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다. 스티밋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slip-up-709045_1280.jpg

미안합니다.
스티밋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아직은 그렇습니다.

저는 최근에 북핵 관련 포스팅(북핵 드라마, 우리는 新만주국의 출현을 보게 될 것인가?)을 하고는 댓글들을 쭈욱 보다가 문득 잊고 있던 예전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언저리였던 것 같은데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류의 TV 다큐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피해자 가족들을 인터뷰하려고 하는데 당사자가 한사코 거절하며 그러는 겁니다.

'세상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데..'

당시에는 TV를 보며 '뭐 저렇게까지 조심을 할까?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두 번의 보수정권을 거치며 우리는 모두 세상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 목격했습니다.

오늘은 국군, 내일은 인민군

전후세대는 잘 모르는 일입니다. 한국전쟁 때 일어난 수많은 양민 학살에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말이죠. 낙동강까지 후퇴했던 전선이 다시 압록강까지 치고 올라갔다 휴전선 근처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동안, 한반도 전체는 오늘은 국군이 점령했다, 내일은 인민군의 점령지가 되는, 혼돈의 순간들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오늘 국군의 편을 들었다가 내일 학살을 당하고, 어제 인민군의 편에 섰다가 오늘 국군에 의해 처형을 당하는.. 심지어 자신이 어느 쪽 편이라는 것, 어느 쪽 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가족, 이웃을 제 손으로 처형해야 하는 비극이 반복되었습니다.

우리가 쯔쯧 하며 바라보는 광장의 태극기 부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의식구조에는 이러한 비참한 현실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본인이 직접 경험했거나, 자신들의 부모들이 그런 과정에서 피해를 입었거나, 아니면 적어도 명절 때마다 반복해서 들었던 비참한 과거사들 말이죠.

그래서 그분들은 지금 국군의 점령지(?)에서, 나는 빨갱이가 아니라고 태극기를 열심히 흔드는 것입니다. 그러다 그분들의 염려 마냥, 혹 한반도가 적화통일이라도 된다면, 그분들은 바로 태극기를 인공기로 바꿔 드실 겁니다. 살아야 하니까요.

서부전선.jpg

예전에는 이런 사건을 다룬 전쟁문학이 많았는데.. 요즘 젊은 세대는 잘 모를 겁니다. 그래도 비교적 최근의 영화 중 이런 상황을 다룬 영화가 있습니다. 못 보신 분들은 한 번 보시길..

태극기 부대를 이해해보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스티밋은 안전을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박제되는 블록체인에 올라 간 우리의 말과 글이, 언제 어느 때에 부메랑이 되어서 내게 돌아올지 모릅니다.

스티밋, 어쩌면 부메랑 창고

어제는 대학교수인 모 배우의 학생 성추행 사건이 드러나졌습니다. 그는 몇 년 전 자신의 가족과 딸을 가족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시켰던 적이 있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관심을 가지고 보던 저는 좀 충격이었습니다. 그 배우의 숨겨진 행실보다, 만천하에 얼굴을 다 드러내고 출연했던 그의 자녀가, 앞으로 감당하며 살아야 할 남은 생이 말입니다. 자녀가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차라리 아버지가 무슨 비리, 배임 횡령으로 처벌을 받는 거라면 그나마 낫겠습니다. 부모 따라 주홍글씨가 박혀 버린, 자녀들의 남은 삶에 드리운 고통의 그림자가 참으로 안쓰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요즘은 모든 게 쉽게 드러나지는 세상이라 프라이버시를 관리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문제가 생기거나 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유명인이건 일반인이건 잠수를 타거나 계정을 삭제, 탈퇴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블록체인은 그게 안됩니다.

게다가 우리는 그 블록체인 시스템의 모르모트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시스템에 얼리어답터로 맨 먼저 참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좋다고 수은, 납을 화장품으로 쓰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스티밋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 저는 자꾸 노파심이 듭니다. 정치, 사회적 쟁점이 될만한 이슈들은 차라리 낫습니다.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고, 희석될 공간, 묻어갈 세력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프라이버시.. 그건 온전히 본인의 몫입니다.

저작권 문제야 여기 변호사님들도 열심히 가이드라인을 주시고, 그간 여타 플랫폼의 여러 사건들로, 개념들을 모두 탑재해 가고 있지만, 프라이버시.. 이건, 전체주의에서 개인주의 사회로 넘어가고 있는 과도기적 한국 사회에서, 매우 조심스럽고 민감하게 다루어져 할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옥떨메'를 아십니까?

