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의 작은생각] 그대는 국가를 아는가? - 필로소퍼, ‘어용지식인’ 유시민을 동정하다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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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를 올리고 2부를 탈고하면서 다시 찬찬히 읽으니 자칫 ‘동정’을 빙자한 ‘교묘한 디스’로 읽힐 수도 있겠다 싶어 잠시 고민했습니다. 2부의 원고를 대폭 손질할까도 싶었지만 단념했습니다. 글에 투영된 내 욕망의 실체가 무엇이든, 독자들에게 어떻게 드러나든, 그건 독자의 몫이라 판단했습니다. 그에 따라 최소한의 수정만 가한 채 올려드립니다.


사회계약설? 별거 아니네~

1부 내용부터 정리하겠습니다. ‘국가가 뭔지 알고 싶어? 그럼 국가 없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봐. 국가가 없으면 인간이 본성대로 행동하겠지? 다음은 인간이 본성대로 행동하면 어떻게 될지를 상상해봐. 그때 뭔가 필요한 게 있어서 생겨난 게 국가야.’ 이게 사회계약설의 논리적 패턴입니다.

먼저 칠삭둥이 홉스: “국가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아, 무서워. 엄마가 전쟁난다는 헛소문에 놀라서 일곱 달만에 나를 낳았다잖아. 우리 아빠를 보니, 인간은 늑대야. 내가 살려면 남을 물어뜯어야 해(자기이익/자기보존 욕구). 그렇게 서로 물어뜯어대다 다 죽는 거야(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 짱 먹는 늑대(리바이어던)한테 전부 복종해(권력의 전면적 양도). 그러지 않으면 다 죽는다구!”

다음은 나르시스 루소: “국가가 없으면? 사랑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세상이지. 사유재산이 문제야(인간 불평등 기원론). 니 꺼 내 꺼 나누다 보니 사랑이 변질되서 아무흐~ 프로프흐~, 이기심이 생겨난 거라구. 우리 함께 잘 살면 좋잖아? 이걸 공동의 목적으로 두고 합의하자. 소의(특수의지)를 조금씩 희생하고 합의해서 대의(일반의지)를 취하는 거지. 이기심을 버리고 자신에 대한 참 사랑을 회복하자구(‘자연으로 돌아가라’). 그럼 사랑으로 가득한 세상을 다시 만들 수 있어.

마지막은 은근 매력남 로크: “국가가 없다고? 그래도 그냥저냥 잘 살 거야. 잘 살려고 태어났지 못 살려고 태어났니(신의 섭리)? 그러니 좀 불안하긴 해도 별일이야 있겠어? 근데 말야, 인간은 자기 꼴리는 대로 살잖아(자유의지). 그래서 별별 놈들이 다 생겨나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근데 나쁜 짓, 이상한 짓 하는 놈들, 울 각자가 일일이 지적하고 바로 잡아주려면 피곤하잖아(심판관 없는 불편함)? 적절한 숫자의 심판들을 뽑아(대의제)! 그게 국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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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요지경, 인생은 아이러니~

홉스의 생각을 사로잡은 건 공포입니다. 국가 없는 자연상태의 인간을 늑대로 본 것도 공포심의 발현입니다. 그 주체할 수 없는 공포심 때문에 인간은 절대 권력에게 무조건적으로 의탁합니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사상가들과 스스럼없이 교류할 만큼 학문적 상상력은 무한히 자유로웠으나 정치적 의식은 왕당파를 지지하고 절대 권력에게 자신의 자유를 기꺼이 내줘야 한다고 앞장서서 주장할 만큼 공포에 결박되어 있었습니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서, 자기를 보존하기 위해서!

