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 욕망의 정치] 자유의 딜레마에 빠진 스팀잇, 제3의 길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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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선, 앞의 글에 이어 이사야 벌린의 '자유의 두가지 개념 -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좀더 이어나가 볼게.

  2. 소극적 자유, 즉 간섭받지 않을 자유를 너무 강조하게 되면 탈중심화가 곧 '개별화'라고 생각하기 쉬워. 개인 - 사회 또는 개인 - 집단을 서로 대립적인 것으로 생각해서 개인의 자유를 절대화하는 거지. 같은 맥락에서 타자로부터 간섭받지 않는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은 관계를 끊고 고립되는 거야. 스팀잇으로 치면 셀봇 대마왕들이 여기에 해당하지. 또 한 가지 방법은 타자와 관계는 맺되 서로에 대해 간섭은 하지 않는 방법도 있어. 스팀 파워를 임대/임차하거나 비드봇(보팅봇)을 운영/이용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가 되겠지. 거래는 있느나 간섭은 없는...

  3. 적극적 자유는 무엇인가를 지향하는 자유, 그것을 위해 실천하고 참여하는 자유야. 따라서 개인적으로는 각자 지향하는 바에 따라 자기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할지를 스스로 통제할 자유이기도 해. 적극적 자유가 가진 문제는 그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지향하는 가치 이외의 가치가 억압 당할 소지가 있다는 점일 거야. 집단 차원에서는 다수의 지향에 따라 소수의 가치가 배제 당하는 일이 있을 수 있고, 개인 차원에서는 목적 달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 욕구나 욕망이 억압당할 수 있겠지.

  4. 암호화폐 공동체는 비트코인의 창시자 사토시가 그러하듯, 국가권력의 자의적인 간섭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욕망에 바탕을 두고 있어. 그래서 적극적 자유보다는 소극적 자유를 중시하는 성향이 강하지. 스팀잇도 예외는 아니야. 문제는 가치 지향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가 거기에 맞게 설계되어 있다는 것... 어뷰징에 관한 견제 장치가 개별적인 '다운보팅' 밖에 없다는 네드의 말이 이를 증명해.

  5. 이를 내가 좋아하는 카프카 식으로 표현하면, 국가권력으로 대표되는 집중화된 권력에 대한 초조 때문에 파괴적인 탐욕 추구로부터 공동체 자체를 보호할 장치마저도 스스로 거세해 버린 셈이지. 스팀잇은 비관적으로 표현하자면 고담Gotham 시인 셈이야. 개인들(정확히는 개별 '계정'. 실체가 개인인지 기관인지는 아무도 몰라. 이 또한 '스팀잇 자유주의'가 갖는 맹점이지.)의 거의 무제한적인 권력 행사와 탐욕 추구를 허용하면서, 사악한 빌런들과 선한 자경단의 무자비한 권력 투쟁에 구성원 각자의 유무형의 재산과 운명을 내맡겨야 하는...

  6. 그런데, 스팀잇이 고담 시라면, 과도한 셀봇을 일삼거나 보팅풀을 운영하거나 @freedom처럼 스팀파워 임대, 비드봇 운영 등으로 스팀달러를 대량으로 빨아들이고 있는 거대 고래들을 '빌런들'에 비유하는 건 합당한 일일까? 뭐, 당사자들이야 들으면 기분 나쁘겠지만, 적어도 '수사적으로는' 완전히 부당한 일은 아닐 거야. 사실 빌런들도 원래부터 이기적이고 사악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들 또한 잘못된 구조, 뒤틀린 운명의 희생자들이었으니까 말이야.

  7. 하지만 도덕적 판단에서 한 발짝 거리를 두고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고래들의 입장도 이해가 안되는 건 아냐.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덩치에 걸맞는, 그리고 그들이 감수하고 있는 리스크를 보상할 만큼의 영양분을 섭취해서 생존하고 번식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지. 게다가 스팀의 가격상승이라는 외적 요인 외에는 스파 보유에 따른 이익 창출의 안정적인 내적 기반이 (셀봇, 보팅풀, 스팀잇 임대, 비드봇 운영 이외에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들의 행위를 도덕적으로, 그리고 일방적으로 매도하기 힘든 측면도 있어.

  8. 더구나 배트맨, 자경단 혹은 선한 고래들에 의해 유지되는 자유, 그들에 의존하는 자유가 과연 진정한 자유인가라는 의문도 제기될 수 있어. 이를 테면 어떤 착한 노예주가 부리던 노예를 자유롭게 풀어주고 먹고 살 길을 보장해 준다고 해서, 그 노예가 자유인이 되진 않는다는 거지. 그에게 자유를 부여한 것은 노예주의 자의적 판단이기 때문이야. 노예제가 폐지되지 않는 한, 그 노예는 자유롭다고 할 수 없어. 착한 노예주가 마음이 바뀌거나, 불행히도 죽기라도 한다면 그는 언제든 노예 신분으로 돌아가야 하는 운명이니까.

