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사람이 살지 않으면 금세 허물어져 간다. 그런 측면에서 물질에 생기를 불러 일으켜 주는 것이 사람의 온기일지도 모른다. 물활론(animism)은 모든 사물에 영혼이 있으며 그 영혼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먼지가 쌓이고 아무도 찾지 않는 폐허가 된 건축물에 들어가 보면 생기라곤 찾아 볼 수 없으니 물활론의 의미를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영혼이든 정신이든 생기이든 물질에 그것이 깃들어야 상호 의존 관계 속에서 물질에 생명력이 부여되고 지속되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문화적 관점에서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폐허가 든 집에서도 잘 살고 있는 조그만 동물과 식물을 적용한다면 생기가 없는 것이 아닐테니까,
이곳 라다크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폐허가 된 건축물이 많다. 그런데 그곳을 버리고 떠나는 게 아니라 그대로 둔 채 바로 옆에 새로 집을 지어 사람이 살고 있다. 그러나 흉물스럽기 보다 오히려 자연스럽고 멋스럽다. 유럽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건축물을 훼손하지 않고 보수 유지하면서 그들의 전통을 아름답게 이어가고 있는 것과 달리 라다크는 어디서든 과거 흔적을 그대로 둔 채 옆에 새로운 둥지를 틀고 세월과 함께 낡아가고 있다. 이 집도 오래되면 그대로 버려지고 다시 옆에 새로운 집이 들어설 것 같은 데 전혀 추하게 보이지 않고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변화는 과거를 완전히 단절 시키고 그 위에 전혀 새로운 것을 구축하는 것, 즉 과거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늙어가는 것도 갑작스럽게 변화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10년 전, 20년 전, 30년 전의 나의 모습은 분명하게 다르지만 어느 한 시점을 기준으로 앞뒤 가까운 시간 간격에서 내 모습은 별로 구별되지 않는다. 이것이 유럽 건축물의 모습이랄까?
얼굴에 검버섯이 피고 주름이 생겨도 아름답게 보이는 사람이 있다. 보톡스 맞고 탱탱한 피부를 유지하여 젊은 시절의 외모를 억지로 유지하는 것보다 세월의 흐름을 타면서 그 시절다움으로 아름답게 보이는 사람처럼 그러한 멋이 라다크 건축의 풍미이다.
전통이 아름다운 것은 전통에서 물환론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박제된 문화가 전통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라도 과거의 흐름과 함께 숨 쉬며 공존하는 것이 전통의 전통다움이다.
폐허 아닌 폐허 같은,
라다크 여행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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