반면, 루소는 오로지 사랑입니다. 루소의 사랑은 자신에 대한 사랑이고, 죽음에게 빚진 사랑입니다. 죽음에게 빚진 사랑이었기에 자신에 대한 그의 사랑은 절대적이었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행한 사랑의 결과들, 사랑, 결혼, 심지어 유럽 전역에 있었다는 그의 자식들에게조차도 책임지기를 거부할 만큼! 사유재산 제도로 인해 타락한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 합의를 통해 일반의지가 구현되는 국가를 세우자고 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 일단 합의를 하면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도 주장했습니다. 낙장불입에 손모가지;;; 사랑은 때로 끔찍히도 잔인합니다.ㅜㅜ

이 두 사람이 살아간 역정과 생각의 면면을 살펴보면 인생의 아이러니를 느낍니다. 한 사람은 무한히 자유로울 수 있었으나 국가 없는 절대적 자유에 대한 공포 때문에 일체의 자유를 포기했고, 또 한 사람은 이기심을 버리고 자연 상태의 참된 사랑을 회복하자고 주장했지만, 정작 자신은 사랑의 결과에 대한 일체의 책임을 거부한 (들뢰즈의 표현을 빌리자면) 냉혹한 독신 기계였습니다. 왜? 그의 ‘자신에 대한 사랑’은 죽음에 빚진, 절대적인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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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하면 인간의 본성이 드러난다고?

왜 이런 아이러니가 발생했을까? 지난 글 <그대는 화폐를 아는가>를 읽어보신 분들은 이제 뭔가 감이 잡히실 수도 있겠습니다.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해답을 얻기 위해 세 사람은 국가 없는 자연상태를 상상했고, 그러면 인간의 본성이 자연스레 드러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자연상태 속에서 그들이 발견했다는 인간의 본성은 사실 세 사람의 각기 다른 욕망의 투사물일 뿐이었습니다.

흔히들 ‘술 취하면 본성이 드러난다’고 합니다. 술에 취하면 수퍼에고가 사라질테고 수퍼에고가 사라지면 본성이 드러나게 되겠죠. 수퍼에고는 비유하자면 우리 의식 속의 규율 장치 곧 ‘각자의 국가’이니...

그런데 그 때 드러나는 본성은 ‘인간 일반’의 본성이 아니라 ‘한 개인’의 본성이라는 게 함정...^^ 술에 취하면 홉스의 아버지처럼 ‘개과 동물’이 되는 사람도 있고, 루소 생각처럼 자신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서 ‘민중은 개돼지’라고 하는 (나향X 같은) 사람도 있고, 심지어 옆에 앉은 이성의 몸을 제멋대로 유린하는 (안태X, 고X 같은) 사람도 있는가 하면, 가진 돈 모조리 털어서 모두 택시 태워 보내고 정작 자신은 집까지 걸어오는 헤르메스(!)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ㅋㅋ

(뜬금없이 든 생각: 그럼 술에 만취해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심신미약에 따른 행위로 형을 감경할 것이 아니라 사악한 본성을 교화할 수 있도록 가중처벌해야 하는 거 아님? ㅋㅋ)

어쨌거나;;; 이 문제에 관한 한 저는 로크가 옳았다고 확신합니다. 그가 옳았던 이유는 모르는 건 모른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교과서는 그가 인간의 본성을 백지(tabula rasa)와 같다고 했다지만 이건 오류입니다. 이건 동료 철학자(라이프니츠인 걸로 기억합니다)가 그를 빗대 쓴 표현일 뿐, 로크는 인간은 자유롭기 때문에 본성 따윈 알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몰라요~ 그때 그때 달라요~" ^^

어쩌면 그가 옳았던 건 그의 삶이 홉스나 루소의 삶만큼 드라마틱하지 않았기(재미가 없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권력자의 비호 아래, 때로는 양심을 지키고, 때로는 속이고, 때로는 적당히 비겁하고, 때로는 저항하고, 때로는 이유 없이 쫄아서 엉뚱한 곳으로 도망가기도 하는 대단히 평범한 인간의 삶... 위대한 통찰이 평범함에서 나오다니... 이 또한 인생의 아이러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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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

이제 유시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박상기 법무장관이 필요하다면 거래소를 폐쇄하겠다고 했습니다. 일단 동의했습니다.

'법을 어기면 폐쇄할 수도 있어야지... 예외 없는 법의 지배!!! 단, 법부터 만드셔야지?'

'필요하다면'이라는 단서를 '법 제정 후 그 법을 어긴다면'으로 호의적으로 해석했기에 억지로나마 동의했습니다.

