바넷 뉴먼
마크 로스코
그린버그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사실 미술사에서 잭슨 폴록이 커다란 명성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그린버그의 역할이 90%다. 잭슨 폴록은 거의 무명 작가에 불과했다. 하지만 유럽 모더니즘에 대항해 미국은 자신만의 '국뽕' 작가가 필요했고, 그럴싸한 이론을 만들어낸 그린버그에게 '간택' 당했던 작가가 바로 잭슨 폴록. 여담은 여기까지.
그냥 하나의 사물이 될래 - 미니멀리즘
캔버스에서 아무런 외부 대상을 가리키지 않는 그림들은 '추상 표현주의' 라는 이름을 달고 점점 평면적으로 달려갔다. 이제는 색 하나만 있는 소위 '뺑끼칠'한 작품까지 나온 마당에, 더 평면적일 수는 없었다. 갈 때까지 갔다는 이야기.
극단주의자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미니멀리즘이 이 타이밍에 슬슬 나오기 시작한다.
캔버스에 아무리 평면적으로 그린다고 한들, '그린다' 라는 개념은 어쨌든 현실에서 없는 뭔가를 있는 것처럼 꾸민다는 이야기잖아? 나는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그리는 것은 싫어. 차라리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을 뙇! 하고 만들거야!
도널드 저드
칼 안드레
이렇게 '가짜' 가 아닌 '진짜' 사물을 열망하는 미니멀리즘 미술이 생겨난다. 그들의 작품은 3차원 실제 세계를 모방했던 전통적인 조각 작품과도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미니멀리스트는 '그냥 거기에 있는 사물', '아무것도 재현하지 않는 그냥 그냥 그으으으으으냥 사물'을 만들어 낸다.
미니멀리즘의 출현은 '전통적인 작가의 붕괴'를 일으키기도 한다. 우리가 '미술가' 하면 떠올리는 장인적인 테크닉이나 손맛 따위가 하나도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니멀리스트들은 자기 작품에 손 까딱 하지 않고 오로지 공장에 의뢰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미니멀리스트들에게 중요한 것은 '제작 능력' 보다는 '아이디어' 였다.
오늘날 어떤 디자인을 보고 "와 미니멀한데?" 말하기도 한다. 미니멀리즘은 이제 디자인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하지만 미니멀리즘은 미적인 '간지'를 쫓다가 나온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하나의 사물을 열망하면서 탄생했다는 사실.
@thelump
[초간단 미술사] 지난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