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아코 여행기] 동굴수행이 갖는 의미(명상주제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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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토가 수행하던 신성한 동굴(Sacro Speco)

예전 포스팅에서 나의 유럽 여행이 동굴을 찾아 떠나온 여행이었음을 판테온 신전을 통해서 직감했다고 하였다. 처음 여행을 계획하게 된 원인이 이냐시오 성인이었고 그가 수행했던 만레사 동굴에 강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여기는 꼭 가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이냐시오뿐만 아니고 동서양의 수행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명상 터전으로 동굴을 택했다. 이번에 방문했던 수비아코의 이 수도원도 5세기에 베네딕토 성인이 2평 남짓한 동굴에서 수행을 시작하였고 계속 진화되어 지금은 절벽 위에 멋있는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수도원의 별칭이 ‘신성한 동굴Sacro Speco’이다. 베네딕토 성인은 서양 수도원의 체계를 확립시킨 ‘아버지’로 통한다. 그가 집필한 ‘수도 규칙’은 1,500년이 넘어서도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어찌보면 이 동굴이 체계화된 가톨릭 서양 수도원의 요람일 수도 있겠다.


배낭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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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아코(베네딕토 성인의 신성한 동굴)과 관련된 글 중 일부를 남겨둡니다.


동굴에 관한 잡설과 베네딕토의 영성에 관하여


동굴이 왜 수행자들의 공부방이 되는가? 자발적 고립은 양날의 칼
베네딕토 영성을 찾아서
위대한 영혼의 물화(物化)와 수행에 관한 잡설
판테온 신전과 빛이 가는 길, 로마의 해시계
수비아코 성베네딕토 수도원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복도에서 전체를 조망하여 담으려 하였다. 그러나 전체를 담기에는 사진 찍는 역량이 부족하다. 그보다 이 위대한 진행형(-ING) 영적 유산을 담을 나의 그릇이 모자라다.

수도원 입구 초입 광장에 서있는 나무가 궁금했다. 수령이 꽤 오래된 것 같은데 홀로 서있는 올리브 나무이다. 언제부터 이 자리에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수도원이 변해가는 모습과 여기에 찾아오는 순례자들을 묵묵하게 바라보았을 것이다. 어떤 올리브 나무는 2,000년 이상을 살고 있고 아직도 열매를 맺고 있다고 한다. 이 나무에게서 삶의 지혜를 제시해주는 연륜있는 수도자의 모습이 보인다. 이 수도원도 1,500년동안 영적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셈이다. 베네딕토가 이 동굴에서 수행을 시작하였고 그로부터 수도원의 체계가 잡혀졌기 때문이다.


독일 뤼데샤임 Niederwald의 마법사 동굴을 걷다가 천장에 내머리가 긁혔다. 너무 어두워서 방향감각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차분하게 걸으면 될 것을 두리번 거리다가 그만 까칠한 벽에 머리가 스쳐 아팠다. 조금 걸어가면 빛의 엄청난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 천장의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동굴 속의 조그만 방을 환하게 비쳐준다. 처음에는 조명인줄 알았다. 60m로 설계된 동굴이라고 한다. 동굴 입구는 버섯형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아이들이 좋아서 계속 들락날락한다. 18세기 여행자가 무성한 숲속에서 우연히 발견하였다고 한다. 60m의 꼬불 꼬불한 동굴을 가다가 마법사의 시신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빛은 지혜 혹은 통찰을 상징한다. 캄캄할수록 통찰력은 예리해진다고 할까? 그전에 나는 허둥댔다. 대부분은 어둠을 즐기지 못한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빛에 대한 그리움은 더 강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면의 빛도?



그러나 고립된다는 것은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 번뇌를 다스리기 위해 고립을 택했어도 번뇌가 더욱 치성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의식에 잠재된 그것들이 완전히 녹여지기 위해서는 충분한 내적인 조건이 마련되어져야 한다. 그것들이 완전히 소멸될때까지 무의식의 번뇌 씨앗들이 여름 장마의 잡초처럼 계속 움터 나오기 때문이다. 이것들을 모두 토해내야 비로소 내면의 빛이 깨끗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애써 고립을 택하는 것이 오히려 엄청난 정신적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타자와의 관계를 끊는 만큼 거기에 내재하는 번뇌도 끊어야 하는데 그것이 그렇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오욕의 번뇌를 끊으려다 오히려 번뇌의 불을 활활활,


육체와 정신은 따로 놀지만 따로 또 같기도 하다.

