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의 작은생각] ‘액세서리 헤드’가 진중권 교수께 드리는 인식론적 질문 – 천동설은 진리? 헤르메스는 사기꾼?

이틀 전에 진교수께서 <프레시안>에 기고하신 글을 봤습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하지만 딱히, 어떤 경로로든, 선생님의 말씀에 ‘토를 달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다. 또 한 번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정도 넌센스라면 내로라하는 글쟁이들에 의해 가루가 되는 건 시간문제라 여겼거든요. 그리곤 오늘까지 이틀이 흘렀습니다. 어?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네요. 비판은 여기저기서 있지만 기존의 ‘진영논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글을 씁니다. 세 번째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리 글을 길게 쓸 필요조차 없을 듯합니다.


관련글: 진중권, 정봉주 '미투' 사건에 관하여 - 응답하라, 정봉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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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amu.wiki/w/진중권

우선 선생님의 분류법에 따르면 저는 ‘머리를 액세서리로 달고다니는 자’, 엑세서리 헤드입니다.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직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정확히는 짐작조차 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다만, 프레시안이 언론으로서 책무를 다 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선생님의 정의상 저는 ‘액세서리 헤드’입니다. 선생님의 정의가 그렇다면 부인할 생각 없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정봉주 성추행설의 진위를 밝히는 방법으로 ‘정합설’을 도입하셨습니다. 액세서리 헤드로서는 도저히 생각해 낼 수 없는 창의적인 접근이십니다. 엑세서리 헤드가 알고 있는 바로는 ‘정합설’이란 어떤 명제가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진리인지 아닌지를 가려내는 ‘인식론적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이미 진리라고 인정된 명제와 논리적으로 바르게(正) 들어맞으면(合) 진리라 인정한다는 거죠.

여기서 ‘객관적’이라는 표현이 들어가는 이유는 진리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주관성의 개입을 배제한다는 것, 다시 말해 인식 주체 즉 주장하는 사람의 처지, 동기, 욕망, 한계 따위와 상관없이 진리임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생각이 조금 다르신가 봅니다.

액세서리 헤드가 생각하는 인식론적 방법으로서의 정합설과 수학적 귀류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확히 이게 수학적 귀류법에 해당하는지는 자신 없지만 선생님이 정의하기에 그렇다 하시니 이번에도 불초한 엑세서리 헤드는 인정하고 넘어가겠습니다.^^)

A라는 도형이 삼각형이라면, A는 세 개의 선분으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 (귀류법적 증명) 그 도형이 세 개의 선분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고 가정해보자. 세 개의 선분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 삼각형은 삼각형의 정의상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이는 ‘A라는 도형이 삼각형이라면’이라는 전제와 모순된다. 따라서 도형 A는 세 개의 선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진중권 선생님께서는 정합설과 수학적 귀류법을 이렇게 쓰고 계시네요.

A에게 거짓말을 할 동기가 없다면 A의 말은 진실일 것이다.
--> (귀류법적 증명) A의 말이 진실이 아니라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A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A에게 거짓말을 할 동기가 없다는 전제와 모순된다. 따라서 A의 말은 진실일 것이다. (혹은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엑세서리 헤드인지 아닌지 좀 더 쉽게 자가진단할 수 있도록 표현을 바꿔볼까요?

프톨레마이오스에게 거짓말을 할 동기가 없다면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말은 진실일 것이다.
--> (귀류법적 증명)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말이 진실이 아니라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프톨레마이오스에게 거짓말을 할 동기가 없다는 전제와 모순된다. 따라서 프톨레마이오스의 말은 진실이다. (혹은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재차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만 저 같은 ‘액세서리 헤드’에게 인식론은 객관적으로 보편타당한 진리를 판단하는 기준에 관한 것이고, 그 방법중 하나로서 정합설은 ‘전제와 결론 사이의 논리적 필연성’에 근거한 방법입니다. 그런데 진중권 선생님께서는 ‘인식 주체(어떤 명제를 주장하는 자)의 동기’를 진리 여부(혹은 진리와의 근접성?)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고 ‘정합설’의 근거를 ‘행위 동기와 결과 사이의 필연성’에서 찾고 계십니다.

인식론의 기상천외한 적용, 참으로 창의적인 적용임에 분명하나 저 같은 액세서리 헤드는 선생님이 쓰신 길고 유려한 글에 관통하는 논리를 인정할 수 없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선의’는 인정할지언정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말의 진실성은 물론 진리와의 근접성조차도 도저히 긍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또 한 가지, 선생님의 논리가 긍정된다면 이런 일도 벌어지지 않을까요?

헤르메스에게 거짓말을 할 동기가 있다면 그는 사기꾼일 것이다. (ㅠㅠ)
--> (귀류법적 증명) 헤르메스가 사기꾼이 아니라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헤르메스는 자신이 사기꾼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고 이는 진실을 말한 것이다. 그런데 이는 헤르메스에게 거짓말을 할 동기가 있다는 전제와 모순된다 . 그러므로 헤르메스는 사기꾼일 것이다. (ㅠㅠ)

선생님, 저 사기꾼 아닙니다. 저 억울해요. 제발, 제가 사기꾼 아닌 걸 증명할 방법을 알려주세요.ㅠㅠ

그렇다면 왜 선생님은 저 같은 ‘액세서리 헤드들’에게 이런 ‘억울할 만큼 창의적인’ 주장을 하시는가? 저는 그 동기를 판단하기는커녕 짐작조차 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선생님과 달리 ‘액세서리 헤드’에 불과하거든요. 그래서 모르는 건 모르는대로 남겨두려구요.

‘정봉주가 A씨에게 A씨의 의사에 반해 키스를 하려다 실패한 사건’에 대한 진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한 존재가 두 공간에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는 공리에서 출발한 ‘정합설’과 갖가지 증언과 사진, 동영상 즉 감각적 경험에 기초한 ‘대응설’에 따라 진실이 충분히 밝혀지리라 믿고 때를 기다리려 합니다. 그리고 그 사건이 범죄인지 여부는 그 다음에 판단해야겠죠. 이것이 저 같은 액세서리 헤드들이 생각하는 ‘인식론’이랍니다.

끝으로 사족 하나, 진실을 알고자 하는 욕망이 진실을 보는 시야를 가릴 때를 대비해 소크라테스라는 위대한 ‘액세서리 헤드’ 마법사께서는 이런 주문을 알려주기도 하셨답니다.

노스케 테이 입숨Nosce te ipsum!
Know thyself!
너 자신을 알라!

이 주문이 함축하는 바는?
무지의 자각...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해~”입니다.

선생님도 아실텐데...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아 죄송합니다. 건필하십시오.

(사족 하나 더, 여기까지 제 글을 읽고 '정봉주 쉴드', '공작설', '음모론', '미투 반대' 따위의 동기를 읽어내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분들이야말로 진정한 액세서리 헤드 아닐까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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