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 욕망의 경제] 미제스 교수님은 월급을 누구에게 받았을까? - 오스트리아 학파는 적폐사상?

스팀 공동체에는 유난히 오스트리아 학파에 관한 글들이 많이 올라옵니다. 심지어 ‘국가는 강도다’라는 급진적인 주장도 보게 되는데요. 스푸너라는 미국의 자유지상주의 사상가이자 변호사가 지은 책 제목이기도 한데, 저는 이런 주장을 접할 때마다 이런 짓궂은 질문을 하게 됩니다.

“흠... 그럼, 미제스 교수님은 강도한테 월급을 받은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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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폰 미제스 namu.wiki

오스트리아 학파의 대표 사상가인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빈 대학 교수였고, 빈 대학은 국립대학이며, 국립대학은 세금으로 운영되고, 세금은 국가라는 강도가 국민에게서 강탈한 것이므로 미제스는 국가라는 강도의 종범 내지 하수인이었던 셈인데... 세상에...;;;

그렇다면! 혹시 미제스가 제네바를 거쳐 미국의 뉴욕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건 학자로서의 양심 때문? 국가라는 강도로부터 월급을 받지 않기 위해서?!

오해하지 마시길... 저는 미제스라는 위대한 학자를 능멸하거나 오스트리아 학파에 대해 냉소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학에 ‘욕망’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은 당대에선 혁명적인 전환이었고 현재의 관점에서도 대단히 흥미롭고 유용한 문제제기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기존의 담론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행위’ 자체는 시대를 초월해서 바람직한 행위, 학문의 본질에 해당하는 행위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인간을 ‘행위’ 중심으로 이해하려 했고, 당대의 기계론적 사고방식에 의문을 제기한 미제스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과도 맞닿습니다.

제가 의문스러워 하는 것은 오스트리아 학파에서 얘기하는 ‘국가’라는 것이 도대체 뭘까 하는 것입니다. 경제학에서는 오스트리아 학파, 정치/윤리학에서는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 자유주의, 자유지선주의라고 번역하시는 분도 있습니다.)에 속하는 분들 사이에도 차이가 있지만 그 분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국가의 이미지는 ‘시장이라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즐거운 놀이터를 방해하는 불량배’ 정도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미제스 선생님에게 월급을 준 오스트리아라는 국가는 ‘착한 불량배’쯤 되겠군요.^^

질문이 번집니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즐거운 놀이터’를 왜 꼭 ‘시장’이라고 명명해야할까요? 이런 질문에 답하면서 그분들은 놀이터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놀이 가운데 ‘교환’에만 한정짓자고 할 겁니다. 시장은 이제 ‘자유로운 개인들의 교환이라는 놀이가 이루어지는 놀이터’로 정의될 수 있겠네요. (왜 꼭 '교환'이어야만 하는지도 질문하고 싶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그러나 짓궂은 본성을 주체하지 못하는 헤르메스의 질문은 멈추지 않습니다. 갑돌이랑 갑순이가 놀이터에서 딱지치기를 하며 놀다가 갑돌이가 토라져서 집에 가버리면 어떡하지? 딱지치기 이제 끝?

물론, 친구들끼리 치는 딱지치기 정도는 ‘이제 끝!’ 해도 됩니다. 갑돌이는 분이 풀리면 언젠가 돌아올테고 그때 딱지치기를 계속하면 되니까... 설령 갑순이와의 놀이에서 입은 상처가 깊어 이사를 가버리더라도 갑순이는 다른 친구와 딱지치기를 하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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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학파의 사상가들 namu.wiki

하지만,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교환 놀이는 한번으로 끝나도 아무 상관없는 딱지치기와는 다릅니다. 무한히 계속되는 놀이, 무한히 계속되어야 하는 놀이라는 거죠.

예컨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중고나라라는 ‘놀이터’에서 ID 갑순이와 ‘교환 놀이’를 하던 ID 갑돌이가 돈만 챙기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손이 미치지 않는 아마존 밀림으로 떠나버린다면 어떨까요?

갑돌이의 그런 행위까지도 국가라는 강제력이 침범할 수 없는 ‘자발적인 것’이기에 인정받아야 할까요? 그것이 인정된다면 ‘교환’이라는 놀이가 계속될 수 있을까요?