Out of Sight, Out of Mind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언어의 속성은 어쩔 수 없이 한쪽을 택할 뿐이다. ‘피터’라는 ‘나’를 언어 하나로 모두 담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언어는 다만 그 많은 속성 중 하나를 끄집어낼 뿐이다. 그래서 언어의 특성 중 하나를 ‘분리’라고 표현한다. 선불교의 한 스승은 ‘말’을 한순간 제자의 혀를 잘라버리겠다고 과격한 협박을 가하지 않았던가?

고립을 택한다고 하여도 그것은 진정한 고립이 되지 못한다. 그 행위와 이름이 ‘고립’일 뿐이다. 따라서, 속담을 반대로 해석해도 뜻이 통한다.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이 더 애달프게 될 수 있다. 번뇌의 종자들이 발아하여 다 사그라들 때야 비로소 그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를 청정한 상태라고 표현하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누르면 누를수록 그것들은 계속 튀어나온다. 마음은 몸과 무관하게 보이지 않는 무의식의 잠재된 바다의 물만큼 아니 더 무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다만 시간이 아주 아주 많이 걸린다. 그렇더라도 다시 몸이 가까워지면 마음이 다시 일어난다. 무의식의 번뇌 종자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것은 계속 일어나게 되어있다.



베네딕토 성인의 수행이 깊어질 때 마귀가 사모했던 여인의 나체로 변화하여 유혹했다. 그는 옷을 벗어 던지고 뛰쳐나가 이곳 장미밭에 몸을 뒹굴어 정욕을 가라앉혔다고 한다. 마귀는 무의식의 반영이다. 동굴 속의 고립상태에서 수행이 깊어지면 환상을 체험할 수 있는데 이러한 환상에 의식이 따라가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두컴컴한 동굴속에서 발생하는 빛 에너지는 인식의 강도가 높다. 얼마나 실재적으로 생생했을까? 나라면 어떨까?

아마도,

고맙지 뭐

그래서 성인과 나는 차이가 있다.

왜 하필이면 장미밭이었을까? 장미의 유혹이란 말이 있다. 빨간 장미는 고혹미蠱惑美: 예를 들어 성적인 매력이 집착과 탐닉을 유도하여 벌레가 파 먹어들어가듯 심신을 혼미하게 함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베네딕토의 이야기는 그 환영이 의미하는 것과 원초적 정욕을 넘어서는 과정이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알려주었던 것인가? 달지만 영혼의 피폐를 불러오는 성적 탐닉의 결과, 가시 돋은 매혹적인 빨간 장미


Rose with Lips Picture


Nipple Breast Rose

빨간 장미의 아름다움 혹은 섹스를 낮추어 보려는 것이 아니다. 성적 이미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모습에 가려져 있는 본질을 제대로 못보곤 한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하지 못한다. 탐착에 가려져 타자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자신마저 망쳐버리고 마는 아귀가 되어가는 모습을 경계하는 것이다.





수비아코 마을의 계곡물의 유속이 빠르고 맑다. 당일 로마 날씨가 너무 더웠다. 물소리가 마음을 깨끗하고 시원하게 적셔주어 번뇌의 열을 식혀주는 느낌이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베네딕토 성인이 이곳의 동굴에서 수행했던 것인가?




동굴까지 가려면 대략 1시간은 올라가야 한다. 내가 수비아코에 도착한 날이 토요일이었다. 마을에 장터가 열렸다. 장터를 구경하면서 천천히 걸어가는데 이곳에서 며칠 묵고 싶어졌다. 경치가 너무나 아름다워 당일치기로 여기 오게 된 것이 후회스러웠다.

수도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조그만 경당을 발견했다. 베네딕토 성인이 아닌 다른 후배 수도자가 머물러 수행했을 것이다.


수도원 내부 벽화에 대한 단상




다른 수도원들처럼 조그만 동굴 터전을 중심으로 내부가 확장되고 개조되면서 내부 전체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13세기 이후의 작품들인데 잦은 전쟁과 지진 등의 재난에도 불구하고 잘 보존되었다. 동굴의 구조를 크게 훼손하지 않으며 천장, 벽면 등에 그려진 그림들이 조명과 함께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왜 벽화를 그렸을까? 벽화의 내용은 예수의 일대기, 베네딕토 성인의 생애 등 그리스도교와 관련된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티베트의 탱화, 이집트의 벽화들도 마찬가지이다. 종교들의 심상을 벽의 표면에 구현한 이유가 무엇일까?


청정도론에서 정리한 40가지 명상주제

상좌 불교의 수행 논서인 ‘청정도론’에 명상주제로 40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명상주제에 따른 몰입의 정도(선정의 단계)를 구조화하여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사마타(止) 수행이란 생각을 한 곳에 집중하는 것인데 번뇌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의식을 거기에 메어 두는 것이다. 특정한 명상 주제(기도문, 호흡, 물건, 성인의 찬탄 등)를 정하여 잡생각(번뇌)이 일어날 때마다 그 생각을 되돌려 명상주제에 계속 몰입하는 방법이다. 아마도 벽화는 예술적인 측면도 있었겠지만 수행자들에게 명상 재료의 기능적인 역할도 하였을 것이다.

