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르시아의 정세 와 제국의 분할(13,14장)
자라투스트라는
단식이나 독신생활을 신이 주신 가장 큰 선물을 거부하는 죄악이라 여겼다.
조로아스터교의 성자는 아이를 낳고 농사를 짓고 스스로의 구원을 완성해야 한다. 부지런히 땅을 경작하는 사람은 1만번의 기도보다 훨씬 많은 종교적 선행을 비축하게 된다는 것이 제단 아베스 경전의 교훈이다.
- 제국의 4분할
로마제국의 위기를 종식시킨 황제는 해방노예 출신에서 군인으로 승진을 거듭한 디오클레티아누스 (284~ 재위)황제이다. 그는 정적도 포용하는 정치적 수완으로 군위를 분할하여
갈레리우스,
콘스탄티우스,
막시미아누수를 부제로 임명하여 제국을 4분할하여 통치한다. 4명의 정 부제들은 서로 협력하며 제국을 다스렸다.
50년간 26명의 황제가 난립하는 대 혼란이 종식되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황제를 사칭한 이집트를 정복하고 학살한 후
아르메니아를 재 탈환한 페르시아를 손 봐주고 로마의 위엄을 되찾고자 했다.
갈레리우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후 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공동 황제인 막시미아누스와 함께 성대한 개선식을 거행한다. 이후 황제들은 정복사업을 중단했다. 이제 로마의 수도는 황제의 궁정이 있는 밀라노와 유럽과 아시아 사이, 도나우강과 유프라테스강 중간쯤 위치한가 되었다.
아우구스로부터 디오클레티아누스 시대까지 군주들과 지휘관들은 시민들과 치밀한 태도로 대화했고 자색 옷이나 자색 띠를 두르는 수준의 차이만 두었지만,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과감하게 왕관을 썼다.
시민들은 분노했지만, 온갖 의식이 제정되어 황제에게 접근하기도 힘들었다.
황제는 두 명의 아우구스투스가 동방과 이탈리아를 다스리고, 두 명의 카이사르가 도나우강과 라인강을 방어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아무리 야심이 강한 장군도 네 명의 적을 동시에 격파하기는 불가능했다, 내전은 종식되었지만 국민 세금은 증가했다,
얼마 후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막시미아누스가 퇴위했다. 470
이제까지 4명의 정 부제들은 서로 협력하며 제국을 다스렸다.
50년간 26명의 황제가 난립하는 대 혼란이 종식되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기독교를 박해했고 동방 의 콘스탄티우스는 종교에 개방적이었다
그러나 한 세대 후 사람이 바뀌자 네 황제는 권력투쟁에 돌입한다, 37년 만에 단독 황제가 된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를 허용했고 .제국의 영광을 되찾을 마음이 없었고 로마를 방문하지도 않는다.