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의 역사 4번째 최종^^
- 서구역사의 창시자
- 인간과 권력과 시대- 사마천
- 역사서설, 무깟디마-할둔
- 반면교사 있던 그대로의 역사- 랑케
- 마르크스의 역사법칙
- 고단한 민족주의 역사학-박은식,신채호,백남운
- 역사가 된 역사이론서 E.H. 카.
8. 문명의 역사, 슈펭그러,토인비,헌팅턴
9. 역사와 과학의 통합 다이아몬드와 하라리
- 참고문서: 국가란 무엇인가,
청춘의 독서,
총균쇠, 사피엔스
20세기 ‘국가’가 아닌 ‘문명’을 연구하는 역사가가 등장한다. 토인비는 유럽에 독립적 개체로 연구할 수 있는 국가는 없다고 보았다. 대영제국조차도 6C 기독교 개종기 까지만 거슬러 올라다도 더 큰 사회의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토인비의 생각은 1920년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에서 시작되었다. 문명의 병행성과 동시대성을 살피는 관점은 훌륭했지만 슈펭글러는 직관은 과잉이고 논증은 부족했다. 토인비가 그걸 경험적 방법으로 보강했다.
유시민은 [서구의 몰락]을 ‘어마어마한 독서이력을 가진 천재만이 쓸 수 있는 횡성수설’ 이라며 이 엄청난 자아도취의 ‘통나무에서 힘들게 뽑아낸 젓가락’을 소개해준다. 어차피 웬만해선 읽을수도 없는 이런 책에대한 요런 명확한 소개는 너무나 고맙다.
슈펭글러가 역사를 탐구하고 발견해낸 ‘어마어마’한 원리는 이것이다.
한 지역을 역사의 중심으로 선택하면, 그곳이 태양이다. 역사의 모든 사건은 그 빛을 받으며 그곳을 중심에 둔 원근법에 따라 역사적 의미를 부여받는다. 서구 사람들의 자아도취일 뿐이다. 중심에서 멀어진 중국과 이집트의 수천년 역사는 삽화처럼 작아진 반면, 가까운 곳에 있는 루어와 나폴레온의 수십년 역사는 도깨비처럼 부풀어 올랐다. 나는 그런 도식을 ‘프톨레마이오스적 체계’라 하고, 이 책의(자기의 책, 서구의 몰락) 체계를 ‘코페르니쿠스적 발견’으로 간주한다. p 251
슈펭글러의 역사철학은 이해하기 어렵다. - 세계사의 비교형태학이라는 철학적 방법을 ... 문화의 형태어로 출발해 그 근원에 도달해 상징주의 기초를 얻는다. 2장은, 사실에서 출발해 역사적 경험의 정수을 얻음으로써 미래를 형성하고자 한다. - 토이비는 이 어려운 말들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40년을 [역사의 연구]에 쏟아 붓는다.
[역사의 연구]는 문명의 백과사전이다. 소멸했거나 살아있는 모든 문명을 탐사했으며 인명,지명 색인을 별도로 낼 정도로 방대하다.
그가 알았던 문화는 스물 한 개였다. 그는 이야기를 만든 것이 역사가의 일임을 알고 그것이 기록이고 과학이며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문명은 다양한 인과관계로 얽혀 있는데 인종설, 환경설을 모두 배격하고 ‘도전과 응전 패러다임’을 창안했다.
[문명의 충돌] 헌팅턴은 세계화 시대에도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문화적 귀속감 즉, ‘부족본능’이라고 주장해서 주목을 받았다. 살짝 편집하면
우리는 자신이 무엇이 아닌지 알 때만, 아니 적수가 누군지 알 때만 내가 누구인지지 알게 된다. 사람들은 조상, 종교,언어,제도 등으로 자신을 규정하는데 그런 문명이라는 문화집단에 자신을 귀속시킨다. 이익추구뿐 아니라 정체성 확인에도 정치를 이용한다.
이 책은 서구문명을 세계 보편문명으로 본 편협한 자부심의 후쿠야마.[역사의 종말]에 대한 정면 비판이다. 그는 정치 경제보다는 종교,문화를 중심으로한 갈등을 중심으로 냉전 종식 이후의 갈등를 예견했다. 분열을 거듭하는 ‘국민 국가’를 국제문제의 기본단위로 보기보다는 세계를 중화,일본,힌두,이슬람,정교,서구,남미,아프리카 8개 문명으로 분석하는 틀을 제공한다.