유시민이 등장해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비슷한 이야기니 당연히 동의했습니다. 그리고는 비트코인에 한정시켜 이야기하자고 했습니다.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비트코인이 ‘교환수단’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고 투기 수단으로 전락했으니 규제를 하잡니다. 앞서 말한 일정한 전제(관련 법 제정 후 규제) 하에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의 분리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로 비화하자 분리 불가능하다면 모두 금지시켜야 한다고 불을 뿜습니다. 이건 동의할 수 없습니다. 폭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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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악의 기원-불안, 공포, 초조

혼란의 직접적 원인은 언어에서 왔는지도 모릅니다. 앞의 글에서 말한 대로 언어는 텅 비어 있기에, 말하는 자의 욕망이 그득 담깁니다. 그리고 불안과 공포와 초조에서 비롯된 욕망들은 빈번히 맥주 거품처럼 언어의 경계 밖으로 넘쳐 흐릅니다.

암호화폐라는 번역어에선 두 가지 욕망, 두 가지 공포, 두 가지 초조가 충돌하고 뒤엉킵니다. 집중화된 권력의 불공정한 지배에 대한 불안/공포/초조는 분산화된 권력이 새로운 ‘화폐’를 창출해주기를 욕망하는 반면, 국가에 의해 규율되지 않은 자유방임에 대한 불안/공포/초조는 ‘화폐발행권’의 이름으로 이러한 시도를 단호히 억압하기를 욕망합니다. 둘은 충돌하지만 ‘화폐’라는 그릇(기표)에 담긴 내용물(기의) 중에서 ‘권력의 측면’에만 유독 집착한다는 점은 공통적입니다. 히스테리! 욕망의 신경증적 발현입니다.

유시민의 잘못은 국가에 대한 히스테리시장에 대한 히스테리로 맞섰다는 것입니다. 기울어진 운동장, 불공정한 국가권력에 대한 청년층의 초조가 ‘투기 광풍’이라는 죄악을 낳았다면, 유시민은 국가 없는 자유시장에 대한 초조 때문에 ‘모든 암호화폐는 사기’라는 마녀사냥의 죄악을 낳은 겁니다. 국가 없는 자연상태에 대한 본능적 공포 때문에 절대권력에게 자유를 모두 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홉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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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지나치면 죄가 된다–‘어용지식인’이라는 나르시시즘

유시민은 작년 5월 <파파이스>에 출연해 어용지식인을 자임했습니다. 나는 그를 이해했고 작게나마 박수를 쳤습니다. ‘권력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지식인’이라는 자아분열까지 감수하겠다고? 오죽하면...’ 그의 욕망이 가진 진정성을 이해하려 한 것입니다.

지독한 사랑이죠. 민주주의에 대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절대적 사랑입니다. 그토록 사랑이 절대적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자신에 대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20대부터 일관되게 지켜온 가치, 신념... 민주주의자가 아니면 유시민이 아니니까... 그리고 그 사랑이 더욱 절대적인 것은 루소의 자기애처럼 죽음에 빚진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박종철, 이한열을 비롯한 수많은 민주열사의 죽음... 그리고 문재인 정부에 대한 동일시, 9년만에 찾아온 민주정부에 대한 사랑. 백남기 농민, 촛불혁명 그리고 가장 직접적으로 떠오르는 한 사람의 죽음... 노.무.현...

그와 그의 절대적 사랑을 공유하는 다수의 문재인 지지자들이 ‘암호화폐에 열광하는 2030세대’에 대해 연민과 멸시가 뒤섞인 양가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이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비틀린 욕망에 사로잡힌 2030세대’의 다수가 유시민이 쓴 <국가란 무엇인가>, <경제학 카페>를 읽거나 거기에 담긴 가치를 공유하는 ‘지적인 자식들’임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자유에 기초한 전인교육을 주장하는 <에밀>을 썼지만 정작 자신의 자식들은 사생아라는 이유로 외면했던 루소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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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 의한 지배가 아닌 법의 지배

어제도 난다 긴다 하는 연구자, 논객들이 페이스북에서 두 패로 나뉘어 암호 화폐를 놓고 논쟁하는 것을 또! 지켜봤습니다.

화폐다! 아니다 금융상품이다! 기껏해야 금융상품에 불과한 걸 두고 화폐라 하니 사기다. 그런 사기에 속는 젊은이들이 불쌍하다. 불쌍하긴 한데, 계속 고집부리면 엄벌해야한다!!!

