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술] 27편_술과 시간, 정성에 대한 고찰

[오늘의 술] 27편_술과 시간, 정성에 대한 고찰


붙잡을 수 없는 시간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시간은 야속하게 흐르고 있다. 나는 시간을 붙잡고 싶어도 붙잡을 수 없다.

아이가 태어나고 걸음마를 하고, 사춘기가 오고, 성인이 되고... 이러한 연속적 시간의 흐름을 우리 부모님들은 지켜보고있다. 자신의 머리가 흰색으로 변하는 과정을 붙잡을 수 없고, 어린아이가 다 자라서 출가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결국 우리는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어서 과거를 회상할 때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서 그 때를 간직하곤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사진 등 기록물은 참 의미가 있다.

술이란 시간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우리가 마시는 술이 우리에게 오기까지의 과정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술도 사진과 같단 생각을 나는 간혹한다. 우리가 마시는 포도주만 생각해보자

포도나무에서 해충과 자연을 견디며 포도가 싱그럽게 열린다. 재배된 포도는 와이너리에서 손질 될 것이며, 동굴안에서 수년간 숙성이 될 것이다.

숙성이 얼마 안된 포도주는 시간을 오래 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일명 '빈티지'가 있는 술은 시간을 오래 담은 술이다. 예를 들어 2015년산 빈티지와인이라 하면, 2015년에 수확된 포도로 만들어진 와인을 의미한다. 즉 이 술이 나와 만나기가 까지는 3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이다. 그 3년의 시간을 붙잡은 채 내 입으로 들어오면 과거와 현재의 연결점에 드디어 접점이 생기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숙성이 오래된 위스키, 꼬냑이라면? 과거와 현재의 골이 깊지만 아무튼 술병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우리는 만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간혹가다 이런 생각을 한다.

조니워커 플래티넘(최소 숙성 18년산 위스키 원액을 블랜딩함)을 마시면서 나는 지금 한 잔으로 이 술 현재에 만나고 있는데, 아무튼 이 술은 2000년도에 누군가의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졌겠구나. 그 세월의 흔적을 이제서야 내가 만나는구나.

싱글몰트위스키 바이블이라는 책에서는 이런 내용이 있다. 몇 년산 위스키를 마실 때 그 술병에 적혀있는 년수만 따질게 아니라, 사실을 숙성시키기 위한 오크통과 그 오크통을 만들기 위해 나무가 자라난 세월까지 생각해야한다고 말이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면 별거 아닌거 같은 술 한잔에 아주 오래된 세월이 묻어있고, 술을 통해 애써 시간을 정지시켜 지금에와서 재생을 시키는 기분이 든다.

술과 정성

술과 시간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보면 '정성'이라는 키워드를 빼놓고 가기도 아쉽다. 술에는 시간도 담겨있지만 정성도 담겨있다. 물론 화학식으로 만들어지는 희석식 소주에 대해서는 정성이 많이 들어가있다고 평가하고 싶진 않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은 전통주나 증류주 등에 대해서는 술 한잔에 시간과 정성이 고스란히 녹여져 있다. 물론 그 정성이 어느정도인지는 이전에는 잘 몰랐으나, 싱글몰트 위스키 바이블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우리가 먹는 위스키의 원재료 보리의 당을 증가시키기 위해서 최초에 Molting이라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쉽게 단순화 하면 아래와 같다.

  • <물에 보리를 불리기>
  • <보리의 물을 빼고 바닥에 널기>
  • <바닥에 있는 보리를 뒤집기>
  • <석탄이나 이탄을 이용하여 건조하기>

이 때 보리를 뒤집는 과정이 여간 중노동이 아니라고 한다. 이 과정에 대해 일종의 분업화가 일어나서, 지금은 상업적으로 몰팅만 취급하는 기업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는 증류소가 존재하며, 이 증류소를 통해서 다양한 술이 나오고 있다.

전통적 방식으로 나오는 다양한 브랜드의 술이 있지만 딱 두 곳만 소개하겠다.

몽키숄더

몽키숄더.png
[출처 - 몽키숄더 공식 웹사이트 https://www.monkeyshoulder.com/]

수십시간동안 맥아를 뒤집는 과정에서 몰트맨들의 어깨가 굽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어깨가 굽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몰트맨들의 노고에 대해서 감사와 경의를 표하면서 출시된 술이 바로 몽키숄더(monkey shoulder) 위스키이다. 이 술은 블랜디드 스카치 위스키로 발베니, 글랜피딕, 키닌뷰 증류소의 위스키 원액을 블랜딩해서 탄생된 위스키이다. 참고로 발베니에서도 이러한 전통적 방식으로 만들어진 맥아가 10%라고 한다. 즉 나머지 90%의 맥아는 상업적 몰트 생산 기업으로부터 사오는 것이다. 그런데 증류소 생산 위스키에 들어가는 맥아의 100%를 모두 전통적 방식으로 하여 나오는 위스키가 있으니, 바로 스프링뱅크이다.

스프링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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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상수역 Listen바에서 스프링뱅크를 마시면서 밸런스가 잡힌 술이라고 소개한 적이 있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스프링뱅크가 어떤식으로 만들어진지 몰랐다. 그저 캠블턴지역의 술, 아주 밸런스 잡히고, 매니아층이 두터우며, 소량으로 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술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전통적 방식을 고수하여 생산된 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상업적 몰트가 아닌 자가 생산을 직접하기 때문에 생산되는 양도 당연히 소량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과거의 시간과 정성을 현재와 이어주는 술에 대해서 매력에 안빠질래야 안빠질 수가 없다.


다른 이야기

요즘 포스팅이 위스키에 집중되는 것 같다. 아마 포스팅의 50%이상이 위스키이고, 30%는 칵테일 10%는 리큐어쯤 되는 거 같다.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전통주에 대한 포스팅을 하면 참 좋을 거 같은데, 지식이 많이 없다. 그래서 이번 주 일요일부터 전통주를 시음하기로 했다. 매주 일요일마다 전통주를 시음하고, 정말 마음에 들었던 전통주 양조장도 찾아가볼까 한다. 위스키에 흠뻑 빠졌던 것처럼 전통주에도 흠뻑 빠지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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