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에 계실 미제스 선생님, 안녕하신지요. 저는 이곳 대한민국에서 작은 학교를 열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헤르메스 섹스투스 베네딕트라는 마법사입니다. 새 학기가 되어 학교는 오랜만에 맛보는 봄날의 기운 만큼이나 활기에 차 있습니다. 저는 머글 출신 마법사로, 아이들에게 영어와 정치학, 사회학, 법학을 포함한 머글 연구Muggle Studies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데요. 지난 주 영어 교양 과목인 <영미문학 읽기> 첫 수업을 진행하다가 문득, 미제스 선생님이 생각나더군요.
영미문학과 경제학이 무슨 상관이 있기에 생각났냐구요? 이번 학기에 다루기로 한 작품 에드거 앨런 포의 <도둑맞은 편지>이기 때문이랍니다. 네, 그렇습니다. 근대 추리소설의 효시라 불리는 바로 그 작품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작품을 읽어보셨는지요? 혹여 읽지 못하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실례를 무릅쓰고 줄거리를 옮겨봅니다.
사립탐정 뒤팽에게 경찰국장 G가 찾아옵니다. 왕비께서 ‘도둑맞은 편지’를 찾고 있는데 도움을 달라는 것이죠.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왕비가 내실에서 S공작이 보낸 극히 사적인 내용의 담긴 편지를 읽고 있을 때 왕과 장관 D가 들어옵니다. 당황한 왕비의 표정을 보고 편지의 내용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D는 마침 자신이 가지고 있던 다른 편지와 왕비의 편지를 바꿔치기합니다. 왕비는 모습을 빤히 보면서도 왕이 편지의 내용에 대해 의심할까 두려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편지를 손에 넣은 장관은 이를 이용해 맘껏 권력을 휘두르게 되지요.
편지를 찾아달라는 요청을 받은 경찰국장 G는 여섯 달 동안 D의 저택를 비롯한 모든 장소를 샅샅이 뒤지지만 편지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G의 부탁을 받은 지 한 달 만에 뒤팽은 편지를 찾아 넘겨줍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요? 결과부터 미리 말씀드리면 그 편지는 장관 D의 거실 벽난로 옆에 놓여 있던 편지꽂이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답니다.
길지 않은 분량에 이렇듯 단순하기 짝이 없는 플롯을 가진 <도둑맞은 편지>에 저를 비롯한 많은 마법사들과 철학자들이 열광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리고 경제학자이자 정치철학자인 미제스 선생님이 생각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것은 ‘욕망’이라는 키워드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욕망’이란 ‘want’, 즉 무언가를 '원하는 것'이죠.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중요시해야 할 것은 행동의 결과가 아닌 행동 자체라면서 <인간의 모든 행동에는 목적이 있다>라는 공리를 제시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행동학praxeology이라는 야심찬 기획을 제시하시면서 ‘연역’을 그 방법론으로 취하셨기 때문에 당연한 수순입니다. 이는 인간의 이성에 대한 선생님의 믿음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고, 철학사적으로는 칸트의 인식론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듯한데요. 이 부분 즉 '수학적 공리/선험적 종합판단’을 진리의 기초로 삼는다는 점과 관련해서는 따로 다룰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선생님이 제시하신 공리를 쉽게 풀면, ‘모든 인간은 각자가 원하는 대로 행동한다’라고 바꾸어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인간’이란 마르크스가 말한 ‘유(類)적인 존재로서의 인간’, ‘인류’, ‘호모사피엔스’ 따위가 아니라, 피와 살이 있는 사람, 즉 ‘개인’을 말합니다. 1인칭으로는 ‘나’, '자신', ‘자아’라 불리는 바로 그것이죠.
그렇습니다. 행동하는 것은 개인이지 집단이 아닙니다. 인간은 ‘개미떼’나 ‘쥐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설령 ‘집단 행동’이 있더라도 그것은 개개인이 각자의 목적에 따라 거기에 참여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니, 행동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개인이며, 행동의 동기인 ‘목적’, ‘가치’, ‘욕망’ 또한 주관적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또, 인간은 자신의 행위(원인)에 따르는 결과, 즉 인과관계를 추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칸트에 따르면 모든 인간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능력, 본유형식이죠. 선생님께서 명저 <인간행동>에서 ‘목적’과 ‘인과관계’를 두 가지 키워드로 제시한 것은 논리적으로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모든 행위는 자유의지 혹은 욕망에 따르는 목적, 그리고 목적과 수단의 인과관계에 대한 인식(합목적성)에 의거하여 이루어지므로 사람마다 나름대로 합리성을 가지지만, 행위자 이외에는 그 합리성 여부를 판단할 수 없고, 예측 또한 할 수 없기에 '개인의 행위에 대한 (국가를 포함한) 그 어떤 제3자의 개입도 객관적으로 성공할 수 없고 도덕적으로 허용되어서도 안된다'는 주장에는 그 어떤 논리적 모순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생각이 여기까지 미칠 즈음, 마법사 헤르메스의 장난기가 슬며시 고개를 든 것도 사실입니다. 얼마 전 영문법을 설명하다가 뜬금없이 데카르트를 ‘디스’했던 그 기질, 사람들이 질문하지 않는 것에 대해 질문하고, 당연한 것을 당연한 채로 두지 않는 짓궂은 장난기가...
그런 저런 생각에 빠져 있던 가운데 <영미문학> 첫 수업은 진행되었고 <도둑맞은 편지>에 대해 아이들에게 소개하던 저의 머릿속에 갑자기 또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기 시작했죠. 편지, 화폐, 욕망, 경제, 경찰국장, 미제스... 그리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저처럼 장난스럽고 호기심 많고 당연한 걸 당연한 채로 두지 않는 짓궂은 천성의 인물, 오귀스트 뒤팽!
선생님, 오늘 이야기는 죄송하지만 여기까지 마무리해야겠습니다. 벌써 시간이 새벽 4시를 지나는군요. 내일은 토요일이지만 저희 학교 아이들 입학식이 있는 날이라 아침 행사에 지장이 없으려면 이만 잠자리에 들어야할 것 같습니다. 내일은 <도둑맞은 편지>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게 될 텐데요. 어쩌면 선생님께서 <인간행동>에서 말씀하신 공리에 대해 제가 감히 딴지를 걸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은 그러는 저에게 화를 내실까요, 아니면 저를 귀여워(?) 해 주실까요? 이곳 스팀잇의 창설자인 댄을 비롯하여 선생님의 이론을 따르려는 사람들은 또 제 글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이제 제 글을 읽는 선생님을 상상하며 잠자리에 들 텐데... 글쎄요, 악몽을 꾸게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재화의 가치를 재화 자체에서 찾던 당대의 지배적 관점에 과감히 의문을 제기하셨던 미제스 선생님이라면, 저의 이러한 천성과 장난기를 칭찬해 주실 게 분명하니까요. 미제스 선생님, 안녕히 주무십시오. 내일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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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혜를 나르는 작은 날개, 헤르메스입니다 가입글 2018.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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