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가게 자리를 구한 후 임대차 계약서를 썼을 때의 감정을 잊을 수 없다. 퇴사하면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는데, 현실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바닷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기분이었다. 내가 나 자신을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비장한 마음가짐과 가게가 잘 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휘둘렸다.
그날 밤 꿈에 나는 실제로 아무도 없는 망망대해에서 허우적거렸다. 그런 나에게 큰 혹등고래가 헤엄쳐왔다. 너무나 거대해서 무서웠지만 살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에 얼른 넓은 등 위에 올라갔다.
혹등고래와 나는 긴 여행을 했다. 언어로 대화를 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 혹은 그녀가 나를 아끼고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친절한 혹등고래는 날 다른 대륙으로 데려다준 뒤 사라졌다. 넓은 등에 붙어 있는 따개비들의 촉감이 느껴졌고, 고래가 바닷속으로 잠수할 때 깊은 숨을 들이마셨을 정도로 생생한 꿈이었다. 굳이 꿈 해몽책을 뒤져보지 않아도 좋은 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깊은 잠재의식이 불안에 젖은 내 의식을 꿈속으로 초대해 불안한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내가 원하는 것을 추진할 수 있는 용기를 준 게 아닐까 생각된다.
오늘 주식시장도, 코인시장도 좋지 않았다. 나는 비가 오고 해무가 밀려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창밖을 보며 다이아나와 하루를 보냈다. 해무로 뒤덮힌 건물 사이로 꿈에서 만났던 혹등고래가 날아다닌다고 상상해보기도 했다. 음악도 듣고 계획된 수량의 스팀을 사서 스파업도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어느새 내가 돌고래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꿈이 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꿈 속의 혹등고래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 불안할 때 살짝 다가가서 말없이 넓은 등을 빌려줄 수 있는 수줍은 고래가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의 단편들
누군가의 기억 속에 저장되는 것
꽃이 기다린다
파란 우연
산책자
어젯밤 꿈이 나에게 말해준 것
도착을 더듬으며
춤추는 생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