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술] 2편_효도해보겠다는 생각에...
[아빠는 슈퍼맨 사진 찾다가 너무 귀여워서 사용해버린 사진]
1. 해군 장교 복무 시절
해군 장교로 복무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초군반을 맞치고 실무배치를 진해에 있는 군수사령부로 배치를 받게 되었다. 어리버리 얼타는 소위 생활을 진해에서 잘 보내고 있던 어느 무렵, 면세주류가 할당된다는 공문이 나온 것이다.
"면세주류가 뭡니까 행정장님?"
"위스키랑 브랜디 같은거 군대에서는 세금 빼고 사게 들어옵니다. 소위님도 주변에 선물해줄 곳 있으면 몇 개 싸게 사십쇼."
면세주류 할당공문에는 친절하게 술의 이름, 용량, 도수, 시중에서의 가격, 할인된 가격,사진까지 있었다. 가격은 3만원이 안됐다. 대략 67%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었기 때문에 정말 싸게 파는 것이었다.
그런데, 갓 대학을 졸업한 나는 항상 소주나 칵테일 정도만 마셔봤기 때문에, 술 하나에 3만원은 너무나도 비싸게 느껴졌다. 그래도 지금 아니면 이렇게 싸게 살 수도 없고, 아버지에게 좋은 술 한 번 선물해드린 적없어서 큰 맘 먹고 2병을 사게 되었다.
그래서 사게 된 술이 '루도빅'과 '임페리얼 퀀텀 19년산' 이었다. 둘 다 포장이 으리으리하게 느껴졌다. 두꺼운 크리스타일 병처럼 디자인이 아름다워서 이 때부터 양주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군대에 납품되는 술이다보니까, 군납 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심미적인 요소가 살짝 떨어지긴했다.
여담이지만 우리 세대는 술병에 '군납'이라는 단어가 적혀있는걸 썩 좋아하지 않지만, 아버지 세대에서는 '군납'이라는 문구가 박혀있을 때 더 쳐주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당시 나의 아버지 주변분들을 비롯해서 군복무를 같이 했던 동기들의 주변 지인들도 '면세'라는 문구가 박혀있는 것을 상당히 좋아했다. 그래서 면세주류 선물은 항상 어딜가나 환영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2. 위스키 병의 아름다움에 매료되다.
매일 초록색 소주만 보다가, 위스키와 브랜디를 보니까 병의 디자인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참고로 나의 어머니와 누나는 디자이너였기 때문에, 나 역시 디자인에 상당히 관심히 많은 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술 맛보다는 이런 외관에 더 끌렸던 것 같다. 군복무 시절을 기점으로 하여 나는 일단 면세주류를 모으기 시작했다. 소위 시절 월급이라고 해봐야 몇 푼 되지도 않았고, 진해에서 서울까지 주말마다 왔다갔다 하는 비용 등을 따지면, 쌩돈주고 술을 살 여력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내가 내돈주고 술을 사기 수월해진 시점이 또 온다. 해군 OCS 장교는 총 복무기간이 3년인데, 2년을 진해에서 지내고 남은 1년은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에 위치한 국군재정관리단에서 복무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이제 아무리 못해도 진해에서 서울을 왔다갔다하는 왕복 교통비는 아끼게 된 셈이다. 더불어 재정단 PX에는 면세주류는 아니지만 할인된 가격에 위스키, 브랜디, 리큐르가 진열되어 있어서 본격적으로 술을 사기 용이해 진 것이었다.
3. 효도해보겠다는 생각에...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 때 내가 진해에서 아버지에게 술을 만약 선물 안했다면? 분명 위스키 술병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을 거고, 내가 재정단에 가서도 술을 사는 일은 없었을 거다. 오늘 내가 술을 수집하고, 칵테일을 만드는 취미가 생긴 것은 어찌보면 아버지 덕분인 셈이다. 그 때 효도해보겠다는 생각을 안했다면 나는 이런 재밌는 취미도 못 가졌을 것 같다.
오늘 등장한 술
- 루도빅
[출처 : 솔래원 http://solraewon.com/product/p7/ 지금은 몽루아로 이름이 바뀌었다.]
군납 브랜디로서, 시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술이다. 브랜디는 포도주(와인)을 증류한 술을 의미한다. 아르마냑, 꼬냑과 같은 단어를 많이 들어봤을텐데, 아르마냑 지역에서 생산된 브랜디를 아르마냑이라고 부르고, 꼬냑 지방에서 생산된 브랜디를 꼬냑이라고 부른다. 만약에 아르마냑과 꼬냑 지역이 아닌 곳에서 생산된 포도주의 증류주라면 그것은 그냥 브랜디라고 부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브랜디는 꼬냑과 아르마냑을 포함하는 더 큰 카테고리라고 봐도 좋다.그런데 루도빅은 솔래원이라는 한국 기업에서 생산된 것이기 때문에 제품명에 브랜디라는 말이 붙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루도빅에서 몽루아 라는 이름으로 상표가 변경되어 판매되고 있다.
- 임페리얼
[아버지께 선물해드린 군납 임페리얼 퀀텀 19년 산은 이미 다 드셨고, 집에는 군납 임페리얼 17년 산이 남아있다.]
임페리얼의 등급은 12년, 17년, 19년(퀀텀), 21년으로 나뉜다. 당연히 연수가 높을수록 비싸고 고급지다. 5대 위스키를 생산지에 따라 분류하는데 스카치 위스키, 아이리쉬 위스키, 아메리칸 위스키, 캐네디언 위스키, 재패니스 위스키로 나뉘어 진다. 이중에서 임페리얼은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원액을 수입해와서 만든다. 임페리얼, 윈저는 아버지 세대에서 영업하시는 분들이 주로 맥주와 위스키를 넣는 폭탄주로 자주 드시는 술이었다. 독특한 점은 임페리얼은 세계 최초로 3중마개 시스템을 도입한 술이라서 위변조를 못하게 만든 스마트한 제품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임페리얼은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술 중에 하나이다. 스카치 위스키의 특징이 피트(토탄이라고도 부르며, 흙에 가지, 이끼층이 섞인 것을 의미)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인데, 아무리 수입 원액을 사용했다해도, 역시나 국내 생산 술에서는 그런 깊은 향을 느끼기는 어렵다.
※ [오늘의 술] 연재물은 #kr-series, #kr-youth, #kr-liquor Tag를 통하여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의 술] 8편가자, 광희동 중앙아시아거리로
@tk0319/8-
[오늘의 술] 7편소개팅과 애플마티니
@tk0319/7-
[오늘의 술] 6편불타는 칵테일 B-52
@tk0319/6--b-52
[오늘의 술] 5편전화위복(轉禍爲福)
@tk0319/5-
[오늘의 술] 4편좋아하는 사람과 바오밥나무
@tk0319/4-
[오늘의 술] 3편미군 부대 옆 바텐더에게 배운 레시피
@tk0319/3-
[오늘의 술] 2편효도해보겠다는 생각에...
@tk0319/2-
[오늘의 술] 1편소주 그만
@tk0319/1-
안녕하세요 tk0319입니다.
일상, 맛집, 여행기, 주류(Liquor)정보, 크립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예쁘게 봐주세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