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favorites] 타악기의 추억2/ Led Zeppelin의 존보넴에서 영남농악 그리고 수피댄스/ 짝퉁불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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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고등학교 축제의 오북놀이 공연, 이속에 내가 있다]

타악기의 추억1을 쓰고 벌써 6개월이 흘렀다. 두번 째 글맺음을 금세 하려다가 벌써 지나가버렸다. 하루하루의 시간흐름은 더디지만 중장기 시간의 횡보는 엄청 빠르다.

올해 들어 자산시장이 크게 위축되면서 삶에 필수 불가결한 예비 자산들이 크게 쪼그라들었다. 투자가 되었든 투기가 되었든 욕심이라는 것은 한계가 없기 때문에 항상 자신의 기대치가 이성적인지? 아니면 순간적인 감성에 동요되어 이성적인 판단을 덮어버린 것인지? 자알~ 살필 필요가 있다지만 말이 쉽지 어려운 문제이다. 돈과 이성을 같은 속성의 대상이라고 표현하지 않는가?

집착에 빠져버리면 감정의 노예가 되어 객관적 눈으로 살피는 이성이 마비되어버린다. 된통 아픈 시련을 겪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다. 그렇지만 우리는 망각하는 동물인지라 비슷한 상황은 또다시 반복된다. 대개 큰 화(禍)는 과도한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이 만고의 진리일 것이다. 앙드레 꼬스탈리니의 돈을 대하는 지혜의 명언,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

그러나 세상일이라는 게 꼭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처리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에 합당한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요행이 있을 수 있고 똥 밟듯이 재수가 옴붙은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재미있는 것이다. 물론 당사자들의 속은 쓰리고 힘들지만,

어차피 빈털털이로 왔다가 빈털털이로 가는 세상,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할까? 대범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삶에 법칙과 예외가 있다는 사실은 통계학에서 자주 인용되는 평균과 오차의 적용됨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래서 현대 물리학에서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이야기하지 않는가?

양자역학에서는 우리가 딱딱하게 생각하는 실체로 만질 수 있는 물질이 궁극적으로 분석하고 실험적으로 검증해보면 입자와 파동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입자는 실체(고정화)이고 파동은 확률(가능성)이다.

요지는 그 입자라는 것이 우리가 경험하는 순간, 딱딱한 실체로서 접촉할 수 있는 입자라고 생각하는 나(주관)와 그 입자라는 대상(객관)이 상대하여 만들어낸 눈속임이라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파동의 입자가 나에게 입자인척 사기치는 것이라고 한다.

입자도 나에게 사기치는 세상이다. 나는 결과적으로 똥멍청이인 것이다. 허허! 고고참~!

세상은 결정되지 않은 확률의 세계일뿐이다. 세상만사는 개연성의 파동이라고 한다. 개연성의 파동이라는 것은 결국 마음의 문제이다.

가상화폐 시장이 현재 1/10로 쪼그라들었지만 불과 1년전까지만 해도 수 100% 이상 팽창되기도 하였다. 난리들이었다. 이렇게 극적으로 상황이 바뀔 수 있는 것인가?

그러나 그러한 시장을 형성한 물질적 인간 군상들은 그대로 있다. 수요와 공급을 만드는 사람들의 심리가 롤러코스터를 탈뿐이다. 가상화폐 시장이라는 것이 신뢰에 기반하여 건립된 세상하긴 신뢰가 아닌 세상살이는 없다. 신뢰가 없으면 세상자체가 성립되지 않으니까...이고 신뢰라는 것이 결국 마음이 만든 허상일 뿐이다. 허상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허상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항상 변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신뢰는 언제든지 그 신뢰를 만들어가는 물질 인간들에 의해서 다시 재확립 되어질 수 있다.

당장의 삶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삶이란 것이 생각에 의해서 건립되고 다시 새로워지니 생각을 좌지우지하는 물질적 에너지 변화에 민감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러나 당장에 먹고 자고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면 돈과 연결된 생각을 잠시 쉬는 것이 나을 것이다.

1분, 1시간, 하루, 일주일, 한 달, 6개월, 1년, 괴롭고 힘들다고 느끼는 그 시간의 속도감은?