스티미언들의 블로그들을 돌아다니다 보니, 저로서는 염려되는 포스팅들을 보게 됩니다. 오히려 생활 이야기가 더욱 그렇습니다. 최근에 우연히 듣게 된 어떤 팟캐스트에서 여고생들에게 진행자가 물었습니다. '옥떨메'라는 단어를 아느냐고 말이죠. '옥상에서 떨어진 메주같이 생겼다'는 의미라고 알려주자 여고생들이 경악을 하면서 반응하더군요. 어떻게 그렇게 인격모독적인 말이 있을 수 있느냐고 말이죠. 외모비하 발언이라고.. 저의 학창시절에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개그코드였을 뿐입니다. '옥떨메'.. 지금은 큰일 날 단어가 되었군요.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위화감 조성 금지법이 제정되어, 명품백 들고 있던 사진이 처벌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해외여행 못 다녀 본 서민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고, 해외 리조트에서 찍은 영상이 위법사항이 될지도 모릅니다. 지금 현재의 프라이버시 기준도 10년, 20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할 기준이니까요. 아.. 버스, 영화관 좌석에 재떨이가 일체형으로 설치되어 있던 시절이 그리 멀지 않습니다.

상사한테 불만이 있을 수도 있고, 다니는 직장, 마음에 안 들어 침 탁 뱉고 뛰쳐나온 얘기가 공감을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을 좀 살다 보니 뛰쳐나온 회사 제 발로 다시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더군요. 요즘 어떤 회사는 신입사원 SNS 계정도 확인한다는 데, 뭐 꼭 공식적이 아니라도, 새로 들어온 사원 전화번호 입력하면 카톡, 페북 친추에 자동으로 뜨는 것, 막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젊은 세대들은 페북을 대거 이탈해 프라이버시 기능이 강화된 SNS로 갈아타거나, 아예 SNS를 하지 않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원히 삭제도, 수정도 되지 않는 블록체인.. 그리고 첫 블록체인의 첫 SNS 시스템인 스티밋은 어쩝니까?

불편한 직장 상사가 내 스티밋 계정에 박제된 글들을 들여다보게 된다면.. 헤어진 전 남친과의 일상이 담긴 박제된 포스트를 시어머니가 들여다본다면 말이죠. 이 정도야 알아서들 관리하고 계실 겁니다. 당황한 일들이 그동안 워낙 많았으니 말이죠.

그런데 문제는 세상이 또 어떻게 변할지 누구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여기 스티밋의 누구도 그걸 알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스티밋의 운영본부는 자신의 책임을 최소화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별것도 아닌 카테고리 기능조차 제공하지 않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단에 최신 글 목록도 안 뽑아주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기능적으로 제공된 포스트가 문제가 될 시, 기능을 제공한 스티밋 운영사에게도 일부 책임이 돌려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달리 외국의 프라이버시 관련 문화와 법률은 만만치 않습니다. 어설프게 서비스를 했다가 회사가 독박을 쓰는 일이 허다합니다. 페북처럼 이익을 독점하고 있는 게 아니니 책임도 독점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페북 쓰듯이 했다간 낭패를 볼지도 모를 일입니다. 자유도만큼의 책임이 요구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은 사람

공간을 만들어가는 건 사람입니다. 언젠가 여기 스티밋에 포스팅된 글이 다른 SNS 공간에서 싸늘하게 다루어지는 광경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SNS에서야 늘 있는 일이지만, 저자가 그것을 스티밋에 올렸을 때는 그런 취급이나 대접을 받고 싶지 않아서였을 겁니다. 그런데 누구든 접근이 가능한 스티밋의 포스트는 그렇게 다른 공간으로 옮겨져서 그 공간 특유의 방식으로 씹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들 중에는 스티미언들도 있었습니다. 그분들 역시 이 스티밋에서는 그렇게 포스트를 다루지 못할 것입니다. 스티밋은 신사적인 공간이니까요. 하지만 신사도 예비군복 입혀 놓으면 짝다리 집고 침을 탁탁 뱉습니다. 공간과 양식이 사람의 태도를 좌지우지하니까요.

