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니코스 찻잔차키스와 조르바
- 새 번역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어 직역본이 몇 달전 출간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국어교사 하는 조신한 젊은 친구가 최근 읽고서는 바로 ‘인생 책’ 되었다고 하더니만, 요즘 못 먹던 술도 맛보려 하고 이제야 좀 더 유연해진 모습입니다.
니코스 카잔 차키스는 저에게도 나름 인생 책이었지만, 오랜만에 다시 읽어 보니 역시 조르바입니다. 제 기억과 달리 줄줄이 보석같은 명언집입니다. 카뮈가 노벨문학상 받으며 한 말마따나 이 분, 제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세기의 작가임이 틀림없습니다.
- 니코스 찻잔차키스와 조르바
이윤기역본과 뭐가 다른가하고 비교하면서 읽어보려 시도하다 중도 포기했습니다. 술술~ 읽기를 멈출 수 없었습니다. 이틀 만에 다 읽고 말았습니다. 잊고 싶지 않은 부분들만 발췌해가며 정리해보려 합니다.
대중적으로 많이 읽혀진 이윤기 역 『그리스인 조르바』 는 국내에 최초 소개된 의미와 함께 이윤기 작가 특유의 구성진 문체가 가진 매력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장점이 분명 있지만,
그리스어 원작을 번역한 『그리스인 조르바』(유재원 번역) 는 조르바를 좀 더 현실감 있게 느껴졌고, 친절한 각주를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원문 제목, 오류들, 시대적 배경 등 작품 설명을 상세하게 소개하기 때문에 『그리스인 조르바』 를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함께 자유로운 영혼 조르바의 세계로 들어가 봅시다.
조르바는 먹물들을 구원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겁에 질린 불쌍한 인간들이 마음 놓고 편하게 살기 위해 주변에 세워놓은 윤리,종교, 조국과 같은 모든 장애물을 한꺼번에 깨뜨려서 단번에 무너뜨리는 호쾌한 웃음을 가지고 있다.
조르바는 실존인물이다.
카잔카키스와 함께 펠레폰네소스 남부 Mani지역의 프라스토바 근처 산에서 탄광을 개발하다 실패했다. 1919년 카잔차키스가 복지부 수석국장으로 그리스 난민들을 구하기 위해 캅차스 산맥으로 떠날 때, 조르바를 보조로 데려갔다. 두 사람은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약 15만명의 그리스 난민을 마케도니아와 트라케에 정착시킨다.
조르바의 이야기는 화자 ‘나’와 친구의 이별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내 인생에 가장 큰 은혜를 베푼 것은 여행과 꿈들이었다. 프롤로그
‘나’와의 편지와 회상를 통해서만 등장하는 친구 야니스 스타브리다키스는 실존인물이다. 아테네 대학시절부터 친구였던 외교관으로 1919년 카잔차키스와 함께 조지아지방으로 파견되었다가 추위와 과로로 현장에서 폐렴으로 죽었다. 편지에 등장하는 그의 활동들은 카잔카키스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둔 것이다.
2. 새 번역 그리스인 조르바 달라진 점
새로 나온 직역본은 이전 번역에 비해 자신감있고 간결하며 시적 표현이 풍성해진 느낌이다.
선창가에서 처음 조르바와 조우한다. 선창가의 풍경 묘사부분을 이전 번역과 비교해보자.
새번역: 파르스름한 빛이 지저분한 창문을 부드럽게 비추더니 카페 안으로 스며들어서는 사람들의 손과 코끝과 이마를 비춘 뒤 벽난로로 뛰어 들었고, 술병들에는 불이 붙었다. p 18
창백하고 푸르스름한 카페의 지저분한 창문을 뚫고 손이며 콧잔등이며 이마를 비추었다. 빛줄기는 내친걸음에 카운터 까지 뛰어올라 술병을 휘감았다.
좀 더 의미가 명확해 지는 느낌이다.
새번역: 인간의 영혼은 진흙덩어리다. 모호하고 촌스러운 욕망들로 가득하고, 길들여지지도 다듬어 지지도 않으며 전혀 예측할 수 없다. p 25
인간의 영혼은 육체라는 뻘 속에 갇혀 있어서 무디고 둔한 것이다. 영혼의 지각 능력이란 조잡하고 불확실한 법이다. 그래서 영혼은 아무것도 분명하고 확실하게는 예견할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끌며 헤어지는 것은 독약이다. 단칼에 자르고 인간 본연의 상태대로 외로움 속에 홀로 남는 것이 낫다. p 20
사랑하는 친구에게서 서서히 멀어진 다는 것은 얼마나 쓰라린 일인가. 깨끗이 헤어지고 아픈 가슴을 다독이는 편이 훨씬 나았으리... 고독이야 말로 인간의 자연스러운 상태니까.
배 안은 영악한 그리스인들과 탐욕스러운 눈들, 장삿속으로 가득 찬 머리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정치 논쟁들, 줄이 늘어진 피아노 한 대, 약이 올라 독해진 정숙한 조강지처들, 심술궂고 단조로운 시골의 궁핍함으로 가득했다. p 39
배 위에는 탐욕스럽게 굴리는 교활한 악마의 눈망울, 행상이 파는 허접쓰레기 물건 같은 대가리를 한 그리스인들이 가득 탄 채 밀고 당기고 있었다. 그들이 다투는 소리는 흡사 조율 안 된 피아노, 정직하지만 심술궂은 여자들이 긁는 바가지 같았다.
가장 의미가 간결, 명확해지는 부분은 이런 문장이다.
우리 영혼은 폐도 있고 콧구멍도 있는 한 마리 야생동물 같아서 풍부한 산소가 필요하고, 먼지나 다른 많은 사람들의 날숨 속에서는 숨 막혀 한다. p 329
영혼도 폐와 콧구멍이 있는 동물이고, 그래서 산소가 필요하며, 따라서 먼지나 너무 많이 상해 버린 영혼 속에서는 누구나 숨이 막힐 것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드는 생각일 것이다.
다음 포스팅
- 자유와 살인
- 정신을 만드는 포도주
- 조국, 하나님 1) 조국에서 벗어남 2) 유혹에서 벗어남
- 지금 여기
- 니체와 카잔차키스
● 참고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