조금은 지루했고 조금은 서글펐고 조금은 화가 나더군요.

여러분? 그 어원에 대해서는 다른 글 <cryptocurrency – 인디애나 존스와 슈퍼맨의 비밀!>에서도 밝혔지만 cryptocurrency는 어디까지나
currency, 즉 ‘통화’입니다. '통화'에는 그 분들이 논쟁한 그 모든 것들이 포함됩니다. 이는 네이버 지식백과만 찾아봐도 확인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런 자명한 일을 두고 저들은 도대체 왜 저토록 침을 튀기고 있는가? 저기에 담긴 욕망의 실체는 뭘까?

재미없고 평범하지만 은근 매력있는 로크의 생각으로 돌아갑니다. 암호화폐는 화폐일 수도 있고 금융상품일 수도 있고 일종의 서비스일 수도 있습니다. 그 용도, 그것을 매개로 한 공동체의 성격이 제각각이기 때문이죠. 공리로서 ‘논리적으로 요청해야 할’ 본성 따위는 없다는 겁니다. 각기 다른 용도에 따라 관련 법을 적용하고 관련 법이 없다면 제정하면 됩니다. 규율과 지배는 그 다음입니다.

이제 다시, 질문해야 함에도 하지 않은 질문을 할 때입니다. 국가가 있는 상태에 대한 공포와 초조국가가 없는 상태에 대한 공포와 초조가 부질 없이 대립하고 대중을 참주 선동하고 억압/저항하는 이 희대의 코미디를 종식시키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선 평범한 로크가 남긴 평범한 진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정의할 수 없는 것을 정의하려는 욕망부터 거두어 들여야 합니다. 본성 따위는 없다! 있더라도 알 수 없다! 끊임없이 변하는 것을 하나로 규정할 수는 없다!

예컨대 암호화폐/가상통화는 화폐일 수도, 유동성 자산일 수도, 금융상품일 수도, 심지어 한 공동체의 시민권일 수도 있다는 상상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것이 권력자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법을 수단으로 대상을 재단하고 억압하는 법에 의한 일방의 지배가 아닌, 국민들의 자발적 동의에 따라 대상을 합리적으로 규율하고 조정하는 법의 보편적 지배를 향하는 로크적 상상력의 출발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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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는말

그리하여, 헤르메스는 ‘어용지식인’ 유시민 작가의 현재를 감히 동정합니다.

바라건대 규율 없는 자유방임, 비인간적인 무한경쟁에 대한 불안과 초조를 가라앉히고, ‘비트코인 투기 광풍’에 투영된 젊은이들의 공정성에 대한 초조를 섬세하게 관찰하고 위무하시길... 날카로운 직관을 잠시 거두고 폭넓고 유연한 성찰을 통해 장차 새롭게 실현되어야 할 국가(=지혜로운 심판관들의 체계)를 상상해 주시길... 그리고 죽음에 빚진, 민주주의에 대한 절대적 사랑은 존중하나 거기에서 기인하는 공포와 초조를 늘 경계하시길...

그리하여, 유시민이 자임한 ‘지식 소매상’이 현실 정치의 굴레를 내던진 자기 긍정, 자유와 겸양의 표상으로 늘 기억되기를... 혹시라도, 누구에게라도, ‘지식 소비자’의 불안과 공포와 초조에 영합하여 분열과 억압의 욕망을 전파한 타락한 소매상(=약장수)로 기억되지는 않기를...


오늘 제가 나눌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보팅, 댓글, 리스팀, 팔로우 등 여러분의 반응은 무엇이든 헤르메스의 날갯짓을 더 힘차게 만듭니다. 헤르메스의 보람은 더 많은 사람들과의 나눔이니까요.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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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eversloth 님의 스팀파워 지원으로 쓸 수 있었습니다. 대역폭 제한으로 힘겨워 하는 뉴비에게 산타 할아버지처럼 몰래 스팀파워를 지원해 주고 가신@eversloth 님께 감사드립니다. 좋은 글로 보답하고 얼른 돌려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관련글: 오늘 산타 할아버지께서 찾아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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