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떠한 삶을 살았던 간에 죽게 되면 떠나가는 것이니 이 세상도 나의 여행지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것이 나라는 그 무엇이 지금의 내 모습으로 그대로 옮겨가는 것도 아니니 여행을 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내가 태어난 순간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태어난 이유도 모르고 태어났다. 죽음은 아직 경험하지도 못했다. 게다가 죽을 때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이라고 예측도 못한다. 이런 점에서 여행과 삶은 달라도 한참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통해서 이 세상을 떠나가는 연습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족감과 함께 미련과 후회없이 떠나가는 죽음이라면 멋질 것이다. 적어도 나의 죽음에 대해서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 것일테니까,
독일에서의 마지막 저녁이었다. 이곳에서의 모든 저녁 분위기가 아쉬워서 동영상에 남겼다. 그 다음날 이태리의 밀라노로 다시 날아가야 했기에 긴장이 되었다. 제노아에서 여기 오기까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시 독일을 떠날때도 힘들었다. 기후 사정으로 8시간 이상 딜레이되어서야 이태리로 향할 수 있었다. 아마도 독일은 나를 보내기 싫었나 보다.
내가 가본 유럽 여행지중 살아보고 싶은 곳을 뽑으라면 아시시와 이곳 뤼데샤임이다. 이태리의 아시시는 시골이라고 보는게 더 나을 것이다. 독일의 뤼데샤임은 프랑크푸르트의 근교이니 아시시보다는 더 문명화 되었다고 할까? 그러나 조용하고 멋스러움이 아시시에 뒤지지 않았다. 이곳에서의 마지막 저녁 한참동안 문을 열어 놓고 독일 근교의 저녁 풍경을 즐겼다. 만약 내가 죽음을 맞이할 때 이러한 마음이라면 어떠할까?
부와 명예를 얻고자 하는 욕망을 포기하면서, 물론 그것이 내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 일치감치 포기한 것이다. 능력이 되는데 포기한 것도 아니다. 나는 앞으로의 삶에 자발적 가난함과 풍요속의 평온함 두가지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고민했었다. 그런데 두 모습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모두 만족하게 사는 것일뿐었다.
나에게 유럽여행지에서 자발적 가난함의 이상향은 아시시였고 풍요속의 평온함의 이상향은 뤼데샤임이었다.
아시시의 마지막 밤 수도원 숙소에서, 시골치고 뤼데샤임과 다르게 밤 조명이 밝다
도서출판 춘자 @choon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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