12세기 베네딕토 추종자인 독일의 힐데가르트 수녀를 기념하는 수도원도 성당 내부를 이렇게 꾸몄다. 19세기 말에 생긴 Beuronese Art라고 한다. 신성 전례 예술로 재현된 것이다. 이곳 수녀님들은 매일 때가 되면 주기적으로 그레고리안 성가를 부른다.

그러나 이러한 명상주제들에 의식을 고정하여 번뇌가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최종 목적은 아니다. 이를 통하여 의식의 가장 밑바닥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각 의식이 예리한 칼처럼 아주 날카로워진다. 그러나 그 과정에 의식에서 일어나는 비이성적 상태를 경험하여 육체적 혹은 정신적 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것이 의미하는 은유와 과정을 그리스도교 시각에서 십자가 성 요한이 저술했던 시가 ‘어두운 밤’이다.

이렇게 체험되는 영혼의 ‘어두운 밤’은 수행자들에게 고난이 되기도 하지만 가장 밑바닥 의식에서 일어나는 내면의 빛을 만나는 계기이자 거쳐가야 하는 과정이다. ‘어두운 밤’은 ‘동굴’과도 같다. 밀교에서 정의하는 무상無相요가는 의식이 명상 중에 경험하게 되는 ‘모습(相)’이 더이상 일어날 것도 없는 깨끗한 의식의 상태, 즉, 비환불멸非幻不滅/환상도 아니고 소멸하지 않는의 궁극적 의식 상태를 지향한다. 이것이 어쩌면 ‘내면의 빛’ 혹은 ‘하느님’이 아닐까?

어느 어두운 밤에
사랑에 타 할딱이며
좋을씨고 행운이여
알이 없이 나왔노라.
내 집은 이미 고요해지고
어두운 밤/최민순 옮김

유럽 여행의 첫 방문지 스페인 톨레도에서 십자가 성 요한이 ‘어두운 밤’을 집필했던 감옥을 찾아다녔다. 톨레도 성곽에 자리 잡은 조그만 감방이었다. ‘자연 동굴’이 아닌 ‘문명 속의 강제적 동굴’이다. 관광객들이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다. 지금은 창틀을 돌로 막아버렸다. 단지 그의 ‘어두운 밤’ 첫 구절이 적혀있어 그를 기념할 뿐이다.

감방이 있었던 곳을 어림잡아 위쪽으로 올라왔더니 공원이다. 여기서 시 외곽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앞에는 타구스강이 흐르고 있다. 공원 뒤편에는 성당이 있다. 아마도 종교적인 신념 문제로 성 요한을 이단으로 몰아 옥살이시킨 성당일까? 이 성당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지는 않았다.

대승불교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공성(空性)’을 체험한다고 부르고 그리스도교에서는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일시적 상태 체험일뿐이다. 영원하지 않다. 따라서 영원하지 않은 것을 소중하게 여겨봐야 ‘나’만의 체험일 뿐이고 그것을 ‘타자’에게 떠들어봐야 자기 자랑일터이고 그에 대한 반응은 “미친놈 아니면 존경”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수행의 최종 목적은 이러한 체험을 ‘나’의 의식에서 계속 유지하는 것이고 이를 ‘타자’와의 조화로운 관계로 무한히 경계를 확장하는 것이다. 마지막에 도달하는 것이 ‘지혜와 자비’인 것이다. 수행을 통해 획득된 내면의 빛인 ‘지혜’와 이를 ‘타자와의 관계 속으로’로 확장하여 실천하는 ‘자비행’이다. 서양의 수행 전통이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도 바로 이것 때문이 아닐까?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알프레드 D. 수자 Alfred D. Suja/류시화 옮김




수비아코로 올라가는 산 중턱에 베네딕토 여동생 수녀님을 기리는 수도원(The monastry of st. Scholastica)이 있는데 이곳에 고서를 보관하는 도서관이 있다고 한다. 아쉽게도 그곳은 개방되어 있지 않았다. 수도원 부속 호텔이 있고 여기에서 단체 숙박만 받는다고 한다. 수세기에 걸쳐 변화된 수도원 건물들이 덧붙여져 건축 양식의 변화된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고 한다. 안내하는 아가씨가 너무 이뻐서 그녀의 얼굴만 감상하느라고 내용을 잘 듣지 못했다. 물론, 설명이 영어와 이태리어이니 이해도 안 되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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