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의 교단일기] "시험에 플라톤이 나왔어요" - 두 동강 난 토끼 되살리기

"한 마리인 토끼를 두 마리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아마도, 무리하게 나눈 반 토막(?) 중 어느 한 쪽을 포기하고 싶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어서일 겁니다. 의지가 없거나 능력이 없거나, 혹은 둘 다일 수도 있겠네요. 남보다 앞서가야 한다는 대한민국 특유의 조급증에, 아이들마다의 기본적 소양을 세밀하게 키워줄 수 있는 시스템 상의 능력 부족이 겹치면서 ‘교육’이라는 애꿎은 토끼만 두 동강 난 겁니다."


며칠 여행을 다녀오고 스팀잇에 접속했더니 기분이 새롭네요. 오늘도 교육과 관련된 칼럼하나 올려드립니다. 위 발문을 보시면 짐작하시겠지만 인성교육/인문학교육과 수능대비/입시교육을 둘로 나누는 이분법적 교육관에 도전하는 글입니다. 이 글 또한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을 위해 제가 운영하고 있는 학교 블로그에도 게시되어 있습니다. 치타봇이 댓글을 달더라도 놀라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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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 플라톤이 나왔어요" - 두 동강 난 토끼 되살리기


“선생님, 국어 시험에 플라톤 나왔어요.”

​모의고사를 본 아이가 저에게 들뜬 목소리로 말합니다. 국어 선생님께 부탁해서 시험지를 확인해 보니 정확하게는 고대 그리스 소피스트부터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철학적 흐름을 개괄해 놓은 내용이더군요.

여하튼 <철학 입문> 수업을 통해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자들과 소피스트,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 대해 자세히 다루던 차였고, 때마침 수업을 하면서 ‘지금 배우는 거 국어에서 비문학 지문으로 나올지도 몰라. 하지만 시험이 공부의 목적이 아닌 건 알지?’라고까지 했으니 본의 아니게 ‘작두 탄 족집게’가 되어 버린 셈입니다.

바로 전 주에는 다른 녀석과 이런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쌤, 철학 시간에 배운 데모크리토스가 영어 수능 교재에 나와요. 짱 신기해.”
“오호~ 예습 좀 했나본데? 어쨌거나, 선생님 얘기 거짓말 아닌 건 확실하지?”

고등과정에서 철학, 역사, 교양과학, 연극, 예술 등 인문학을 가르친다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건 대학가서 배우면 되지. 고등학교 때는 입시 준비에 몰두해야 하는 거 아냐?”

그런 분들에게 이렇게 말하죠.

“인문학을 비롯한 본격적인 학문 탐구를 대학에서 하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럴 준비를 하는 것이 고등학교 과정인 것도 맞는 얘기죠. 고등학교 과정에서 학문 탐구의 준비를 어느 정도 했느냐를 객관적으로 가늠하는 것이 수학능력시험의 목적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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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말한 모의고사처럼 수능 문제의 상당 부분이 ‘인문학적인’ 내용인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오죽하면 제가 농반 진반으로 수능 교재는 훌륭한 인문학 교재라고 하겠습니까?

문제는 목적과 수단이 서로 자리를 바꾸었을 때 일어납니다. 이를테면 수능 출제를 담당하시는 분들은 ‘본격적인 학문 탐구 이전 단계에서 준비가 필요한 부분’에서 문제를 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수능이란 대학에서 ‘학문을 수련할 수 있는 능력’을 측정하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수의 학생을 효율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객관식’이라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고요.

반면 불안에 떠는 학부모들과 거기에 편승하는 일부(?) 입시 전문가들은 공부의 현실적인 목적이 수능 대비에 있으므로 교양 따위는 일단 접고 ‘문제 풀이에 필요한 공부’에만 집중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객관식 정답 맞추기에 초점을 맞춰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을 수능 대비 교재라는 비좁은 창을 통해 반복적으로 주입하는 겁니다.

​요약하자면 전자는 ‘중요하니까 문제를 낸다.’는 입장이고 후자는 ‘문제에 나오니까 중요하다.’는 입장일 텐데, 언뜻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후자처럼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게 되면 결국은 의도와 달리 효율이 오히려 떨어진다는 데 문제가 있죠.

아이들에게 다양한 직간접적 체험과 교양 학습을 통해 인문학적 소양을 키울 기회를 널리 제공하는 일과 그렇게 받아들인 지식과 소양을 수능이라는 측정 방식에 맞게, 수능 관련 교재를 통해 연습하는 일은 양립할 수 없는 ‘두 마리의 토끼’가 결코 아닙니다. 전자는 전자답게 후자는 후자답게, 교과 과정 내에서 균형 있게, 그리고 시의적절하게 녹여내야 할 한 마리 토끼의 두 가지 양태에 불과하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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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한 마리인 토끼를 두 마리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아마도, 무리하게 나눈 반 토막(?) 중 어느 한 쪽을 포기하고 싶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어서일 겁니다. 의지가 없거나 능력이 없거나, 혹은 둘 다일 수도 있겠네요. 남보다 앞서가야 한다는 대한민국 특유의 조급증에, 아이들마다의 기본적 소양을 세밀하게 키워줄 수 있는 시스템 상의 능력 부족이 겹치면서 ‘교육’이라는 애꿎은 토끼만 두 동강 난 겁니다.

작년 수능에는 아리스토텔레스, 재작년에는 마이클 폴라니가, 3년전에는 칸트가, 그리고 그 전해에는 비트겐슈타인이 국어 지문에 등장했습니다. 그 모든 내용이 철학 수업을 통해 가르쳤던 것이었죠. 영어 지문으로 등장한 것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나는데요. 흠…, 그래서 잠깐 생각해본 건데, 철학 수업의 제목을 <수능대비 철학특강>으로 바꾸는 건 어떨까요? 이름하여 역발상! 제목이야 어떻든 애꿎게 두 동강 난 토끼를 되살릴 수만 있다면…. 물론, 농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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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eversloth 님의 스팀파워 지원으로 쓸 수 있었습니다. 대역폭 제한으로 힘겨워 하는 뉴비에게 산타 할아버지처럼 몰래 스팀파워를 지원해 주고 가신@eversloth 님께 감사드립니다. 좋은 글로 보답하고 얼른 돌려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관련글: 오늘 산타 할아버지께서 찾아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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