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가지감天歌之感] 바가바드 기타 3장 카르마 요가 – 행위의 길
들어가기에 앞서
[천가지감天歌之感] 바가바드 기타 감상평 릴레이 이벤트를 @peterchung님이 제안해 주셨다(@peterchung/bhagavad-gita @peterchung ) 18주간 <바가바드 기타> 18장을 1장씩 참여자들이 돌아가며 감상평을 작성하는 것으로 대략 10분이 참여하는 이벤트이다. 좋아하는 책이지만 감히 감상평을 쓴다는 것이 쉽지 않아서 조금 망설여졌다. 그러나 다시 읽고 음미하는 기회를 삼고자 도전해 본다.
내가 맡은 부분은 <바가바드 기타 3장 카르마 요가 – 행위의 길>로써, 본격적인 가르침의 시작이라고 말해 볼 수 있다.(시공사, 2000년 초판, 정창영님 풀이를 참고로 함)
3장 감상평을 본격적으로 시작에 앞서 <바가바드 기타>에 대한 간단한 소개 및 1, 2장의 내용을 소개한다.
바가바드 기타 소개
산스크리트어로 ‘거룩한 자(신)의 노래’라는 의미를 가진 <바가바드 기타>는 기원전 2세기~ 5세기 성립된 힌두교의 성전(聖典) 중에 하나이다. 총 700구절로 된 서사시로, 사촌들과의 전쟁 앞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회의에 빠진 왕자 아르주나와 그의 스승(신)인 크리슈나의 대화 내용이다.
서막 요약 및 1~2장 내용 간단 소개
판다 왕이 죽고 난 후, 동생 드리트라슈트라가 왕이된다. 그는 판다 왕의 다섯 형제들을 거둬들여 자신의 아들과 양육하였는데, 드리트라슈트라의 맏아들 듀료다나는 판다 왕의 다섯 형제를 죽이려는 계략을 짠다. 그리고 그의 계략으로부터 살아남은 아르주나를 위시한 판다 왕의 다섯 형제는 원래의 자신들의 왕국을 되찾기 위해 사촌들과 전쟁을 벌이게 된다.
1장은 할아버지와 손자들, 삼촌과 조카들, 스승과 제자들, 아버지와 아들들이 생명을 내걸고 싸우려고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의 아르주나가 괴로움을 토로하며 스승 크리슈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내용이다.
[천가지감天歌之感] 바가바드기타 1장 < 내면의 전쟁 > @taotao
2장은 아르주나의 질문에 대해 크리슈나의 대답이 이어진다. 2장에서는 <바가바드 기타>의 전체 주제를 간추려서 전하고 있다. 크리슈나는 즐거움과 괴로움을 벗어나기 위해서 집착을 버려야 하며, 참자아 아트만만이 영원한 것임을 전하고 있다.
[천가지감天歌之感] 바가바드기타 2장 삼캬요가 @levoyant
[천가지감天歌之感] 바가바드기타 2장 < 샹키아 철학의 이론과 카르마 요가의 훈련 > @taotao
3장 카르마 요가 – 행위의 길
불교 및 힌두교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 중에 하나는 카르마(karma)이다. 카르마는 글자 그대로 ‘행위’를 의미한다(2000, 정창영, 시공사).
1-2
크리슈나여,
당신 말씀처럼 더 이상 미혹되지 않는
초월적인 지혜가 행위보다 중요하다면
어째서 저에게
이런 끔찍한 전쟁을 하라고 하시는 겁니까?
당신의 말씀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참으로 혼란스럽습니다.
가장 높은 선(善)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
한 가지로 결정하여 가르쳐 주십시오.
- 전쟁을 목전에 두고 괴로워하는 아르주나는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면서도 가장 높은 선에 대한 가르침을 요청하고 있다.
바가바드 기타를 풀어옮긴 정창영님은 바가바드의 배경이 되고 있는 전쟁은 내면의 전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바가바드 기타의 사상이 전쟁을 묵인하고, 전쟁도 신의 뜻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충실하게 이행해야 내생에 복을 받는다는 등의 설명은 <바가바드 기타>의 주제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주장을 염두하고, 아르주나의 질문을 접하면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4-5
단순히 행위를 포기한다고 해서
영적인 자유를 얻는 것이 아니다.
행위를 포기하고서는 그 누구도 완전함에 이르지 못한다.
단 한 순간이라도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고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자신의 본성 곧 타고난 기운에 따라
끊임없이 행위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8-9
아르주나여,그러므로 그대의 의무를 수행하도록 하라.
행위를 하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대는
그대의 육신조차 지탱할 수 없을 것이다.
신께 바치는 제사 외의
세상 사람들이 하는 모든 행위는 욕망의 굴레에 얽매여 있다.
그대는 어떤 결과를 기대하는
이기적인 욕망이 없는 행위를 하도록 하라.
모든 행위를 신께 제물을 바치듯이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말고 행하라.