그러나 성숙하다는 것은 그가 어디서, 어떤 공간에 있든, 한결같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건 단시간에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만나면 민증부터 까는 우리 사회가, 오랜 시간 개인주의 프라이버시 문화를 확립해 온 선진사회의 문화에, 단번에 적응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매우 자유도가 높고 시스템의 규제가 별로 없는 이 스티밋에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준비가 얼마나 되었는지 알지도 못한 채 말이죠.

죄송합니다. 노파심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다들 잘하고 계실 겁니다. 그런데 저는.. 위대한 존엄의 이미지를 제 마음대로 포스팅한 저는.. 이제 큰일 났습니다. 이미 박제가 되어버렸으니, 적화통일이라도 되는 날에는 탄광행이거나 즉결처분을 당하고 말게 생겼습니다. 그러니 이제라도 태극기 부대에 합류해 자유민주주의를 사수해야 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ㅎㅎ

부탁드립니다.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포스팅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봐 주십시오. (물론 제 자신에게도 하는 말입니다.꾸벅 ) 아.. 그리고 댓글, 댓글도 삭제가 안되더군요. 댓글 달 때도 신중하게 생각해 주십시오. 요즘은 댓글도 찾아내서 조리돌림을 하는 시대가 아닙니까.

그리고 내가 뭐 언제 셀럽될 일도 없고.. 방심하지 말아주세요. 스티미언 여러분, 지금 이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는 kr 생태계의 여러분들은, 여지껏 자신의 포텐셜을 터뜨리지 않고 간직해 오신 분들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유명 작가, 지도자, 셀럽들이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단 말입니다. 그러다 댓글 하나에 날아가지 마시고 말입니다. 무서운 세상은, 맥락을 모두 제거한 채 워딩만 딱 따다가 조리돌림을 하니까 말입니다.

꼰대 같은 말씀 좀 드렸습니다. 관찰 좀 하다 여차하면 발 뺄까 싶었는데.. 어느새 이 스티밋에 애정이 생겨나고, 여러분들을 사랑하게 되어버려 드리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면 꼰대가 되나 봅니다.

너나 잘해라 말씀하신다면..
미안합니다.
저는 이미 틀렸습니다.
태극기나 사러 가야겠습니다.

휘리릭~


@mmerlin's post


[멀린's 100]
01. 1987 나는 남영동에 있었다
02. 최순실과 동업할 뻔했던 이야기
03. 자본의 종말에 대처하는 인간의 자세
04. 전대협과 붉은악마
05. 폭주족 그녀와 다시 조우하다
06. 북유럽은 개뿔
07. 너희를 위해 나를 희생시키면
08. 북핵 드라마, 우리는 新만주국의 출현을 보게 될 것인가?
09. 강한 것은 강한 것이다 (1)
10. 강한 것은 강한 것이다 (2)_철학의 시작
11. 강한 것은 강한 것이다 (3)_칭기스칸, 인류사상의 칵테일 바텐더
12. 강한 것은 강한 것이다 (4)_조선은 철학이다
13. 강한 것은 강한 것이다 (5)_관념론의 나라
14. 강한 것은 강한 것이다 (6)_그래서 뭐! 어쩌라고?!
15. 인생은 어떻게 미끄러지는가
16. 가브리엘의 오보에는 어떻게 히틀러를 괴물이 되게 했는가
17. 인정욕구가 유통업계에 미치는 영향

[그림 없는 그림책]
01. 마더 Mother
02. 끝이 온다

[ETC]
01. [가입인사]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쓰는 것에 대하여
02. 가상화폐와 암호화폐
03. 뉴비의 Bandwidth 체험기
04. 뉴비의 보팅에 관한 짧은 생각 및 질문
05. 페이스북 한 달, 스팀잇 일주일
06. 우리는 어쩌면 잠실 뽕밭에 씨를 뿌리고 있는지 모른다
07. 존버의 법칙 (존버의 과학적증명)
08. [선언] 저는 고래가 되지 않겠습니다
09. 스티밋의 7일 보상 방식의 마법적 활용
10. 우리는 모두 스타트 업이다
11. 미안합니다. 스티밋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12. 여지껏 글을 써 온 그대들에게..
13. 누가 고래를 욕한다냐?



소중한 댓글 감사드립니다.
대역폭과 시간 사용 등의 문제로
질문 외에는 답글보다 답방을 드리려고 합니다.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H2
H3
H4
3 columns
2 columns
1 column
68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