  9. 결국 스팀잇은 딜레마에 빠진 거야. 탈집중화de-centralization를 통해 개인의 자유를 도모했지만 맞닥뜨린 현실은 초집중화hyper-centralization일 뿐... 탈집중화=개별화individualization라고 착각한 탓이지. 물론, 의도적으로 그러한 착각을 조장하는 이들도 분명 있어. 그들의 공통점은 스스로 결여하고 있는 가치를 대중에게 강요함으로서 그러한 결여를 은폐하려 한다는 점이지. 자유당, 자유한국당, 자유민주당, 자유, 자유, 자유...

  10. 전두환의 폭정이 한창이던 83년에 건전가요로 유포된 '아! 대한민국'을 생각해보라구. '원하는것은 무엇이든 얻을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수가 있어.' 그리고 그 다음 가사는 이렇게 이어지지. '이렇게 우린 은혜로운 이 땅을 위해 이렇게 우린이 강산을 노래부르네 아아 우리 대한민국 아아 우리조국 아아 영원토록 사랑하리라...' 형들, 형들은 어때?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 있는 소극적 자유의 낙원, 스팀잇을 영원히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나? ^^

  11. 그렇다고 돈(스팀)과 힘(스팀파워)과 빽(고래의 후원)이 '장땡'이긴 어디나 마찬가지라고, 오히려 여기가 더 하다고 냉소를 보낸들, 비분강개 한들, 대안이 있나? 고래들의 금권정치, 패권주의(^^;)를 은폐/정당화하고 있는 스팀잇 자유주의에 대항해, 해방 직후 토지 개혁하듯 고래들의 스팀파워를 유상 몰수해 모든 스티미언들에게 골고루 나눠주자며 적극적 자유, 평등주의적 해법을 주장해 본들, 그걸 실행할 주체도, 시스템도 존재하지 않는 뜬구름 잡기일 뿐더러 정의의 원칙에 부합하지도 않아. 두 말하면 잔소리지?

  12. 그럼 어쩐다지? 역시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알량한 정의감, 도덕 의식일랑 아서라 말어라 살포시 접고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며 노인네 복덕방에서 수다 떨 듯 스팀잇 생활을 적당히 즐기는게 정신 건강에 좋을라나?

  13. 사실 얼마전까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어.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그런 생각이 완전히 없어지진 않았지...ㅋㅋ 하지만 말야. 지금부터 넉 달여 전, 스팀잇에 첫발을 내딛을 때를 생각하면 포기란 너무 이르지 않나 싶기도 해. 그래서 하는 말인데, 우리를 진퇴양난에 빠뜨리는 건 사실 우리 자신이 아닐까 싶어. 선택지가 둘 밖에 없을 거라는 고정관념이 우리를 딜레마에 빠뜨리는 건 아닐까 하는 거지. 요컨대 개입과 방임, 국가와 시장, 집단과 개인,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 적극적 자유와 소극적 자유의 이분법 혹은 이항대립적 사고에 다시 한 번 도전해보자는 거야.

  14. 일단 이 글의 주제인 '자유'에서 실마리를 찾자구. 적극적 자유는 실행할 유의미한 주체도 시스템상의 장치도 없으니 깨끗이 포기해. 그럼 남은 건 소극적 자유, 간섭받지 않을 자유 뿐인데 그것만을 추구한 결과가 지금의 삭막한 현실이니, 이걸 어쩐다? 어?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간섭받지 않을 자유 말고도 하나가 더 남아 있었어. 8항에서 잠깐 언급된, 타자의 자의적 지배를 받지 않을 자유 말이야. 오호라, 이것으로 뭔가를 시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른바, '비지배로서의 자유Freedom as non-domination'.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가능하게 했던 신로마 공화정, 이탈리아 공화정의 이상... 어쩌면 이것이 내가 꿈꾸어 온 욕망의 공화정, 스팀잇 리퍼블릭으로 향하는 입구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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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할게. '욕망의 정치'는 당분간 계속될 거 같아. (대학 때 전공을 이런 데 써먹는군ㅋㅋㅋ ) 워낙 큰 주제라 내가 감당해낼 수 있을지 자신은 없지만, 좀더 공부하고 사색하고 형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조금씩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도 있어. 탐색의 끝에 뭐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서로를 믿고 한번 가 보는 거지 뭐.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곧 다시 만나자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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