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텀소설] 보고 있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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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통운 건물 앞 보도에 부산역 지하철 계단을 향해 나 있는 붉은 벽돌담이 있다. 벽돌담 속에는 움푹 패어 들어간 1평 남짓한 공간이 있는데 여기에 늙은 남자가 살고 있다.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작은 틈. 그곳은 그 남자의 집이다.

 대문도 창문도 없는 그 집 안을 나는 언제라도 들여다 볼 수 있다. 그 안에서 남자는 벽을 향해 돌아앉아 있다. 야윈 남자의 등은 틈의 크기와 비슷해서 등을 돌림으로써 완벽하게 세상을 차단해 내고 있다. 남자의 등은 말을 하고 있다.

'나에게 다가오지 마시오.'



 그 뉘앙스는 무덤덤하면서 적대적이다. 남자는 아마 화가 나 있는 지도 모른다. 난 그 남자가 두려우면서도 친근하다. 그것은 미쳐버렸다면 반드시 저렇게 될 나의 모습이 형상화된 그림같았기 때문이다.

 난 남자의 트렁크, 남자의 우산, 비가 올 때 살림살이를 덮어줄 남자의 더러운 비닐에 대해 알고 있다. 공교롭게도 남자의 우산은 무지개 색깔이다. 남자의 집 앞을 지나치는 몇 초 동안 내 시선은 남자의 등에 잠시 닿았다가 떨어진다.
 그 짧은 시간은 남자가 끼니를 때우는 시간이다. 난 빵이나 작은 컵라면 따위를 먹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을 본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은 남자의 집 앞을 떠나기 싫다. 남자가 무지개 우산을 켜고 뒤돌아 앉아 빵 부스러기를 먹는 아름다운 모습을 조용히 바라본다. 이 늙은 남자는 보통의 거지처럼 나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 나는 그가 구걸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남자는 약자를 자청하며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이 점이 마음에 든다.

 지난 주 토요일에 정신과 의사에게 그 노숙자로 변해버릴까봐 무섭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 남자의 존재는 내가 미치는 것을 지연시키고 있는 매개체일지도 모른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의사는 대답없이 내 말을 노트에 받아적고 있었다. 의사는 상담할 때마다 줄담배를 피웠다. 나는 매번 숨쉬기가 힘들었지만 꾹 참았다. 1시간 상담에 14만원이다. 카드도 안되고 현금으로 줘야한다. 내 상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의사에게 상담을 끝내겠다고 말을 하지 못해서 1년 내내 매주 토요일마다 네 살 이전에 엄마가 나에게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기억해내야 하거나 전날 꾸었던 꿈 이야기 따위나 해야하는 것이다. 매주 의사에게 줄 돈을 그 늙은 남자에게 주고 싶은 심정이다.

 오늘도 그 늙은 남자가 그 틈 안에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을 확인한 후 집에 돌아왔다. 난 남자를 구원하고 싶은 욕망에 치를 떤다. 돌아 앉은 남자의 존재가 거슬리거나 불편하거나 내 감정을 복잡하게 만들어서가 아니다. 나는 남자와의 동일시와 분리의 과정을 몇 차례 겪은 후, 남자를 간절하게 구원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천천히 바라본다. 난 지금 사랑에 빠진 것보다 더 격정적이다. 구원. 그것은 어떤 모습인가. 구체적으로 남자가 깨끗한 옷을 입고 가정을 이루거나 번듯한 회사에 출근하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난 돌아앉아 있는 남자의 등을 180도로 돌려놓고 '나는 당신이 날 볼 때까지 당신을 보고 있을 거예요.' 라는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다.

 난 남자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죽음에 대해서도. 남자와 나는 아직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열려 있는 끝. 나는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항상 보고 있다. 남자가 사라질 때까지. 남자가 없어진다면 무지개 우산을 하나를 구해서 그 틈속으로 기어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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