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의 작은생각] 여성 혐오의 기구한 뿌리 - 모성에의 공포

pink-floyd-mother.jpg

3년 전 인디 밴드로는 탄탄한 팬 층을 확보한 쏜 애플의 리더 윤성현이 '자궁 냄새' 운운하는 여성 혐오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져 충격을 준 적이 있습니다. 쏜 애플의 팬들 중 절대 다수가 여성이었던 만큼 그가 했다고 전해지는 발언의 충격은 더욱 크게 다가왔었죠. 하지만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의 발언이 '여성 혐오'라는 데는 동의하나, 과연 도덕적 비난의 대상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습니다.

엄마는 아이를 보호해 주는 존재입니다. 보호란 '예견되는 위험 요인의 선제적 차단'이죠. 불가리아 태생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해온 정신분석학자 쥘리아 크리스테바에 따르면, 이렇게 엄마에 의해 차단되고 배제된 것들은 아이의 내면에서 완전히 추방되는 것이 아니라 '코라'라는 곳에 저장된다고 합니다. '코라'는 아이의 내면에서 엄마에 의해 금지당했으나 버릴 수는 없는 것들을 모아두는 암흑의 지하창고 쯤 되는 셈입니다.


엄마로부터 과잉보호를 받는 아이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 동생을 불의의 사고로 잃은 경험이 있는 엄마는 아이를 사고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아이의 주변에 최선을 다해 차단막을 칩니다. 자전거나 인라인 스케이트는 교통사고의 위험 때문에 금지의 대상이고, 늦은 귀가는 범죄의 위험 때문에 허용되지 않습니다. 끝이 날카로운 도구는 문구용 칼 조차도 쓰지 못하게 하고 심지어 노로바이러스에 대한 공포 때문에 겨울철에도 초밥이나 회 같은 익히지 않는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합니다.


이렇듯 엄마의 차단막은 때로 '장벽'이 됩니다. 그런데 장벽이 장벽 너머에 대한 그리움까지 차단하지는 못하는 법입니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엄마에 의해 '코라'에 가두어져 있던 금지된 욕망은 아이가 엄마의 품속에서 나와 타자와 교류하면서 단단히 잠긴 문틈 사이로 조금씩 비어져 나옵니다. 그러다 일순간에 억눌려 있던 에너지가 분출하면서 코라의 잠긴 문이 부서지고 이번엔 오히려 엄마를 그 코라 속에 감금시켜 버리죠. 성인이 되어 스스로 코라의 문을 열고 대등한 존재로서 엄마와 대면할 때까지...


핑크 플로이드, Mother (그들의 명반 'The Wall'에서 주인공 핑키가 마주한 장벽의 원초적 기원은 엄마입니다. 관련글: 평화를 꿈꾸었던 자가 맞이한 최후의 꿈 - 핑크 플로이드 The Gunner's Dream)

인용문 속의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아이는 여러 겹의 곤경에 빠집니다. 자신을 가두는 엄마의 장벽이 갑갑하고 그 너머의 세상이 그립지만, 엄마에게서 전염된 공포 때문에 선뜻 그 밖으로 발을 내딛지는 못합니다. 다른 아이들과 사귀고 싶지만 촘촘한 엄마의 규제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고, 다른 한편으로 그런 자신에게 더 적극적으로 다가와주지 않는 다른 아이들에 대한 피해의식도 쌓입니다. 스스로를 왕따라고 규정하는 거죠.

아이는 결국 엄마의 장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학교와 또래 집단을 떠나 집안에 스스로 유폐됩니다. 그럼으로서 엄마도 함께 유폐되죠. 아이와 엄마는 함께 유폐된 집안에서 지옥같은 나날을 보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엄마 곁을 영원히 떠납니다. "엄마, 아빠... 저 때문에 불행하셨죠? 이제 저에게서 자유로와지세요."라는 편지를 남긴 채...