역시 생각일 뿐이다. 그때 그 시간은 짜증나게 멈춰선 것 같다. 자기마음가 만들어놓은 세상에서 자기가 마음을 그렇게 쓰고 괴로워하는 것이다. 그저 빨리 지나갔으면 하고 바란다. 힘들 때는 1년 후의 지금 상황이 어떨까?

빨리 지나가서 지금 이 시간을 회상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어쨌든 지나간 과거일 뿐이니까 죽이 되던 밥이 되던 결정된 상황은 되돌릴 수 없어 체념 혹은 안도하기 때문일 것이다. 바뀌어 질 사실이 아니니까,

기대심 때문에 마음에 힘이 들어간다. 그리고 스스로 지쳐서 힘들어한다.

다만 아무 것도 바라거나 찾지 않으면, 번뇌는 저절로 없어지리라 (但無一切希求 煩惱自然消落) -대승찬


고등학교 1학년 지리 시간이었을 것이다. 4교시였는데 점심시간 이전이었다. 수업 종이 끝남과 동시에 친구에게 “사물놀이 배우자!”라고 말을 했다. 교무실로 가려는 지리 선생님이 그 소리를 듣더니 다짜고짜, “너 밥 먹고 교무실로 와!”라고 하셨다. 나는 혼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좀 이상하긴 했다. 내가 수업을 방해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큰 소리를 낸 것도 아니었다. 수업 끝나고 친구에게 말한 것일 뿐이었다. 지리 선생님은 대학을 졸업하고 중학교에서 교사생활을 2년 정도 하시다가 그해 처음으로 고등학교에 오신 젊은 선생님이었다. 교무실에 찾아가보니, “사물놀이 배우려면 나한테 배워라!”

이렇게 해서 우리학교에서 사물놀이 특활반이 생겼다. 남녀공학이었는데 이전까지는 학교 축제때의 끝마침은 디스코 타임으로 마무리되었는데 이후로 전통이 바뀌었다. 우리 특활반의 사물놀이 피날래가 전통이 되었다. 물론 거의 30년이 다 되어가니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때거지 군중을 동조화로 흥기시키는데 타악기만큼 효율적인 것이 없다. 왜 그럴까? 아마도 타악기의 소리는 허공 속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비어있음의 멋스러움(美)이자 맛스러움(味)이다. 악기들은 모두 비어있다. 그래서 악기가 내어주는 연주가 천상의 소리가 될 수 있는 것인가? 뭐든지 채워지면 소통이 불가하다.

마음이 가난하면 행복합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입니다. -예수

당시에 나는 LedZeppelin의 Bonzo’s Montreux의 다이나믹하고 정신 못 차리게 만드는 마초적 드럼 비트에 매료되어 있었다. 타악기의 추억1

코만도의 아놀드, 람보의 실베스타 근육질의 남성미가 고딩인 나에게는 로망이었다. 꿈속에서 내 몸이 근육질로 변태되어 악당들과 싸우는 상상의 꿈도 즐겨꾸곤 하였다. 그래서 그당시 헬스클럽에서 갑빠와 왕자 복근 만들려고 무쟈게 애를 썼다. 물론 결과는 언제나...

스피디하고 기교있는 일렉트릭 기타사운드도 매력적이지만 타악기 드럼의 사정없는 두들김 사운드는 내게 있어서 멋있는 남성의 아이콘이었다. 특히 존보냄의 콧수염과 신나는 드럼 패대기는 상상하는 것 자체로도 개멋있뜸이었다. 제정신이 아닌 가운데 규칙적인 리듬감이 기분을 언제나 업-시킨다. 그리고 나는 존보냄으로 빙의되어 드럼채를 붙잡고 허공에서 똑같이 졸라 두들겨대곤 한다.

LedZeppelin의 애청곡은 너무나 많지만 'Fool in the rain'을 참 좋아했다. 그런데 타악기의 추억을 쓸 소재를 찾다가 우연히 존보냄의 비공식 드럼 sampling을 유튜브에서 발견하였다. 그래서 원곡과 함께 여기에 덧붙였다. 특히 이 노래의 드럼 version은 존보냄의 냉소적인 외침으로 시작된다.

Fucking out!
18~!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씹~ 할~!

