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탈곰파는 아직 아니야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초모의 오빠 싱게가 잔스카르 지인에게 확인해보니 길이 끊겼다고 한다. 도로를 복구하는데 하루 이상이 예상된다고 하여 대안을 찾아야 했다. 지난 유럽 수도원 여행에서 동행했던 @choonza team은 이미 나의 성향을 잘 알고 있었기에 곰파 투어의 성격을 들은 초모는 오히려 포카르 종(Phokar zong)에 가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흔하지 않은 라다크의 비는 나의 의도를 짓밟아 버렸다. 당근과 채찍으로써 레에 도착하도록 인도해 주신 라다크 타라 보살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해서 약간 원망스러웠지만 앞으로의 CHOONZA ROAD in LADAKH 일정을 고려하여 1박 2일의 여정으로 포카르 종에 다녀오기로 하였다. 그러나 타라 보살님의 은총은 푹탈 곰파 보다 값진 선물을 선사해 주셨다.

티베트 불교의 시작은 파드마삼바바(Padmasambhava), 그루 린포체로부터이다. 곰파 투어 전에 내가 정한 곰파 투어의 성격은 푹탈곰파를 포함하여 배낭영성에서 처럼 인물 중심이었다. 티베트 불교에서 가장 유명한 성취자 중에서 파드마 삼바바, 나로파, 마르파, 밀라레파 혹은 기타 수행자들과 관련된 곰파 중 동굴 수행처가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곳을 찾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초모가 대안으로 선택한 곳이 포카르 종이었다. 포카르(Phokar) 마을의 동굴(Jong)이라는 뜻인데 파드마삼바바가 불성취를 이룬 후 빛으로 변해서 날아다닌 동굴로 달라이 라마는 이곳이 자연이 선물해준 포탈라 궁전이라고 한다. 따라서 티베트의 포탈라 궁전을 가지 못하더라도 이 동굴로 순례 해도 마찬가지니 경치가 워낙 웅장하고 아름답고 신비스러우며 티베트 불교의 모든 것이 세세토록 잠자고 있던 순례자의 마음 속에 보존되어 있다가 동굴로의 여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포카르 마을에서 동굴로 찾아가는데 대략 2시간 정도 걸린다. 계곡을 걸으면서 올라가는 동안 마주치는 절벽에서 불교 전례 이미지가 순례자의 지성과 결합하여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불교 사상, 역사, 상징 등에 익숙하거나 영적인 눈을 가지고 있다면 바로 그의 눈앞에 하늘이 내려준 자연과의 인연으로 여러가지 불교적 이미지를 불러 일으키게 된다고 하는데 단순한 과장으로 여겼지만 왜 그렇게 말하는지 중간 중간 싱게의 설명으로 이해되었다.


마을에서 동굴로 찾아가는 길에서 계곡을 거쳐야한다. 이 길을 걸어 올라가는 동안 과거 아주 깊은 인상을 주었던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마지막 작품인 에탕 도네(Étant donnés)의 이미지가 갑자기 떠올랐다. 티베트 사자의 서에서 묘사되는 죽음과 탄생의 과정은 번뇌의 소멸을 완전히 성취하는 해탈, 이로부터 멀어져 업력의 영향에 따라 다시 몸을 받게 되는 과정 중 죽은 자에게서 드러나는 이미지가 순례자의 지성 혹은 영성과 인연을 이루어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드러나도록 조물주에 의해서 자연이 설계된 것이었다. 에탕 도네가 동굴 안에서 바라보는 얼굴 없는 여인의 나체와 손에 든 등불은 무엇을 의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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Étant donnés by Marcel Duchamp [교차영성] 물질과 정신의 복합체는 영원히 죽지않는다.

죽음의 과정에서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요소로 이루어진 육체가 사라지고 끊임 없는 소멸과 재생의 이미지를 경험하는 연속되는 의식이 무지(無知)에 의해서 서성거리다 어느 육신을 찾아 동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윤회의 상징으로, 한 손에 등불을 든 여성의 넓게 벌린 다리, 음부, 자궁을 바라보는 동굴(의식의 자궁) 속의 눈은 불생 불멸하는 연속된 의식의 업력(카르마)에 따른 한 생명의 재탄생(윤회)을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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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로 향해 가는 동안 마주치는 절벽에서 자연스럽게 조성된 무늬는 마치 흐릿하고 빛바랜, 그리고 지혜의 완성을 기다리는 심안(心眼)의 탱화처럼, 번뇌에 물들어 있는 중생 세계에서 번뇌를 완전히 극복한 성취자의 수행 과정 및 그 세계를 불교적 이미지로서 나타내어 주는 것이 아닐까?

티베트 사자의 서와 관련 있는 파드마 삼바바가 수행했던 이 동굴은 이후 1500년 동안 그리고 앞으로 계속해서 번뇌를 완전히 소멸하려는 수행자들의 순례지가 되어줄 것이다.

아마 푹탈곰파에 대한 아쉬움에 대하여 무의식의 업력이 나에게 이렇게 메시지를 던져준 것 같았다.

푹탈곰파는 아직 아니야. 우선 파드마삼바바와 관련된 수행처부터 찾아보그라.

지금까지 초모와 싱게가 이끌어 주었던 곰파(이구 카스팡, 헤미스, 딱똑, 물백)는 모두 파드마삼바바와 밀라레파와 관련된 곰파였다. 내일 @choonza 팀의 도움 없이 홀로 곱창과 틱세로 피터의 CHOONZA ROAD in LADAKH의 마지막 곰파 순례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새로 합류하는 별바라기(@bestella)와 함께 시작되는 CHOONZA ROAD in LADAKH가 펼쳐지니 라다크에서 마지막 한주가 몹시 기대되고 흥분된다.


라다크 여행 일지


쫄보의 지성 | 고산증 예습 | 고도의 향기(Scent of Altitude) | 별바라기 | 종자생현행(種子生現行) | 타라보살의 시험과 은총 | 룽타와 고도의 향기 콜라보레이션 | 라다크의 개그지들| 으르신 같은 영혼들 | 푹탈 곰파로 다가가는 길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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