정상적인 경우, 엄마는 아이의 내면에서 '코라'에 감금됨으로서, 오히려 아이를 보호해주는 임무(?)로부터 아이에 의해 '해방'됩니다. 그런데, 불행한 엄마들은 아이에 의해 '코라'에 감금되는 것에 강하게 저항함으로써 오히려 아이의 삶에 더 강하게 '스스로' 결박 당합니다. 아이에게 닥칠 위험에 대한 초조가 강하면 강할수록 아이에게 더 치명적인 결과를 낳고, 아이에 대한 보호막이 촘촘하면 촘촘할수록 아이는 더 큰 위험에 빠집니다. 그렇게 엄마는 아이의 감옥이 되고 아이는 다시 엄마의 감옥이 되어갑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러한 악순환이 앞의 예처럼 파국으로 치닫지 않는다해도, 이러한 경험이 주는 트라우마는 아이의 내면에 '모성에 대한 공포/혐오'를 깊이 새겨 넣습니다. 나아가 성인이 되어서도 코라의 문을 스스로 열고 삶의 유일한 여성이었던 엄마를 대등한 존재로서 마주할 기회를 갖지 못할 경우, 모성에 대한 공포/혐오는 여성에 대한 공포/혐오로 확대 재생산됩니다. 상처입은 엄마의 피해자였던 아들이 상처입은 가해자로 다시 태어나는 거죠.

그런데 세계 최장 수준의 노동시간과 대다수 여성의 경력 단절이라는 언뜻 별 상관없는 듯한 '사회적 상황'은 가정에서의 '아버지 부재-부권 약화'와 '양육 책임의 여성 전가'라는 조건과 맞물려, '불행한 엄마'들을 양산하고, 극심한 입시 경쟁은 그들이 단단하고 촘촘한 감옥 속에 아이들을 보호/감금할 가능성을 극단적으로 높입니다.

오늘날 청소년기를 갓 남긴 20대 초반의 남성들에게 퍼지고 있는 여성 혐오의 상당 부분은 모성에 대한 혐오와 공포에 뿌리를 두고 있는 듯 보입니다. 쏜 애플의 윤성현 역시 자신의 '자궁 냄새' 발언에 대해 해명하면서 편모 슬하에서 자라면서 생긴 모성에 대한 공포를 언급하기도 했지요. 가해자/피해자의 이분법을 바탕으로 윤성현을 매도하는 것이 다소간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그의 말은 '가해 발언'으로서 만큼이나, '상처의 고백' 또는 '공포의 고백'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모성에 대한 공포에 기원을 둔 유형의 여성 혐오는 미투 운동이 일시적 분노의 표출에 머무르지 않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되는 듯합니다. 상처가 상처를 낳는, 이 기구하기 짝이 없는 가해와 피해의 연쇄고리를 끊기 위해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차별적 구조의 본질과 그것이 낳는 효과에 대한 세심한 성찰과 진단 아닐까요?


쏜 애플, 석류의 맛. 이 곡에서도 저는 여성에 대한 선망, 공포, 애착, 혐오,탐닉이 뒤섞인 윤성현의 내면을 읽습니다.

이젠 까마득해요
온전한 당신을 먹은 기억
여긴 날씨가 좋아요
이젠 별로 열도 안 나구요

도망쳐 온 하늘에는
새가 없어요
다다랐던 땅 위에는
그댈 닮은 것이 자라나요

한 알, 한 알 때다가
입에 넣고 혀를 굴려봐요
달아 빠진 듯해도
어딘가 썩은 것만 같아요

오도독! 오도독!
혀를 씹을 만큼 삼켜도
내 안에 똬리 튼
검은 구멍 짙어만 지네

그래도 좀처럼
멈출 수가 없어 난 그래
오늘도 제 발로
기어들어 간 작은 지옥

한참을 떨어진 것 같은데
바닥은 어디?
마치 천 번쯤 거짓말을
한 것 같은 기분

자꾸만 천해지고
거듭되어 거절되고
애꿎은 입가만
붉게 물들어

아무리 씻어내도
지워지지를 않아요
좀 더 무리해서
더럽혀줘요

들어와 줘요, 끝을 주세요

머리가 새까만 짐승의
고기는 먹는 게 아니라 했다
그렇게 사람이 된다면
차라리 난 귀신이고 싶어라

한참을 떨어진 것 같은데
바닥은 어디?
마치 천 번쯤 거짓말을
한 것 같은 기분

끝이 없는 끝을 내게 줘


헤르메스는 어떤 사람?
인문학과 함께하는 블록체인 영단어
헤르메스의 교단일기
헤르메스의 작은생각
헤르메스의 심야독백
헤르메스의 짧은생각
헤르메스의 주제가 있는 판타지
헤르메스, 나만의 명곡
마법사 헤르메스의 One Day, One Spell
마법사 헤르메스의 Wandcraft
헤르메스의 마법속 철학
헤르메스, 마법의 음악
헤르메스, 욕망의 경제
헤르메스의 공연후기
H2
H3
H4
3 columns
2 columns
1 column
22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