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mieinthedark님의 #kr-pet 일일 댓글 이벤트 (종료)
에 참여했던 댓글을 약간의 수정 후 포스팅으로 옮긴다.
시쳇말로 견권이라 하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던 1989년.
당시 송파구 가락동은 아파트를 비롯,빌라같은 주거건축물들이 여럿 지어지고 있었고,우리 가족도 한창이던 개발 붐을 타, 이모네와 함께 상가주택을 지어 이 곳에 자리잡기로 했다.
얼마 후 공사중인 여러 집들 가운데서도 꽤 그럴싸한 집이 지어졌지만,식구들의 눈엔 허전한 마당을 채워줄 무언가가 더 필요했나 보다.
모란 시장에서 공수해 온 하얀 바탕에 검은 땡땡이 무늬를 가진 녀석은, 누가봐도 영락없는 바둑이의 형상이었기에 세련된 외래어 이름 따위는 어울리지 않았다.
'갑돌이'
젖도 채 안땐 듯한 이 강아지는 어미품이 그리웠는지, 유난히도 사람곁에서 떨어지기 싫어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강아지 버릇을 바로 잡는다는 명목하에 매정하게들 마당에 홀로 재우는 방향을 택했고,놈은 해가 지면 늦게까지 울다 지쳐 잠이 들곤 했다.
개 짖는 소리에 괴로움을 호소할 이웃같은건 아직 들어오지도 않은 시점이니, 그저들 갑돌이가 집 잘 지킬 강직한 놈으로 자라주기만을 바라고 행한 선택이었으리라.
식구들은 해가 밝으면, 어두운 밤을 홀로 지샌 것에 대한 보상으로 격한 인사를 나누어 주었다.그래서,그렇게 갑돌이는 밤낮없이 목이 쉬도록 울어대는 버릇이 생겼다.
정말 다들 개를 몰라도 너무 모르던 시절이다.
방과 후 여느 날들처럼 갑돌이가 기다리는 마당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오후 시간 대에 갑돌이를 챙기는 책무는 수업을 가장 먼저 마치는 - 늦둥이인 - 나의 몫이다.
이 날은 이상하게도 먼발치부터 식구들 기척을 알아듣고 짖던 갑돌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약간의 당황한 마음을 품고 갑돌이집 곁으로 가보니,바둑알같던 흑백의 털은 간데없이, 뿌연 먼지덩어리 회색 개가 한마리 엎드려 있었다.
반죽된 시멘트.
그 질척한 것을 뒤엎어 쓴 상태로 굳어버린 갑돌이는,조용히 눈만 깜빡거리며 누구든 와주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근처 공사현장의 인부중 누군가가 한 짓이겠지.
서너달 된 강아지 짖는 소리를 진정시킬 다른 방법도 많았을텐데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식구들은 분노와 죄책감이 혼조된 마음으로, 가해자를 찾기 위한 온갖 방법을 동원했으나,그 어떤 성과도 낼 수 없었다.
동물이든,사람이든 무슨 짓을 당해도,저질러도..
경우에 따라서는 이렇게 아무 대책없던 그런 시절.
급하게 찾은 동물병원에서 이물들을 제거하는 몇몇 처치 후, 별 일 없을거라는 이야기를 듣고나서야 진정을 한 기억이다.
그런데 사촌형의 말을 듣자하니 수의사 앞에서 내가 험한 욕을 잔뜩 내뱉었다고 한다.9살 어린아이의 입에서 방언처럼 터져나오는 증오의 언어들을,수의사도 연신 맞장구를 쳐주는 이상한 광경이 펼쳐졌다고 하는데,그런 것들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교 후 평소보다 더욱 바삐 발을 옮기며 회복중인 갑돌이를 돌보던 어느 날.
잰걸음이 무색하게시리, 항상 있던 자리에 있어야 할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께 영문을 물으니 아버지 친구분이 계시는 시골로 보냈다며,지금보다 잘 뛰어 놀 수 있는 곳이니 안심하라는 사족을 덧붙이셨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이 말의 속 뜻을 풀어내는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도, 복잡한 궁리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모종의 이유로 반려동물과 거리를 두게되는 이들보다도 훨씬 이르다 싶은 시기에,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으리라 결심을 했다.
- 에필로그
27년 후
으으...ㅠㅠ
#루띠 시리즈 프리퀄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