같은 맥락에서 헤르메스의 질문은 계속됩니다. 오스트리아 학파 말하는 ‘국가’란 무엇일까? 일정한 영토 내에서 ‘소속에 있어서의 강제력=국적’을 기반으로 합법적인 최고 권력=주권을 인정받는 정치 공동체 또는 정치 단위, 즉 state인가? 아니면 그러한 국가 내에서 국민들이나 다른 국가들에 대한 정치적 권력을 위임받아 행사하는 기관, 즉 government인가?

저는 오스트리아 학파가 국가의 개념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편의상 정치 공동체 또는 정치 단위를 ‘국가’,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기관을 ‘정부’라고 구분한다면, 무엇보다 그분들이 말하는 ‘국가’가 전자(국가)인지, 후자(정부)인지, 혹은 둘 다인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이러한 구분을 거친 다음, 다시 ‘놀이터의 비유’로 돌아가 보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듯합니다. 놀이터 자체는 ‘국가’이고, 놀이터에서 이루어지는 ‘교환 놀이’에서 때로는 심판 역할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참여자 역할도 하는 것이 ‘정부’라는 거죠.

그렇다면 국가에 대한 오스트리아 학파의 입장은 다음과 같은 입장 중 어느 하나이거나 둘 이상의 조합일 겁니다. ‘정부가 놀이의 참여자여서는 안 된다.’ ‘정부가 심판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 ‘국가라는 강제적 놀이터는 없어져야 한다.’

어? 여기서 잠깐! 이상해요. 놀이터는 ‘개인들’의 놀이터 아닌가요? ‘주관적 욕망’의 주체는 개인이지 집단일 수 없으니까! 국가는 집단이니 놀이터의 참여자가 될 수 없어요! 아하! 맞네요. 이상하네요. 이 분들의 주장이 얼마간 이해가 되는군요.

그렇다면 ‘심판으로서의 정부’도 마찬가지겠네요. 심판 역시 크게 보면 놀이의 참여자니까... 게다가 놀이는 자발적이어야 하는데 ‘강제력’이라니... 게다가 정부 또한 주관적 욕망을 가진 개인들로 이루어져 있으니 공정한 심판 따위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나아!

그러고 보니 ‘놀이터로서의 국가’도 마찬가지네요. 나의 ‘주관적 욕망’은 ‘코리아 놀이터’가 아니라 ‘USA 놀이터’에서 놀기를 원한다구. 나는 내가 가고 싶을 때 가고 오고 싶을 때 올 거야. 국적? 내 소속을 내가 왜 결정 못하는 거지? 인간의 본질은 자유야!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존 레논도 노래했어! Imagine there’s no country~ It isn't hard to do~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흥분했나요? 사실, 제가 흥분한 게 아니라, 오스트리아 학파 경제학자들이나 그에 관한 글들을 보면 이런 외침들이 귓전을 울리는 듯하여, 그 느낌을 그대로 옮겨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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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스의 명저 가운데 하나인 <인간 행동> www.goodreads.com

어쨌든 오스트리아 학파의 논리로 보면 참여자로서의 정부든, 심판으로서의 정부든, 놀이터로서의 국가든 존재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존재하는 걸 어떡해? 그러면 이런 응답이 가능하겠죠. “있어서는 안 될 것이 있으니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거 아니냐?”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런 대답은 오류, 자기부정입니다.

‘없어져야 한다’는 가치 진술입니다. ‘없다’는 사실 진술이죠. 사실 진술과 가치 진술은 뒤섞는 것은 학문적으로 부도덕한 일입니다. 그리고 엄연히 오스트리아 학파의 학설은 그 스스로 선언했듯이 미리 설정된 공리(사실진술: '인간은 ...에 따라 ...하게 행동한다')를 정점으로 한 ‘연역적 논리 구조’로 연결되어 있으며, 연역적 논리 구조에는 대표적으로 수학이 그러하듯 그 어떤 가치 진술도 끼어 들 여지가 없습니다.

반론을 피해 나갈 또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있지만 없어질 것이다’ 즉, ‘놀이 참여자로서의 국가(정부), 놀이 심판으로서의 국가(정부), 놀이터 자체로서의 국가는 존재하지만 언젠가는 없어질 것이다’라고 예측(예언)하는 겁니다. 좀 더 과감하지만 세련된 반론이죠.

하지만 여기에도 의문이 남습니다. 정부가 ‘놀이 참여자’로서 적극적인 산업 정책을 펴지 않았다면 우리가 지금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인프라를 향유할 수 있을까요? 정부가 ‘심판’으로서 갖고 있는 법적 강제력이 없다면, 우리가 ‘자유로이’ ‘마음껏’ ‘상대를 믿고’ 교환이라는 놀이를 할 수 있을까요? ‘놀이터로서의 국가’라는 ‘소속 상의 강제력’이 없다면 ‘먹튀’는 어쩐다죠?

