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nti Stupa의 불상 배치



이제 라다크의 여정도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여정이 시작될 때 이것 만큼은 보고 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기대대로 되지 않았다. 여행을 인생에 비유하는 것이지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는 것이 아니다. 인생이 언제 내 뜻대로 이루어진 적이 있었는가? 여행도 인생의 일부일 뿐이다. 모두가 과거 생생 내가 알게 모르게 쌓아왔던 인연의 그물망에 얽히고 설켜 원인과 조건이 충족되어 때 맞춰 인연이 일어난 것 뿐이니 그것에 원망할 필요도 없고 자책할 필요도 없다.

내가 묵고 있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10 여분 정도 걸어가면 대략 20분 정도 올라야 하는 정상인 돌 산이 있다. 여기 꼭대기에 일본의 어느 스님이 스투파(Stupa)와 불당을 건립하였다.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 고산 지대 적응을 위하여 아침 일찍 일어나 올라갔다. 이제는 오르는 데 그렇게 힘들지 않은 것을 보니 이곳의 삶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된 것 같다. 국내에 출판된 라다크 관련 여행기를 보면 레 펠리스와 좀 더 높이 있는 곰파에 올라가서 시내 전경을 찍은 사진과 설명이 대부분인데 레 전체와 주변을 조망하기에는 이곳으로 부족하다. 차라리 이곳 창스파(Changspa)의 Shanti Stupa에 올라와서 보는 것이 범위가 훨씬 넓고 멀어서 동서남북으로 병풍처럼 펼쳐진 히말라야 산맥이 품고 있는 레 시내와 주변 풍경을 즐길 수 있다.




돌계단을 서서히 올라가다가 스투파에 거의 다다랐을 때 높이가 다르게 배치된 두 불당이 보인다. 아래 불당은 부처님이 서좌동향으로 배치되어 일출의 해를 바라보고 계시는 아미타불이고 위의 불당은 동좌서향으로 일몰을 바로보고 계시는 약사여래불이다. 이러한 배치를 별 뜻 없이 생각하다가 약사여래불의 하늘 빛 머리를 보고 이렇게 불당을 배치한 설계자의 의도를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번뇌가 완전히 소멸된 서방 극락 정토의 아미타불과 생명의 건강과 장수를 주관하는 동방 약사여래불을 등지고 배치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생명 현상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으로 향해 가는 과정이라기 보다는 생명 유기체를 이루는 세포가 매 순간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여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상호 의존의 연기 법이다. 유마 거사는 말했다.

번뇌가 바로 보리(깨달음)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삶과 죽음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기쁨과 슬픔, 행복과 괴로움 등 상호 의존 관계에 의해서 정의 되어지는 환상일 뿐이다.


라다크 여행 일지


쫄보의 지성 | 고산증 예습 | 고도의 향기(Scent of Altitude) | 별바라기 | 종자생현행(種子生現行) | 타라보살의 시험과 은총 | 룽타와 고도의 향기 콜라보레이션 | 라다크의 개그지들| 으르신 같은 영혼들 | 푹탈 곰파로 다가가는 길목에서 | 푹탈곰파는 아직 아니야 | 고산지대의 경고 | 관개 농법의 라다크 채소 농사 | 라다크에서 머피의 법칙이란? | 폐허 아닌 폐허 같은 | 라다크 농가의 낭만 | 생명 창발(Emergence)의 현장에서 | 그 많은 똥 더미를 누가 다 쌓았을까? | Shanti Stupa의 불상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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