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다크에 도착 후 하룻밤 지내고 @choonza 팀을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아직 쑥스럽고 거리감이 느껴지던 아침 식사 후 뻘쭘하여 가깝게 자리 잡고 있는 꽃 나무에게 다가갔다. 서먹서먹할 때 제일 먼저 하는 행위가 주위를 둘러보는 것이다. 불두화 같긴 한데 잘 모르겠고 왠만 하면 새 순을 씹어 먹는 버릇이 있다. @choonza는 나를 괴상하게 바라본다.
엄청 썼다.
나도 이 상황이 쓰다.
보름이 지나서야 꽃나무가 누구인지 확인 되었다. 예상대로 불두화였다. 숙소 주인 양첸 누님은 독실한 불자이며 채식을 한다. 그래서 화단에 불두화를 심은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습성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과거보다 무언가 생각을 하거나 자주 신경 쓰는 것이 있으면 그와 연관되는 일이 우연인 듯 벌어지곤 한다. 인연의 끌개 작용인지 정말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필연이자 꼭 필요한 일이다. 훗날 돌이켜보면 이 세상 모든 일은 가장 적절한 순간에 찾아온다. 후나이 유키오
점점 의심에서 원래 그런거구나로 마음이 일으켜지고 있다. 그러다 보면 절대 깨지지 않는 금강과 같은 확신으로 바뀌겠지. 그래서 나는 불교 논서 중에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이란 제목을 아주 좋아한다. 믿음과 맹신은 완전히 다르다. 믿음에는 우선 앎이 선행하고 그 앎에는 사랑과 관용이 덧붙여진다. 지식이 아니고 지혜이다. 그래서 나는 사랑과 관용으로 똘똘 말려있는 지식이라는 뜻의 지혜를 아주 사랑한다. 지혜의 굳건한 토대가 없는 믿음은 믿음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을 얼간이가 믿는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믿음은 확고하게 발전해가는 의지의 과정이고 목표이지 미련 곰탱이 같이 손바닥을 칼로 째서 피 좀 뿌린 술 마셨다고 그 믿음과 신뢰가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 삼국지 인물들이 간지 있다고 따라한다면 겉 멋만 잔뜩 든 거라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탐욕, 분노, 어리석음, 자만, 의심이라는 번뇌의 바다를 모두가 건너도록 하려면 우선 강한 믿음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더라도 나는 여전히 번뇌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실컷 번뇌라는 짠 물을 먹고 나서야 정신 차리겠지. 하긴 분명히 짠 맛인데도 단 맛으로 여기거나 여기고 싶어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짠 맛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면 불안해질 꺼라고 겁부터 먹는다.
한 달 전(5월 3일) 아파트 옆 아담하게 조성된 공원 입구에 불두화가 피길 기다렸다가 찍어두었던 사진이다. 라다크에서 개화된 불두화를 6월 2일에 찍은 것이다. 한 달 전 찍었던 그 불두화는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서 찾아갔다.
6월 5일이니 한 달 사이 이렇게 변화 되었다.
3~4시간의 시차를 하루 만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일까? 시차가 작으니 별로 걱정 안 했는데 면역력이 저하된 탓인지 하루 종일 골골하다. 라다크 추운 날씨에 단련이 되었다고 생각하여 집에 온 뒤 가볍게 입고 잤는데 감기 걸렸나 보다. 이젠 몸을 사리는 습관이 베어 있어야 한다.
라다크 여행 일지
쫄보의 지성 | 고산증 예습 | 고도의 향기(Scent of Altitude) | 별바라기 | 종자생현행(種子生現行) | 타라보살의 시험과 은총 | 룽타와 고도의 향기 콜라보레이션 | 라다크의 개그지들| 으르신 같은 영혼들 | 푹탈 곰파로 다가가는 길목에서 | 푹탈곰파는 아직 아니야 | 고산지대의 경고 | 관개 농법의 라다크 채소 농사 | 라다크에서 머피의 법칙이란? | 폐허 아닌 폐허 같은 | 라다크 농가의 낭만 | 생명 창발(Emergence)의 현장에서 | 그 많은 똥 더미를 누가 다 쌓았을까? | Shanti Stupa의 불상 배치 | 여정의 마지막 날 | 나의 라다크 심상(心想) | 라다크 여훈(餘薰) | 한달 늦은 라다크의 불두화(佛頭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