어떤 사람은 세계 정부가 만들어지면 ‘국가’가 소멸할 거라 말하지만, 세계 정부는 ‘정부’가 아닌가요? 그 정부가 마음에 들지 않는 ‘주관적 욕망’을 가진 사람은 도망갈 곳조차 없으니(지구를~ 떠나거라~?ㅠㅠ) 그것이야 말로 ‘절대적 강제력’, 오스트리아 학파에게는 디스토피아, 악몽 그 자체가 아닐까요?

글을 마무리 하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저는 미제스 교수님이 국립대학의 교수였다는 사실을 비난할 생각이 없습니다. 국립대학 교수로서 월급을 받았는지 무보수 명예직^^이었는지도 모를 일일이구요.;;; 또 그 같은 사실을 근거로 오스트리아 학파의 허구성을 비난한다면, 그것은 학문적 맥락에서 벗어난 도덕적 차원의 비난이자, 당대의 시대적 상황과 맥락을 의도적으로 무시한다는 점에서 얼마간은 ‘비겁한 비난’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나라에서 오스트리아 학파의 경제이론과 자유지상주의 정치사상을 전파하는 (개인이 아닌) 핵심 단체가 ‘자유경제원’이고 그 단체가 ‘재벌’이라는 (개인인 아닌) 대기업 집단들의 이익 단체 즉 전경련에서 결정적인 후원을 받아 왔으며 전경련이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 이명박근혜 정권까지 (‘개인’이 아닌) 국가와의 부도덕한 유착을 자행해 온 현실은 어떤가요?

재벌, 자유경제원, 전경련, 이명박근혜 정권이라는, (현재 적폐세력이라 지목받는, 그리고 무엇보다 '개인'이 아닌^^) 집단 혹은 정부가 이 사상의 전파를 나름의 불순한(?) 정치적 목적을 갖고 은연중에 혹은 공공연하게 전파해 온 것은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말머리의 ‘욕망의 경제’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저는 멩거나 미제스의 문제 설정을 존중합니다. 근대 과학의 발생 초기였던 당대의 기계론적 사고방식, 그리고 그러한 사고방식의 경제학적 변용인 계량적 연구방법에 대한 문제 제기는 실로 전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들의 문제설정, 논리구조, 그리고 결론을 (특정한 정치적 목적에 따라 혹은 그들에 대한 과도한 존경심의 표현으로) 기계적, 이념적, 교조적으로 선전, 전파하는 데 있습니다. 이는 멩거나 미제스의 학문적 태도와는 정반대 되는 것 아닐까요?

중요한 것은 당대에서 그들의 문제설정이 가졌던 함의를 면밀히 따지고 그 과정에서 오늘날의 맥락에 적용될 수 있는 새로운 문제의식을 발견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것이야 말로 ‘적폐세력들이 후원해 온 사상’이라는 주홍글씨로부터 그들의 사상을 구원하는 일 아닐까요?

여기까지 ‘헤르메스, 욕망의 경제’의 첫 문제제기는 ‘국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제 글을 읽고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 많은 의문이 일어날 것입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오스트리아 학파에 대해 좀더 깊게,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얻게 된 개인, 욕망, 자발성, 행위, 가치, 자유 등 어마어마한 생각할 거리들이 해일처럼 덮쳐 오고 있습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는 여러분과 저의 마음속에서 샘솟는, 혹은 해일처럼 밀려드는 그 많은 의문들이 더 많은 생각, 더 많은 깨달음의 실마리가 되고 또 다른 문제 설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설렘으로 두려움, 즐거움이 교차합니다. 그리고 다음 글은 아마도 이 글에서 제기된 ‘국가’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국가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모색하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앞으로 결코 쉽지 않을 생각의 여정에 함께 해 주시길 기대하면서 제 글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제 글과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p.s. 몇 주 전에 제가 썼던 아래 몇 개의 관련 글들을 읽어 보시면 제 문제의식을 이해하시는 데 더욱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울러 @rothbardianism님이 쓰신 귀한 글 카를 맹거의 주관주의 가치론과 그 글의 댓글에서 @rothbardianism님과 나누었던 건강하고 흥미진진하지만 분량 또한 대단했던^^ 논의가 이 글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음을 밝힙니다. 이와 관련해서 다시 한번 @rothbardianism님께 감사드리며 여유가 되시는 분들에게 일독 또한 권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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