괴롭고 힘든 상황에 들어가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회피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괴롭고 힘든 상황을 적당히 피해 다른 곳으로 가면, 그 곳에서도 어김없이 유사한 일이 반복된다. 겪어야 할 일은 반드시 겪게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를 괴롭히는 상사를 피해 다른 곳으로 전배를 갔더니, 거기엔 더 무시무시한 상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든지 하는 것들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삶에서 이러한 유사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은 자신이 타고난 본성, 습관, 사고, 행동 패턴 때문이다. 그 상황이 좋은 것이든, 싫은 것이든 만약 내가 그 상황을 벗어나고자 한다면, 피하기 보다는 돌파해야 한다. 돌파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것을 받아들이고 수용해야 한다. 위의 구절을 읽으면서 이러한 단상들이 떠올랐다.
19-20
그러므로 언제나 결과를 목적으로 삼지 말고그대가 해야 될 행위를 하라.
그대는 집착없는 행위에 헌신함으로써
깨달음과 평화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늘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행동하라.
어진 임금이었던 자나카 왕은
이런 행위를 통해 완전함에 이르렀으며,
다른 성자들도 이 길을 따름으로써 완전함에 이르렀다.
해야 할 일은 많지만, 그 일을 하는 의미를 모르겠고, 일에 집중도 안되고 괴로워하던 어느 날, <바가바드 기타>를 읽었다. '결과를 목적으로 삼지 말고, 그대가 해야 될 행위를 하라.'라는 문장이 가슴에 콕하고 박혔다. '잘 해야한다. 완벽한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별로 아이디어가 없다.'하는 생각들이 나를 괴롭게 만들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냥 한다'라고 마음 먹었다. 마음이 한 결 가벼워지고, 집중이 가능해졌다. 그럼에도 순간순간 집중이 흩어지고, 괴로움이 올라올 때는 주문을 외우듯, 만트라를 외우듯 '그냥 한다'를 되뇌었다. 어차피 해야할 일을 가장 괴롭지 않게 하는 매우 탁월한 방법은 '그냥 하는 것'이다.
27-28
모든 행위는
타고난 본성적인 기우(구나)의 흐름에 의해 저절로 일어난다.
그러나 에고에 사로잡힌 사람은
'내가 행위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본성적인 기운과 그 기운의 흐름에 따라
행위가 일어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행위에 집착하거나 얽매이지 않는다.
그들은 세 가지 서로 다른 기운의 상호 작용에 의해
저절로 행위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기를 행위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29-30
모든 행위가 세 가지 기운의 상호 작용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행위의 결과에 집착한다.
깨달은 사람은
그런 무지한 사람을 혼란하게 만들면 안 된다.
그대는 참자아에 몰입하여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말고 행위하라.
모든 행위가 나에게 바치는 제물이라는 생각으로 행위하라.
자, 나가서 싸워라!
그대의 욕망을 버리고 싸워라.
27-30에서 언급하고 있는 세가지 구나(기운)은
1) 밝고 고유한 기운잇 삿트바 구나,
2) 격정적이고 활동적인 기운인 라자스 구나,
3) 어둡고 무거운 기운인 타마스 구나를 의미한다.
이 세 기운이 상호 결합과 작용에 의해 현상 세계가 나타난다. 영적 진화는 타마스에서 라자스로, 또 라자스에서 삿트바로 진행되며 마지막에는 이 세기운을 초월하여 자유의 경지에 도달한다(2000, 정창영, 시공사)
행위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그냥 한다'라고 하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되어진다'라는 마음 자세가 아닐까. 놓아버리고, 내려놓고, 내 맡김을 통해 저절로 일이 되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일을 '그냥 하는 것', 이것이 현존하는 방법이다.
40-41
이기적인 욕망은 감각 기관과 마음과 지성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
참다운 지혜를 덮어 어둡게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망상에 빠진다.
그러므로 아르주나여,
그대는 그대의 감각 기관을 제어함으로써,
지혜와 분별력을 어둡게 하여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게 방해하는
그대의 적을 쳐부수라.
우리의 오감이 우리의 머리 속에 입력되는 순간 우리는 '좋다, 싫다'하는 분별심이 올라온다. 그것이 '갖고 싶다. 해 보고 싶다. 피하고 싶다'와 같은 욕망을 만들어 낸다. 그 욕망은 집착이 되고, 참다운 지혜를 덮어 버린다. 우리의 복이자, 참자아로 머물게 하는데 방해물인 감각을 없앨 수 없다. 그렇다고 한다면 '좋다, 싫다'하는 그 판단 분별을 내려 놓아야 한다. 분별하는 그 순간, 분별임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분별하는 마음을 흘려보내고 '그냥 한다' 그것이 행위의 요가로 요약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어떻게 분별하는 마음을 내려 놓고, 그냥 할 수 있을까? 조금 더 쉽게 이해하고 자 한다면, 마이클 싱어의 <될일은 된다>, <상처받지 않는 영혼>을 읽어보아도 좋을 듯하다. 그 책을 통해 분별하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냥 하는 방법에 대한 큰 영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바가바드 기타 3장 카르마 요가 – 행위의 길 에 대한 간단한 감상평을 적어보았습니다.
4장 릴레이는 @posthuman 님 입니다 --> @peterchung님으로 변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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