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쇠망사 6권 ]
3개월전까지 로마제국 쇠망사 주요장면들을 정리하다가 멈췄었는데요..
오늘은 중간을 두어권 건너 뛰어서
마지막 부분 콘스탄티노플이 정복된 해의 장면을 소개합니다.
콘스탄티노플 함락부분은 세계사의 대 사건이라
여러 영화로 제작된 부분이지만
다른 곳에선 보지 못한 사실들도 있습니다.
술탄이 얼마나 나름 열린 사람이었는지....
천년도시의 정복
요새건설
1452년 보스포루스 해협에 요새를 건설한 술탄이 9월 국적 불문 모든 배에 통행세를 부과했다. 복종을 거부한 베네치아 선박 하나는 대포 한 발에 격침되어 선장은 말뚝에 박혔고 선원들은 참수형을 당했다. p 485.
1453년4월 공격이 시작되었다.
서방국가들에 대한 원조 기대는 헛되었다. 그들의 동정은 미미하고 너무 늦고 무익했다. 제노바와 베네치아함대가 출항하기도 전에 콘스탄티노플은 함락되었다.
갈라타와 제노바 거류민들은 ‘자비를 베풀’겠다는 술탄의 거짓 약속에 넘어갔다.
수도 방위를 위해 많은 용병을 모을 수 있었던 부자들은 황제를 돕기를 거부함으로써 결국 술탄에게 전 재산을 고스란히 바치는 꼴이 되었다.
술탄의 군대는 25만8000명(프란차의 견해) 320척중 갤리선은 18척이고 대부분은 수송선이었다. 가가호호 조사한 로마시민 방위군의 수는 4970명 뿐이었다.
4월 초 출발할 뻔한 5척의 구조선이 양식과 군사를 싣고 키오스 항을 출발했다. 한 척은 황제의 것일 수도 있고(기록상) 네 척은 제노바인의 소유였다.
제노바선단의 돌파
다섯 척의 그리스도교 선단은 힘차게 노를 저어 300척의 적 함대를 향해 돌진했다. 그 앞을 가로막는 모든 배는 파괴되었다.
투르크 군은 12,000명을 잃었고 다섯 척의 선단은 유유히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했다. p 503
언덕을 넘어 골든혼에 선단을...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은 치열했지만 마호메트는 80여척의 작은 갤리선이나 범선들 언덕을 너머 해협안쪽으로 옮겨 놓음으로써 입구를 지키던 기독교 함선들을 피해 성을 양쪽에서 공격할 수 있었다. 결국 성은 함락되었고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시체는 병사들의 시체 속에서 발견되었다.
짧은 약탈
술탄은 콘스탄티노플의 재보를 병사들과 나누었고 한 시간의 약탈로 수년의 보수를 챙겼다.
종교의 자유
마호메트 2세는 콘스탄티노플을 제국의 수도로 만들 계획이었다. 비잔티움 사람들은 목숨과 자유,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는 즉시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총대주교 선출 때에도 비잔티움의 의전이 그대로 재현되고 성당들은 두 종교를 같이 모셔야 했고 각자의 영역이 정해졌다.
마호메트의 손자 셀림의 협정위반이 있기까지 60년 동안 공평한 구역 배분이 유지되었다. p 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