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한 달, 스팀잇 일주일

인생의 낭비라는 SNS를 스스로 금기시하다, 직관의 빗장이 열리며 페북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오다가다 가끔 눈팅만 하던 페북은 버스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들을 수도 안 들을 수도 없는 전화통화 같았는데, 직접 포스팅을 올리고, 다른 이들의 글에 따봉도 누르고 하다 보니 신세계같이 느껴집니다. 누군가 나의 글에 댓글을 달아주고, 좋다고 따봉도 날려 주고, 퍼 날라주기도 하니 기분은 째집디다.

그러고 보니 글 쓰며 살아온 세월이 벌써 30년쯤 되는 듯합니다. 꼬맹이 학창시절부터 장래희망에 작가라고 써 왔지만, 정작 글 쓰는 일로 먹고살아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본업에 충실하면서도 글 쓰는 일은 멈추지 않았기에, 형식은 늘 편지이거나, 커뮤니티 포스팅이거나 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 읽어주는 대상이 구체적이지 않으면, 글을 잘 쓸 수도, 쓰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몇 번 그동안 써 온 글을 묶어 출판을 해 볼 기회가 있기는 했으나, 전업작가도 아닌데, 여러 가지를 타협해 가며 나의 자식들을 어정쩡하게 방출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덕택에 미발표 원고들(물론 이미 연결된 누군가와 어떤 커뮤니티에서 읽혀졌던)은 늘어가고, 이를 어쩔까하다, 개인 홈페이지 하나에 몽창 가져다 단단히 봉해버렸습니다. 뭘로 다 가요? 돈으로 다 가요. 연회비를 책정해 버리고, 가치를 지불하지 않으면 읽을 수 없다고 방을 붙여 버렸습니다. 이건 뭔 배짱이랍니까? 읽어주기만 해도 감지덕지해야 할 무명의 작가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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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 가치를 발생하게 됩니다. 물론 그 가치는 타자에 의해 평가됩니다. 하지만 그 가치의 가격은 주인장이 매기는 것입니다. 주인장 스스로가 가치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은 경제적 타협일 뿐입니다. 세상 누가 뭐래도 '내 결과물의 가치는 이거야.' 하고 선언하면 쫄쫄 굶을지언정, 어쨌든 그게 자신의 가치인 것입니다. 타인에게 가치 설정의 전권을 내맡긴 존재를 우리는 '노예'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가 '新 노예제'가 된 것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팔아넘긴 탓입니다. 우리가 모두 함께 저항했더라면, 아니 각자 각자의 자리에서 버텼더라면, 이 이상한 유통산업은 다 무너졌을 겁니다.

철수의 배추 한 포기를 내가 가진 금 10돈과 바꾸던 말든, 그건 내 맘이고 내가 매기는 가치일 뿐입니다. 그 가치의 수준을 세상 사람들과 동의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하다간 굶어 죽겠죠. 그러나 굶어 죽더라도, 자신의 가치를 어느 수준 이하로 떨어뜨리지 않는 자존심을 우리가 지켜 왔더라면, 세상이 이렇게 돈에 놀아나지는 않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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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에 뛰어든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잘 팔리지는 않더라도, 내 자식 태어났다고 세상에 알리기는 해야겠어서, 나름 접근성이 좋고 효과적이라는 페북에 내 자식의 동생들을 써내려 왔습니다. 따봉은 기분 좋고, 공유는 흐믓하지만, 그게 밥 한 끼랑 연결되지는 않더군요. 그래도 그렇게 꾸준히 하면, 언젠가 내 자식들이 밥 들고 돌아올 날이 있지 않을까 싶어, 농부의 마음으로 써 내려가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다 직관은 저를 또 하나의 장으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스팀잇 말이죠.

페북에서 저는 [최순실과 동업할 뻔했던 이야기]를 올리고 따봉 22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같은 글을 스팀잇에 올렸더니 보팅 42개를 받고 몇만 원의 수입을 얻게 되었습니다.

감개가 무량합니다. 자식들이 나가서 밥을 벌어왔습니다. 뭐 그전에도 몇 번 기고를 한 적도 있고 공저 비슷하게 참여한 적도 있지만, 본격적으로 내 자식들이 어떤 시스템 내에서 밥을 벌어 온 일은 이번이 거의 처음인 것 같습니다.

...
많은 창작자들이 골방에서, 카페 귀퉁이에서, 연습실 차가운 바닥 위에서.. 자신과의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대중에게 인정받지 못해 노력을, 결과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쳐도, 자신의 결과물의 가치를 도둑질 당하게 두어서는 안됩니다. 지금의 도둑질은 현란한 말장난으로 가득한 두툼한 계약서 속에, 뭐가 뭔지 모르겠는 복잡한 시스템 속에, 알면서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헐값에 넘길 수밖에 없는 조까튼 현실 속에서 낄낄대며 우리를 비웃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모두가 함께 합의한다면 고양이 목에 방울을 걸 수가 있습니다. 수만 마리가 떼거지로 덤비면 고양이인들 어쩔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뒤에서 현실만 탓합니다. 그 현실 함 바꿔 보자고, 이리 뛰고 저리 뛰다 나동그라져 하늘만 원망하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하늘은 이 새로운 생태계를 잉태 하고 있었습니다.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천사장이 나타나 계시를 주고, 처녀 엔지니어들이 기존 자본의 이식 없이 동정 생태계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별을 쫓아온 동방박사의 일원으로, 저는 이 생태계에 유향과 황금과 몰약으로 숙성된 저의 자식들을 바칠 생각입니다.

저는 스팀잇이든, 앞으로 나오게 될 무엇이든, 꼭 이 생태계가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혁명이든, 도박이든, 골방에서 라면 먹던 창작자들이 따뜻한 가정식 백반 한 끼를 받아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배고픔을 해결한 그들 중에, 세상과 맞짱 뜨는 창작자들이 쏟아져 나와, 잠들어 있던 젊은 영혼들을 깨워내 주기를 바랍니다. 왕서방의 품을 벗어나와, 재주를 부리던, 쇼를 하던, 자신의 수고의 댓가가 자신의 호주머니에 바로 꽂힐 수 있는 세상에서, 난장을 벌여 주기를 바랍니다.

일주일 동안 보팅으로 밥한끼 보태주신 스티미언 여러분들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깜깜한 어둔 밤을 함께 버텨내준 나의 자식들에게도 '고생했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이제 곧 너희들의 세상이 온단다.' 기쁜 소식을 전해주렵니다.

꾸벅 ( _ _ )

휘리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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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erlin's post


[멀린's 100]
1. 1987 나는 남영동에 있었다
2. 최순실과 동업할 뻔했던 이야기
3. 자본의 종말에 대처하는 인간의 자세
4. 전대협과 붉은악마
5. 폭주족 그녀와 다시 조우하다
6. 북유럽은 개뿔
7. 너희를 위해 나를 희생시키면

[그림 없는 그림책]
1. 마더 Mother
2. 끝이 온다

[ETC]
1. [가입인사]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쓰는 것에 대하여
2. 가상화폐와 암호화폐
3. 뉴비의 Bandwidth 체험기
4. 뉴비의 보팅에 관한 짧은 생각 및 질문
5. 페이스북 한 달, 스팀잇 일주일
6. 우리는 어쩌면 잠실 뽕밭에 씨를 뿌리고 있는지 모른다
7. 존버의 법칙(존버의 과학적 증명)
8. [선언] 저는 고래가 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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