시작부터 개멋있다. 그리고 3분 정도 지나서 존보냄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관심있으시면 주의하여 들어보시길, (으아! 볼륨을 만땅꾸로 키워야 제맛이다)


Led Zeppelin's John Bonham Drum Out Takes - Fool in the Rain



Led Zeppelin - Fool In The Rain - Dark Remaster

무슨 바람인지 모르겠으나 그당시 우연히 들었던 영남농악의 사운드가 심하게 각인되어 사물놀이를 꼭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고딩인 내가 드럼을 배우기에는 물질적 공간적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고 사물놀이의 경우는 가성비가 효율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싼 맛에 수컷 마초 감성을 대리만족 시키기에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인연이 그렇게 열렸다. 우주는 때로 알아서 경험하게 해준다. 죽자고 매달려서 안되는 것은 안되기도 하지만 그냥 될때는 저절로 운명처럼 인연이 다가오기도 한다.


영남농악

하늘 보고 별을 따고 땅을 보고 농사짓고, 올해도 대풍이요 내년에도 풍년일세. 달아 달아 밝은 달아 대낮같이 밝은 달아, 어둠속에 불빛이 우리네를 밝혀주네.

영남농악의 매력은 잔잔하게 흘러가다가 템포가 점점 빨라지면서 절정의 상태에서 그냥 툭하고 끝나버린다. 그리고 여운을 남긴다. 함께 동조되었던 참여자들의 환희를 여운의 공간속에 강제로 던져버린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좀더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었으나 그당시 풍물패는 100% 운동권이라서 그냥 포기했다. 나는 원래 반골기질이 있지만 정치적인 색깔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냥 아웃사이더이다. 투덜이 스머프라고 생각하면 된다.

특히 ‘In the name of Justice’라는 명목으로 타인을 선동적으로 단죄하려는 수컷 호전적 객기들은 내가 보기에는 미성숙적인 행태 같아서 싫어했다. 그들에게는 상호존중의 삶이 없는 것도 같고 ‘나 아니면 안 돼!’라는 잠재적인 자만심이 숨어있는 것 같아서 싫었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나는 “옳다! 그르다!”라는 단정적인 분위기에 알레르기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적폐청산’이란 소리를 들으면 다소 거북스럽다. 다른 사람을 단죄하여 쓸어버리겠다는 오만감보다는 차라리 자비심을 품은 정의감에 친화적이다. 여기에는 폭력이 전제되지 않는다.

수컷 여럿이서 두드리는 설장구는 현장에서 보면 아주 멋있다. 17분이상이다. 지루하면 패스~


삼도설장구 강민석 김덕수 이광수 최종실 1987

60년대 말부터 Psychedelic 장르가 유행하여 몽환적인 분위기 즉, 뽕 없이 뽕 맞은 느낌을 제대로 연출하는 음악들이 대세였다. 이러한 음악적 흐름은 아마도 히피문화와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러한 느낌이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타악기의 매력은 비어있음이다. 비어있으니 막대기의 힘있는 두드림과 동시에 탱탱한 가죽으로 둘러쌓인 공간이 만들어내는 소리의 진동이 넓게 울려 퍼진다. 공간이 비워지면 비워질수록 빈 공간으로 채워진 가죽덩어리는 가벼워지고 그것의 울림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리고 그 울림이 만들어내는 공명은 함께하는 가죽 주머니 인간들에게도 전달될 것이다. 그래서 인간 가죽대기가 공명으로 가득 채워지면 자신도 모르게 어깨 춤을 들썩거리게 된다. 뽕없는 뽕이 되어버린다. 다시 말하면 타악기의 비트와 자연스럽게 동조화가 되는 것이다. 무당이 신들린 것처럼 모두가 춤을 추게 된다. 그래서 신과의 체험으로 타악기가 이용되는가 보다.

신(神)은 일정한 방소가 없습니다. 그리고 변화라는 것은 실체(entity)가 없습니다. 神无方而易无體 -주역(周易)

신들림이란 것은 다른 게 아니다. 막혀있지 않은 것이다. 막혀있지 않다는 것은 채워져 있지 않은 것이고 채워져 있지 않다는 것은 비어있다는 것이다. 비어있다는 것은 가벼워지는 것이다. 가볍기 때문에 덩실덩실 춤을 출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꾸 채워 넣으려고 하기 때문에 신과 멀어지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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