문명들은 가끔 ‘조우’(정복)하며 따로 존재하다가 최근 ‘격돌’을 거쳐 다문명 체제로 전환되었다. 이제 분쟁은 문명과 문명이 만나는 단층선 분쟁 수준이며 이 분쟁을 잘 조절해야 한다. 모든 문명은 피차 존중해야 하겠지만 여성할례등 허용할 수 없는 절대적 윤리도 존재한다고 보았다.
사피엔스에게는 그런 보편적 성향과 윤리도 존재하고 탐욕과 지배욕같은 폭력적 성향도 존재한다. 세계의 미래는 각 문명들을 이끄는 지도자들이 얼마나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헌팅턴은 진단했다.
- 인종은 없다. 모든 인종은 서로 교미하면 자식을 낳을 수 있는 같은 종이다
역사의 서술단위는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
이제 역사의 역사는 [총균쇠]와 [사피엔스]로 대미를 장식한다.
그리스 세계의 전쟁사에서 시작하여 사피엔스로 끝나는 것이다.
역사의 보조학문던 과학이 이제 역사의 일부가 되어 분리할 수 없게 되었다. 우주의 발견과 인간 게놈지도의 발견은 역사기록의 물줄기를 틀어버렸다.
60억km 밖에서 찍은 우주의 한 점 지구의 사진은 인종,민족, 언어, 종교, 문화, 그 무엇이든 우리가 특별하고 중요하다고 믿는 것들이 정말 그러한가? 의문을 던지게 했다. 순수 백인임을 확인받고 싶었던 백인우월주의커뮤니티의 순수백인전용마을을 추진하던 건설업자는 자신의 DNA 14%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인의 것이라는 결과를 받아야 했다.
인류역사의 모든 위대한 기록들을 요약한 유시민의 이 책, 그리고 그걸 또 요약한 @raah의 요약본까지 살아남은 이 건설업자의 어리석은 편견의 예, 나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합니다.
게놈 프로젝트, 현대 생물학은 ‘인종’개념을 무너뜨렸다. ‘종’과 달리 ‘인종’은 생물학적 근거를 가진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모든 인종은 똑같은 지적,정서적,육체적 능력을 가진 사피엔스다. 서로 교미하면 자식을 낳을 수 있는 같은 종이다.
다 아시듯, 1997년 [총균쇠]는 토인비가 역사의 동력으로 주목한 사람사이의 관계, 기술과 제도의 변화를 부정하고 오로지 ‘환경’의 손을 들어주었다. 문명간 차이의 원인은 ‘우연’이다. 재수가 좋아서.
유시민은 600쪽의 이 명저를 반쪽으로 요약했다.
문명의 차이는 1. 가축화 작물화 할 동식물이 대륙마다 달랐다.
- 동서축의 유라시아대륙이 문명이동에 생태,지리적 장애물이 적었다.
- 남아메리카와 호주는 고립도가 높았다.
- 유라시아가 인구도 면적도 넓어 잠재적 발전,발명,혁신의 수가 많았다.
이 네 가지 환경 차이는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으며 논쟁의 여지가 없다.
이 가장 중요한 마지막 중요점, “논쟁의 여지가 없다.”라는 주제를 전 왜 여기서야 읽은 걸까요?
신과의 관계(랑케), 역사발전의 단계(마르크스), 아와 비아의 투쟁(신채호), 역사가 인간에게 제공하는 영혼의 기회(토인비) 등은 가변적이고 논쟁의 여지가 있는 인간의 일이다.
다이아몬드는 “객관적으로 증명 가능한 환경적 요소”를 근거로 논증했으니 논쟁의 여지가 차단된 것이다. 이런식으로 역사를 기록한 사람은 첨이죠.
물론 다이아몬드가 지리,언어학의 해박한 지식을 통해 다음과 같이 문명의 교체를 설명한 예는 당연히 생략한다.
고고학,언어학적 증거로 볼 때 BC3000년경 반투족은 서아프리카 다습한 기후에서 참마 농작물과 소를 갖고 있었다, BC2000 반투족은 나일 사하라계이웃들로부터 기장과 수수를 얻었고 철기 생산을 시작했다, 하지만 남족으로 펼쳐진 3200km 땅에는 철기도 농작물도 없는 코이산족이 흩어져 살 뿐이었다, p584
코이산족이 살던 곳에 이제 반투족이 산다, 아메리카 인디언이 아메리카 구석구석에 위폐 되어 산재하듯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인디언들이 유럽인으로 대체되었던 것과 같은 사건이 아프리카에서도 일어난 것으로 보여진다, 반투족은 어떻게 먼저 코이산 족을 침탈할 수 있었을까? 근대에 강철을 가진 유럽인과 신대륙의 수렵채집민이 충돌했을 때 일어난 살해,약탈,전염병 등의 방법으로 신속하게 제거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p585
유라시아에서 전해진 작물을 처음 받아들인 반투족은 그 덕분에 먼저 성장하여 코이산족을 대체했다. 이렇듯 환경은 그 민족이 어떻게 발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매우 큰 요소로 작용했다, 유럽이 아프리카를 식민지화 할 수 있었던 까닭은 지리적, 생물학적 우연 즉 행운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아프리카와 유럽의 역사적 궤적이 달라진 것은 궁극적으로 부동산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총균쇠 중]
물론 모든 역사를 환경으로 환언할 순 없다. 역사는 등장인물들의 야망, 재능, 대중심리등 수많은 변수가 작용한다. 그렇다고 총균쇠의 가치가 휘발되진 않는다.
[사피엔스] 하라리는 7만전 인지혁명을 역사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믿고 공유하는 능력으로 협력하는 힘을 획득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신’이다. ‘인권’ ‘공산주의’, ‘국민주권’ 같은 개념들이다. 이런 공통 신화는 집단적 상상속에 존재한다.
두 번째 반환점은 농협혁명이 역사의 최대 사기라는 관점이다. 하라리의 주장은 사피엔스가 총명한 농부가 되어 만족스럽게 정착했다는 환상을 뒤집은 점이다. 그가 찾아낸 증거들은 농업혁명이후 농민들이 대체로 수렵인들보다 힘들게 살았고 농업이후 인구폭발은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는 점이다. 물론 엘리트가 대중에게 사기를 쳐서 농업을 시작하게 했다는 뜻은 아니다.
이책에서는 소개하지 않았지만 사피엔스의 가장 독툭한 이슈는 사피엔스와 밀의 가치 전도된 다음단락, 즉 이기적 유전자 입장에서 본 농업 부분이다.
어떻게 이 ‘밀’이라는 잡초는 그저 그런 식물에서 출발해 전 세계 어디서나 자라는 존재가 되었을까?
- 밀은 다른 식 물과 공간, 물을 나누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온종일 풀을...
*밀은 바위와 자갈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사피엔스는 밭을 고르느라 등골이 휘었다. - 밀은 자신을 즐겨 먹는 토끼와 메뚜기 떼에 대한 방어책이 없었기 때문에, 농부는 ...
- 밀은 목이 말랐기 때문에, 농부들은 샘과 개울에서 물을 끌어다 댔다.
몸에 맞지 않는 노동, 풀뽑고 밭갈고 물길고 맞지 않는 편식당,탄수화물으로 온갖 질병디스크,관절염,탈장을 얻었다.(고대유골조사)
농사는 매우 많은 노동이 필요하므로 농부는 밀밭 옆으로 집을 옮겨야했다.
" 이 사기극의 기획자가 왕이나 사제도 아니라고 한다. 범인은 [이기적 유전자] 밀이라는 것이다.
식물이 호모 사피엔스를 길들였지, 호모 사피엔스가 이들을 길들인 게 아니라는 발견이다.- 사피엔스 중
가장 성공한 문화가 반드시 사피엔스에게 가장 좋은 문화라는 통념, 역사학자들의 통념이 ‘사기’라는 것이다.
가장 성공한 동물 개체인 소,돼지,닭의 삶이 성공이라고 하면 ‘사기’가 되듯.
유시민이 볼 때는 동학운동 때보다 지금이 더 자유롭고 안전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없으므로 하라리의 과격한 주장이 다른 동식물의 희생위에 살아가는 ‘사피엔스’의 생할 방식에 대한 부정적 감정 때문이 아닐까 추측하다.
그러면서도 열악한 환경에서 키워지고 도축되는 가축들에게도 감정이입하는 정서적 능력을 소유한 채식주의자 하라리의 감수성과 행동력을 높이사며 이렇게 공감한다.
사피엔스 에 의하면 과학혁명도 사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제2의 인지혁명에서 시작되었다.
이시기 등장한 자본은 –기술 발달에 투자하면 국가전쟁을 통해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은 언제나 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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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합니다. ^^
http://www.happycampus.com/report-doc/22200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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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비로소 하라리의 ‘역사는’, ‘역사다운 역사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